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부 잘하는 약’ 오남용…정작 필요한 사람은 “약국 50곳에 전화 돌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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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부 잘하는 약’ 오남용…정작 필요한 사람은 “약국 50곳에 전화 돌려”

by honeypig66 2025. 4. 25.

아래는 “공부 잘하는 약”으로 불리는 약물의 오남용 실태와, 정작 약이 꼭 필요한 이들이 겪는 어려움을 중심으로 한 기사 스타일의 글입니다


1) ‘공부 잘하는 약’ 오남용…정작 필요한 사람은 “약국 50곳에 전화 돌려”

“수능 앞두고 친구가 추천해줬어요. 집중이 잘 된다고 해서 한 알만 먹으려 했는데, 시험 끝나고도 자꾸 손이 가요.”


서울의 한 대학에 재학 중인 김모(21) 씨는 대학수학능력시험을 준비하던 고3 겨울부터 ‘공부 잘하는 약’이라 불리는 약물을 복용하기 시작했다. 처음엔 친구의 권유로 호기심에서 한 번, 두 번 복용했지만, 이후로는 중간고사나 기말고사 때마다 해당 약물을 찾게 됐다. “몸이 무거운데 머리는 또렷해지는 기분”이 들어 계속 복용하게 됐다는 그는, 최근엔 약국에서 이 약을 구하는 데 어려움을 느끼기 시작했다.

이른바 ‘공부 잘하는 약’으로 불리는 약물은 일반적으로 주의력결핍과잉행동장애(ADHD) 치료제로 쓰이는 메틸페니데이트 성분의 약품이다. 대표적으로 ‘콘서타’, ‘페로스’, ‘메타데이트’ 등이 있다. 이 약물은 뇌의 도파민과 노르에피네프린 분비를 촉진시켜 주의 집중력을 높이는 데 효과가 있어, ADHD를 진단받은 환자들에게는 매우 중요한 치료 수단이다. 하지만 최근 몇 년 사이, 시험이나 업무 능력 향상을 목적으로 이 약물을 비정상적으로 복용하는 사례가 급증하고 있다.

2) “ADHD 환자지만 약 구할 수 없어…50군데 넘게 전화”

주의력결핍과잉행동장애 당사자 이○○(36)씨가 최근 약을 구하지 못해 먹게 된 2022년 처방약을 내보였다. 이씨 제공


반면, 정작 이 약물이 꼭 필요한 사람들은 약을 구하기가 갈수록 어려워지고 있다. ADHD 진단을 받고 수년째 치료 중인 이지연(가명·32) 씨는 최근 심각한 불편을 호소했다. “한 달 전 처방을 받았는데, 약국 50군데 넘게 전화했어요. 재고가 없다는 곳이 태반이고, 어떤 곳은 아예 그런 약은 취급하지 않는다고 했어요.”


이 씨는 하루 복용량을 나눠서 반씩 먹으며 버티고 있지만, 업무 능률은 떨어지고 일상생활도 무기력해졌다고 말한다. “약이 있으면 머리가 정돈되고, 생각이 빠르게 정리돼요. 그런데 없으면 멍한 상태가 계속되죠. ADHD는 단순히 집중을 못 하는 게 아니라, 일상 전체가 무너지는 병이에요.”


약사들 사이에서도 재고 확보가 점점 어려워지고 있다는 반응이 나온다. 서울 강북구에서 약국을 운영 중인 박모 약사는 “요즘 메틸페니데이트 계열 약품은 재고가 매우 부족하다”며 “일반인들이 시험철이나 입사시험 전후로 많이 찾는데, 대부분은 정식 처방 없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구하려 한다”고 전했다.

3) 불법 유통·도핑 위험도 심각


일부 수험생이나 취업준비생 사이에서는 아예 SNS나 중고 커뮤니티 등을 통해 불법적으로 약을 거래하는 사례도 있다. ‘시험 집중제’, ‘뇌각성 알약’ 등으로 포장되어 거래되는 이 약물들은 대부분 메틸페니데이트 계열로, 의사 처방 없이 복용할 경우 심각한 부작용을 유발할 수 있다.

