cosrgn"nnmu" ✝️ 하나님이라는 이름은 어디에서 왔을까? | 140년 전 성경 번역의 역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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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하나님이라는 이름은 어디에서 왔을까? | 140년 전 성경 번역의 역사

by honeypig66 2026. 7. 28.

'하나님'이라는 이름은 단순한 호칭이 아니라, 140여 년 전 성경 번역과 언어의 역사가 함께 빚어낸 신앙의 흔적입니다. 출처: Pexels / olia danilevich

✔ 3줄 요약

  • ‘하나님’이라는 호칭에는 신학적 의미뿐 아니라 19세기 말 성경 번역과 당시의 언어 환경도 함께 영향을 준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 성경 속 절대자의 본래 이름인 ‘YHWH(야훼)’와 그를 부르던 역사적 여정을 돌아볼 때, 인간의 언어로 만든 호칭은 결국 그분을 가리키는 방편에 불과함을 깨닫게 됩니다.
  • 18년의 사목 경험 속에서 호칭의 형식을 넘어선 더 깊은 영성을 사유하며, 이름이라는 형식 너머에 있는 ‘사랑’과 ‘침묵’의 본질에 집중해야 함을 발견합니다.

🖋️ 서론: 당연했던 이름에 던지는 질문

오랫동안 당연하게 불러 왔던 이름도 어느 날 새로운 질문 앞에서 다시 깊이 바라보게 됩니다. 출처: Unsplash / Annie Spratt

사제로 살아온 18년이라는 시간 동안, 제 입술에 가장 많이 머문 단어는 단연 ‘하느님’이었습니다. 미사 중에, 고해소에서, 그리고 홀로 바치는 기도 속에서 그 이름은 공기처럼 당연한 것이었습니다. 하지만 최근 국문학적 문헌들을 살피다 마주한 한 줄의 기록은 저에게 신선한 충격을 주었습니다. 우리가 가톨릭과 개신교를 나누는 신학적 잣대로 여겨온 ‘하느님’과 ‘하나님’의 차이가, 단순히 하나의 이유 때문이 아니라 번역 과정과 당시의 언어 환경이 함께 영향을 주었다는 연구를 접하게 되었습니다.

당연하게 붙들고 있던 형식 뒤에 숨겨진 역사와 언어의 비밀을 마주하며, 우리가 부르는 이름의 본질이 무엇인지 깊이 사유하게 됩니다.

1. 신학적 결단인가, 언어적 현상인가?

존 로스와 한국인 번역자들이 함께했던 성경 번역은 단순한 번역 작업이 아니라 한국 기독교 언어의 출발점이 되었습니다. 출처: Unsplash / Ben White

우리는 흔히 개신교에서 사용하는 ‘하나님’이라는 호칭이 ‘오직 하나(One)이신 분’이라는 유일신 사상을 강조하기 위해 치밀하게 고안된 신학적 용어로 이해하곤 합니다. 물론 그러한 신앙적 고백과 정체성이 오랜 시간 그 호칭을 지탱해 온 것은 사실입니다.

그러나 역사적 실체와 언어의 탄생 과정을 추적해 보면, 거대한 교리적 차이의 이면에 숨겨진 소박하고도 생생한 인간의 발자취를 발견하게 됩니다. 1887년 스코틀랜드의 장로교 선교사 존 로스(John Ross) 목사가 만주에서 최초의 한글 신약전서인 ‘예수성교전서’를 펴낼 때, 번역 작업의 최전선에서 손을 보태던 이들은 모두 평안도 출신의 한국인들이었습니다.

당시 조선 내부에서는 선교 활동이 어려웠기 때문에 존 로스는 만주에서 조선인들과 함께 성경을 번역했습니다. 번역에 참여한 이들 가운데 평안도 출신이 많았고, 그들의 언어 습관이 번역어 선택에 영향을 미쳤다는 견해가 있습니다. 다만 '하나님'이라는 표현의 형성 과정에 대해서는 여러 학설이 존재하며, 언어학자와 교회사 연구자들 사이에서도 다양한 견해가 제시되고 있습니다.

2. 평안도 방언과 ‘하나님’의 탄생

언어는 시대와 지역의 영향을 받습니다. '하나님'이라는 호칭 역시 당시의 언어 환경과 번역 현장을 함께 이해할 때 더 입체적으로 바라볼 수 있습니다. 출처: Unsplash / Christin Hume

조선 시대 후기 및 당시의 국어 표기법에서 ‘하늘’은 아래아(ㆍ)가 포함된 ‘하ᄂᆞᆯ’로 표기되었습니다. 언어학적 음운 변화의 흐름대로라면 표준어 계열에서는 ‘하ᄂᆞ님’이 ‘하느님’으로 자연스럽게 이행되어야 했습니다.

