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026년 11월에 정리한 글입니다(2026.11.05).
저는 사제로 18년 동안 용서를 말했습니다.

그런데 정작 저는 용서하지 못한 사람들이 있습니다.
같은 길을 걸었던 동기들입니다. 그들에 대한 감정은 지금도 많이 남아 있습니다.
보고 싶다고 해서 볼 수도 없지만, 보고 싶은 마음도 전혀 없습니다.
그들을 사제이기 이전에 사람으로서 끝내 믿을 수 없다고 느꼈습니다.
어떤 일이 있었는지는 이 글에서 쓰지 않으려 합니다.
이것은 제가 느낀 것이고, 그들의 모든 모습이라는 뜻은 아닙니다.
이 글은 용서를 말하던 사람이 용서하지 못한 채로 용서에 관해 찾아본 기록입니다.
1. 용서가 아닌 것
먼저 용서가 아닌 것들을 정리해 봅니다. 용서는 다음과 같은 것이 아닙니다.
- 화해: 관계를 되돌리는 일이 아닙니다. 용서는 혼자서도 할 수 있지만 화해는 두 사람이 해야 합니다.
- 용인: 그 일이 괜찮았다고 말하는 것이 아닙니다.
- 변명: 상대의 잘못을 가볍게 만드는 것이 아닙니다.
- 망각: 일어난 일을 잊는 것이 아닙니다.
- 정의의 포기: 책임을 묻지 않겠다는 뜻이 아닙니다.
용서했다고 해서 그 사람을 다시 만나야 하는 것도,
그 일을 괜찮다고 말해야 하는 것도 아닙니다.

2. 용서에도 종류가 있습니다
용서를 연구해 온 에버렛 워딩턴(Everett Worthington Jr.)은 용서를 두 가지로 나눕니다.
| 결정적 용서 | 복수나 적대적인 행동을 하지 않기로 하는 결정 | 감정이 풀리지 않아도 가능 |
| 정서적 용서 | 마음속의 부정적인 감정이 줄고 상대를 향한 긍정적인 감정이 생기는 변화 | 시간이 걸리고 의지만으로는 어려움 |
이 구분이 저에게는 중요했습니다. 감정이 풀리지 않았다고 해서 용서에 실패한 것이 아니라,
결정적 용서까지만 한 상태일 수 있기 때문입니다.
3. 연구는 무엇을 말할까
• 용서를 돕는 치료를 모은 메타분석(Wade 외, 2014)은 54개 연구,
약 2,300명을 분석했습니다. 용서를 목표로 한 개입은 아무 치료를 받지 않은 사람보다 용서의 정도를 높였고(평균 효과 크기 약 0.56), 우울과 불안을 줄이고 희망을 키웠습니다. 다만 우울과 불안이 줄어든 폭은 용서가 늘어난 폭의 절반 정도였고, 치료 시간 이 길수록 효과가 컸다고 합니다.
• 워딩턴 등이 2007년에 정리한 문헌 고찰은 건강과 웰빙과의 연결이 결정적 용서보다
정서적 용서 쪽에서 더 뚜렷하다고 설명합니다.
그렇다면 정서적 용서를 아직 하지 못한 저는 손해를 보고 있는 걸까요?
연구는 용서를 해야 한다고 말하지 않습니다. 용서가 도움이 되는 사람이 있다는 것이지,
용서가 의무라는 뜻이 아닙니다. 그리고 용서는 강요로 되는 것이 아닙니다.
4. 제가 하고 있는 용서
지금 제가 하는 용서는 솔직히 말해 저를 편하게 하기 위한 끝매듭에 가깝습니다.
그들이 변하기를 기다리지 않고, 제가 더는 그 일을 곱씹지 않기로 한 결정입니다.
연구자들이 말하는 결정적 용서에 가깝습니다. 감정이 풀린 것은 아닙니다.
결정적 용서로서 제가 지키려는 것. 예: 험담하지 않는다, 소식을 찾지 않는다,
저는 이것을 용서라고 불러도 되는지 지금도 모릅니다.
그래도 이름을 붙이고 나니 마음이 조금 덜 무거워졌습니다.
5. 용서를 연구하는 사람들이 제안하는 한 가지 방법
워딩턴은 용서를 돕는 방법으로 REACH라는 다섯 단계를 제안했습니다.
1. R(Recall): 상처를 있는 그대로 떠올립니다. 부풀리거나 줄이지 않습니다.
2. E(Empathize): 상대의 입장에서 볼 수 있는지 시도합니다.
상대를 이해해야 한다는 뜻이 아니고, 이해되지 않으면 건너뛸 수 있습니다.
3. A(Altruistic gift): 내가 받았던 너그러움을 떠올리며 용서를 상대에게 주는 선물처럼 생각해 봅니다.
4. C(Commit): 용서하겠다고 마음속으로 결정하고 글이나 말로 남깁니다.
5. H(Hold): 상처가 다시 떠올라도 그 결정을 붙잡습니다.
이 방법은 하나의 예시이고 모두에게 맞지는 않습니다.