식품의약품안전처에 따르면 메틸페니데이트는 향정신성의약품으로 분류되며, 부작용으로는 불면증, 식욕부진, 불안, 심박수 증가, 심한 경우 환각이나 중독 증세까지도 나타날 수 있다. 특히 장기 복용 시 의존성이 생겨 끊기 어렵고, 정신건강에 치명적일 수 있다.


실제로 지난해 한 대학교에서는 시험 기간 중 이 약물을 복용한 뒤 급성 불안장애 증세로 병원에 실려 간 사례가 발생하기도 했다. 당시 학생은 친구에게 받은 약을 복용했으며, 본인은 ADHD 진단을 받은 적도, 의사와 상담한 적도 없었던 것으로 드러났다.


대한신경정신의학회 관계자는 “ADHD 치료제는 정확한 진단과 지속적인 모니터링 아래에서만 처방되고 복용되어야 한다”며 “건강한 사람이 일시적 성과 향상을 위해 이를 오용할 경우 뇌 화학 시스템을 혼란스럽게 만들어 중대한 부작용을 초래할 수 있다”고 경고했다.

4) 근본 원인은 ‘성과 압박’과 ‘학습 효율주의’

ADHD치료제를 각성제처럼 복용하는 현상은 미국에서 큰 사회적 문제다. 넷플릭스 다큐멘터리 ‘슈퍼맨 각성제’는 ADHD치료제를 오남용하게 만드는 경쟁사회의 문제점과 오남용의 대가 등을 자세히 다룬다. 넷플릭스 제공

전문가들은 이 같은 약물 오남용의 근본 원인을 사회 전반에 만연한 ‘성과 지상주의’ 문화에서 찾는다. 짧은 시간에 최대의 성과를 내야 한다는 압박, 경쟁 중심의 교육과 채용 환경, 그리고 ‘열심히’보다는 ‘효율적으로’ 공부하라는 사회적 분위기가 약물에 기대게 만든다는 것이다.

서울대학교 심리학과 김진수 교수는 “이 약물의 오남용은 단순한 개인의 일탈이 아니라, 사회 구조적 문제”라며 “특히 청소년과 청년층이 자기 효능감보다 외부 평가에 따라 움직이다 보니, 약물로라도 성과를 보장받으려는 심리가 커졌다”고 분석했다.


또한 학교와 학원 등 교육기관에서의 예방 교육이 부족하다는 점도 문제로 지적된다. 일부 학교에서는 ADHD 치료제가 공부 능력 향상에 도움이 된다는 왜곡된 정보가 떠돌고 있지만, 이를 제대로 바로잡는 교육은 거의 이뤄지지 않고 있다.

5) 정부와 의료계의 대책 시급


정부는 지난해부터 메틸페니데이트 제제에 대한 모니터링을 강화하고, 불법 거래에 대해 처벌 수위를 높이고 있다. 하지만 전문가들은 단속만으로는 근본적인 해결이 어렵다고 말한다. ADHD 환자들이 약을 제때 복용할 수 있도록 공급망을 개선하고, 비의료인 대상 약물 교육을 강화해야 한다는 지적이다.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 이수현 원장은 “약물이 필요한 환자에게 안정적으로 공급될 수 있는 시스템이 가장 우선”이라며 “아울러 약물에 대한 정확한 정보와 윤리적 교육을 청소년기부터 체계적으로 시행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지금도 수많은 학생들이 밤샘 공부를 위해 ‘약 한 알’에 의존하고 있다. 하지만 이 약물은 ‘공부 잘하게 해주는 마법의 약’이 아니라, 제대로 된 진단과 관리 없이는 독이 될 수도 있는 ‘양날의 칼’이다.
지금 필요한 것은 한 알의 약이 아니라, 약 없이도 자신을 믿고 도전할 수 있는 사회적 환경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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