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입 냄새 어때?” 곤충을 유혹하는 꽃의 진화**“음~ 꽃향기 좋다” vs “우웩~ 꽃 냄새가 왜 이래?”꽃의 후각 전략을 바꾼 효소 하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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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입 냄새 어때?” 곤충을 유혹하는 꽃의 진화**“음~ 꽃향기 좋다” vs “우웩~ 꽃 냄새가 왜 이래?”꽃의 후각 전략을 바꾼 효소 하나‘

by honeypig66 2025. 6. 5.

“내 입 냄새 어때?”: 곤충을 유혹하는 꽃의 진화

“음~ 꽃향기 좋다” vs “우웩~ 꽃 냄새가 왜 이래?”
꽃의 후각 전략을 바꾼 효소 하나
‘악취’가 전략, 생태적 함의는?

모든 꽃이 사람이 느끼는 향기로운 냄새를 풍기는 것은 아니다

꽃은 인류에게 아름다움과 향기의 상징으로 여겨진다. 인간은 라일락, 장미, 자스민 같은 꽃의 향기를 맡으며 행복감을 느끼고, 그것을 향수로, 차로, 인테리어로 활용한다. 하지만 생물학적으로 보면, 꽃이 향기를 만드는 목적은 인간의 감성을 자극하기 위함이 아니다. 꽃은 곤충, 특히 꽃가루받이를 해줄 수분 매개자를 유혹하기 위해 향기를 진화시켜왔다. 놀랍게도, 이 향기는 때로는 인간에게 ‘구역질이 날 정도로 역겨운 악취’로 느껴질 수 있으며, 그런 악취야말로 특정 곤충을 유인하는 전략으로 작용한다.

이 글에서는 왜 어떤 꽃은 향기롭고, 어떤 꽃은 악취를 풍기는지, 그 향기의 화학적 근원이 무엇인지, 그리고 최근 밝혀진 꽃 향기 유전자 및 효소의 진화적 전환에 대해 과학적으로 탐구해보고자 한다.

모든 꽃이 사람이 느끼는 향기로운 냄새를 풍기는 것은 아니다

1. 꽃 향기의 본질: 후각은 종마다 다르게 해석된다

꽃이 발산하는 향기는 수십~수백 종의 휘발성 유기화합물(VOCs, volatile organic compounds)로 이루어져 있다. 이 화합물들은 꽃의 유전적 특성과 효소적 대사경로에 따라 조합이 달라지며, 그 결과 특정 곤충에게는 유혹적인 향기로, 다른 동물에게는 경고 신호로 인식된다. 예를 들어, 인간에게는 고소하고 달콤한 냄새로 느껴지는 화합물이 파리에게는 별다른 흥미를 주지 못할 수 있으며, 반대로 인간이 혐오하는 시체 냄새, 썩은 고기 냄새가 파리에게는 강력한 유인 신호가 될 수 있다.

누에나방 암컷이 분비하는 봄비콜이라는 물질은 몇 킬로미터 떨어져 있는 수컷 누에나방을 유인할 수 있다

실제로 꽃은 자기가 원하는 곤충에게만 반응을 이끌어낼 수 있는 ‘맞춤형 향기’를 진화시켰다. 꿀벌을 유혹하는 꽃은 시트랄, 리날룰, 제라니올 등 인간에게도 유쾌한 과일향 혹은 풀향을 내는 방향족 화합물을 주로 분비한다. 반면, 썩은 고기 냄새를 풍기는 시체꽃(rafflesia, amorphophallus titanum 등)은 디메틸다이설파이드(DMDS), 디메틸트라이설파이드(DMTS) 같은 유황계 화합물을 다량 방출한다. 이 냄새는 파리나 딱정벌레류에게 시체 존재를 알리는 강력한 후각 신호다.

동물사체가 썩는 듯 끔찍한 냄새… ‘시체꽃’의 이유 있는 악취

2. 후각 전략을 바꾼 효소 하나: 유전자의 방향 전환

최근 한 연구는 꽃의 향기 진화를 가능하게 한 핵심 메커니즘 중 하나가 ‘특정 효소의 진화적 변이’에 있다고 밝혔다. 특히, 방향족 화합물 중 하나인 페닐아세트알데하이드(phenylacetaldehyde)를 만들던 효소가 돌연변이를 통해 ‘악취의 근원’이 되는 유황계 화합물을 생성하게 된 사례가 대표적이다.


대표적인 예는 아르움(Arum)속 식물이다. 이 식물은 원래 리날룰과 같은 향긋한 화합물을 분비하던 종에서, 진화적으로 효소 하나가 돌연변이를 일으켜 디메틸다이설파이드를 생성하기 시작했다. 이 효소는 단백질 상에서 불과 몇 개의 아미노산 교체만으로 기질 특이성을 바꾸어, 더 이상 ‘꽃향기’가 아닌 ‘썩은 고기 냄새’를 만들어냈다. 이처럼 효소 하나의 미세한 구조 변화가 꽃의 전체 생태전략을 뒤바꿔놓은 셈이다.