. 특히 지금도 학대나 폭력이 이어지고 있다면 이 방법을 쓰기보다 안전 확보가 먼저입니다.
6. 용서를 서두르지 마세요
•용서하지 못한다고 자신을 탓하지 마세요. 시간이 필요한 사람도 있습니다.
•신앙이나 도덕의 말로 용서를 서두르게 하는 것은 상처받은 사람에게 또 다른 짐이 될 수 있습니다. 용서를 말하던 저도 그런 말을 쉽게 했는지 돌아보게 됩니다.
•학대나 폭력처럼 깊은 상처는 혼자 풀려고 하지 말고 전문가와 함께하세요.
•용서는 가해자에게 돌아가는 것이 아니라는 점을 기억하세요. 돌아가지 않아도 됩니다.
•분노나 우울이 오래 가서 일상이 힘들면 가까운 정신건강복지센터나 정신건강위기상담전화(1577-0199)에서 상담받을 수 있습니다. 죽고 싶다는 생각이 들면 국번 없이 109로 연락하세요.
7. 오늘 해 볼 수 있는 세 가지
1. 용서하지 못한 사람이 떠오르면 이름 대신 그때의 감정 한 줄만 적어 봅니다. 사건이 아니라 감정입니다.
결정적 용서를 한다면 지키고 싶은 약속 하나를 적어 봅니다. 예: 험담하지 않기,
2. 소식을 일부러 찾지 않기, 곱씹기 시작하면 걸으러 나가기.
3. 용서를 서두르지 않겠다고 스스로에게 한 문장을 말해 줍니다.
8. 자주 묻는 질문
Q. 용서하지 않으면 건강에 해로운가요?
정서적 용서가 건강과 더 뚜렷하게 연결된다는 정리가 있지만,
용서하지 않았다고 병이 생긴다는 뜻은 아닙니다. 분노와 곱씹기가 길어지면 마음과 몸에 부담이 될 수 있으니,
그것을 줄이는 방법을 찾는 것이 중요합니다.
Q. 사과도 없는 사람을 용서해야 하나요?
용서와 화해는 다릅니다. 사과 없이도 결정적 용서는 할 수 있고, 관계를 회복하지 않아도 됩니다.
Q. 용서와 포기는 어떻게 다른가요?
용서는 책임을 묻지 않겠다는 뜻이 아닙니다. 필요한 경우 법적, 제도적 대응과 용서는 함께 갈 수 있습니다.
마무리
18년 동안 저는 신자들에게 용서하라고 말했습니다. 그때는 쉬운 일처럼 말했습니다.
이제 저는 그것이 얼마나 어려운 말이었는지 압니다.

이 글은 개인의 경험과 일반적인 심리학 정보이며 의료 조언이 아닙니다.
이어서 읽으면 좋은 글
· 차갑다는 말을 들었습니다: 조하리의 창으로 본 나
· 혼술은 왜 끊기 어려울까?
· 요양병원 807호의 하루: 새벽 5시 15분부터 밤 9시까지
✈️ 트립닷컴 전 세계 호텔 & 항공권 최특가 할인 혜택 바로가기
※ 위 링크를 통해 예약 시 일정액의 수수료를 제공받을 수 있습니다.
참고한 자료
- Wade, N. G., Hoyt, W. T., Kidwell, J. E. M., & Worthington, E. L., Jr. (2014). Efficacy of psychotherapeutic interventions to promote forgiveness: A meta-analysis. Journal of Consulting and Clinical Psychology.
- Worthington, E. L., Jr. 외 (2007). Forgiveness, Health, and Well-Being: A Review of Evidence for Emotional Versus Decisional Forgiveness, Dispositional Forgivingness, and Reduced Unforgiveness. Journal of Behavioral Medicine.
'심리 & 과학(뇌과학·심리·생명과학·동물과학)' 카테고리의 다른 글
| 혼자 있는 시간이 자꾸 두렵다면: 요양병원 병실의 새벽이 알려 준 것 (0) | 2026.11.07 |
|---|---|
| 차갑다는 말을 들었습니다: 조하리의 창으로 본 나 (11) | 2026.11.06 |
| 혼술은 왜 끊기 어려울까? (5) | 2026.11.06 |
| [심리 & 과학] 왜 사람은 나이가 들수록 작은 일에도 쉽게 지칠까 (0) | 2026.11.05 |
| 6시 57분에 제가 먼저 TV를 켭니다: 병실의 소리와 무인카페의 고요 (0) | 2026.11.04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