그러나 평안도 방언의 독특한 음운 체계와 발화 습관 속에서, 아래아(ㆍ) 발음이 ‘아’ 소리에 가깝게 생략되거나 변형되면서 입에 붙기 시작했습니다. 일부 연구에서는 평안도 방언의 음운 특성이 번역어 선택에 영향을 주었을 가능성을 제시합니다. 이후 '하나님'이라는 호칭은 한국 개신교 안에서 널리 사용되며 하나의 신앙 언어로 자리 잡았습니다. 즉, 오늘날 한국 교계가 나누어 사용하는 커다란 호칭의 갈래는 사실 140년 전 번역 현장과 당시의 언어 환경이 남긴 생생한 유산일지도 모릅니다.

3. 부를 수 없는 이름, YHWH (야훼)

인간은 다양한 이름으로 절대자를 불러 왔지만, 그 이름 너머에는 인간의 언어로 모두 담아낼 수 없는 신비가 존재합니다. 출처: Unsplash / Clay Banks

이러한 언어적 기원의 다양성을 넘어, 역사와 성경의 근본으로 더 깊이 들어가 보면 더욱 경외로운 진실과 마주하게 됩니다. 구약성경 속에서 신은 스스로를 ‘YHWH(야훼)’라는 네 개의 자음, 즉 테트라그람마톤(Tetragrammaton)으로 계시하셨습니다.

하지만 고대 유대인들은 그 신성한 이름을 감히 인간의 입으로 소리 내어 부르는 것을 두려워하고 경계했습니다. 대신 성경을 읽을 때 그 자리에 ‘나의 주님’이라는 뜻의 ‘아도나이(Adonai)’로 대체하여 읽었고, 세월이 흘러 그 전통이 굳어지면서 원래의 정확한 발음조차 역사 속에서 영원히 묻히고 말았습니다. 그래서 오늘날 학계에서도 '야훼'는 원래 발음을 복원하려는 시도일 뿐, 정확한 고대 발음을 확정하기는 어렵다고 설명합니다.

이러한 전통 때문에 많은 성경 번역본은 YHWH를 직접 음역하기보다 '주님' 또는 '여호와' 등 각 전통의 번역 원칙에 따라 옮기고 있습니다. 한국천주교회의 성경은 '주님'을 사용하며, 일부 개신교 번역본에서는 문맥에 따라 '여호와'를 사용하는 경우도 있습니다. 인간이 만든 ‘하느님’이든 ‘하나님’이든, 혹은 다른 어떤 언어의 번역어이든 간에, 그것은 무한하신 신의 본질과 그 거룩한 이름을 완벽하게 담아내기에는 늘 부족할 수밖에 없는 인간의 제한된 언어적 그릇일 뿐입니다.

🖋️ 결론: 이름의 너머를 바라보며

이름은 시대와 전통에 따라 달라질 수 있습니다. 그러나 같은 하늘 아래에서 같은 사랑을 배우려는 마음은 변하지 않습니다. 출처: Unsplash / Dan Meyers

국문학적 논쟁의 관점에서 본다면 ‘하나님’은 다양한 언어 환경과 방언의 산물일 수 있습니다. 하지만 18년 차 사제로서 장제동 더필립병원 807호 병상에 누워 제 삶의 호흡을 가다듬으며 저는 다시 생각해보게 됩니다.

신이 특정 지역의 언어 습관을 통해 우리에게 처음 다가왔든, 다른 환경을 통해 이름을 알렸든, 중요한 것은 그 소리의 ‘형태’가 아닐 것입니다. 우리가 호칭의 옳고 그름을 두고 교리를 따지며 다투는 동안, 정작 그 이름이 향하는 대상인 ‘사랑’을 놓치고 있는 것은 아닐까요?

병실 창문 너머 하늘을 바라볼 때마다 저는 문득 생각합니다.

인간은 서로 다른 이름으로 그분을 부르지만, 하늘은 누구에게나 같은 하늘입니다.

어쩌면 신앙은 정확한 호칭을 찾는 일이 아니라, 그 이름 앞에서 더 겸손해지고 더 사랑하는 사람이 되어 가는 여정인지도 모르겠습니다. 우리의 호칭은 어디까지나 그분을 가리키는 인간의 언어일 뿐입니다. 중요한 것은 이름 자체보다 그 이름이 향하는 분을 바라보는 일입니다.

언어는 시대를 따라 변하고, 호칭도 전통을 따라 달라질 수 있습니다. 그러나 인간의 언어가 아무리 달라져도 그분을 향한 진실한 믿음까지 달라지는 것은 아닙니다. 서로 다른 이름을 부르더라도 같은 하늘 아래에서 같은 사랑을 배우려는 마음, 어쩌면 그것이 신앙이 우리에게 가르쳐 주는 가장 깊은 언어인지도 모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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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참고 문헌

  • 「가톨릭교회 교리서」
  • 「공동번역성서」 및 「성경」(한국천주교주교회의)
  • 「개역개정성경」
  • 대한성서공회 자료
  • 존 로스(John Ross) 선교 관련 번역사 자료
  • 국립국어원 우리말 자료
  • 한국천주교주교회의 용어 자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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