이러한 변화는 무작위적이지만 선택적이다. 즉, 자연선택은 이러한 효소 변이를 적극적으로 지지했다. 왜냐하면 썩은 냄새를 통해 꽃가루를 옮겨줄 곤충을 더 잘 유혹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실제로 이들 악취 꽃은 이전보다 더 많은 곤충을 끌어들였고, 수분 성공률도 높아졌다.

3. 왜 굳이 ‘악취’를 선택했을까?

처음에는 의문이 생긴다. 꿀벌, 나비, 벌새 등은 예쁜 색과 향긋한 냄새에 이끌리는데, 왜 어떤 식물은 이토록 강렬하고 역겨운 악취를 선택했을까? 그 이유는 ‘생태적 경쟁 회피’에 있다.

족도리풀속(Asarum) 속 식물에서 악취를 유발하는 주요 휘발성 화합물은 꽃 전체 중에서도 꽃받침에서 가장 많이 방출되는 것으로 나타났다

꽃가루를 옮기는 곤충은 수가 제한되어 있다. 특정 지역에서 꿀벌이 지배적인 수분 매개자라면, 수많은 식물이 이들을 두고 경쟁하게 된다. 이런 경쟁 환경에서 어떤 식물은 꿀벌 대신 파리나 쇠똥구리, 딱정벌레처럼 인간이 꺼리는 곤충을 목표로 삼는다. 파리나 딱정벌레는 대체로 시체나 배설물, 썩은 음식 냄새에 이끌리는데, 여기에 ‘악취를 풍기는 꽃’이 끼어드는 것이다. 이 전략은 매우 효율적이다. 경쟁자가 거의 없고, 곤충의 반응도 즉각적이다.


또한, 이들 곤충은 후각이 매우 발달해 있어 냄새가 아주 멀리서도 감지된다. 즉, 향기 기반 유혹 전략은 시각적 매체보다 훨씬 넓은 반경에서 작용할 수 있다. 파리와 쇠똥구리는 냄새에 이끌려 수 킬로미터 떨어진 곳에서도 꽃을 찾아올 수 있으며, 이 과정에서 꽃가루를 운반해준다.


4. 인간의 감각과 생태계의 어긋남

인간은 꽃을 미적 대상으로 보지만, 생태계는 철저하게 기능 중심으로 꽃을 평가한다. 우리가 보기에는 ‘이상한 냄새’가 나는 꽃도, 자연계에서는 생존을 위한 정교한 설계일 수 있다. 시체꽃의 경우, 썩은 고기처럼 보이기 위해 꽃잎 색도 검붉고, 표면이 번들거리며, 심지어 개화할 때 체온을 높여 실제 고기처럼 따뜻하게 만든다. 이런 위장전략은 곤충을 완벽히 속여, 꽃에 알을 낳거나 머물게 하며 그 과정에서 꽃가루를 옮기도록 한다.


실제로 시체꽃은 해마다 개화할 때마다 수많은 곤충을 유인하고, 그 생태적 성공은 압도적이다. 또, 어떤 종은 꽃 안에서 벌레가 나오지 못하도록 잠시 가둔 후(잠입형 수분), 곤충이 몸에 꽃가루를 충분히 묻히도록 유도하기도 한다.

5. 향기의 진화는 멈추지 않는다


놀라운 점은 이런 향기의 진화가 지금도 진행 중이라는 사실이다. 기후 변화, 토지 이용 변화, 곤충 다양성의 감소 등은 식물에게 새로운 선택압으로 작용하고 있다. 일부 식물은 기존에 유혹하던 곤충이 감소하자, 새로운 곤충에 맞춰 향기 성분을 바꾸기 시작했다는 연구도 있다. 이 과정에서 또 다른 ‘악취 전략’이 진화할 가능성도 있다.


또한 인간의 농업과 조경 행위도 향기 진화에 영향을 준다. 인간이 향긋한 냄새를 선호하는 품종만 선택적으로 재배하거나 교배할 경우, ‘인간 맞춤 향기’를 가진 식물이 증가하게 되며, 이는 해당 식물의 곤충 유인력에 영향을 줄 수 있다. 반면, 생태계 자연 상태에서는 오히려 악취를 가진 종이 더 높은 수분 성공률을 보이는 사례가 점점 밝혀지고 있다.


맺음말: ‘꽃 냄새’는 진화의 언어다

꽃의 냄새는 그 자체로 생태계와 유전자의 상호작용을 반영하는 일종의 언어다. 어떤 꽃은 향긋함을 선택했고, 어떤 꽃은 악취를 택했다. 그리고 그 선택 뒤에는 진화의 철저한 계산이 숨어 있다. 인간은 꽃 향기를 감성으로 받아들이지만, 자연은 냄새를 생존의 도구로 사용한다.

‘내 입 냄새 어때?’라는 질문이 웃음을 자아낼 수는 있지만, 자연계에서 이 질문은 곧 생존의 여부를 가르는 전략이다. 꽃의 향기는 오늘도 곤충에게 무언가를 속삭이고 있다. 그리고 그 속삭임은 생태계 전체를 연결하는 보이지 않는 대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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