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무도 안온다… 엑시트만 남은 10년의 민낯 [脫 한국, 실패한 리쇼어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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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도 안온다… 엑시트만 남은 10년의 민낯 [脫 한국, 실패한 리쇼어링

by honeypig66 2025. 4. 16.

아무도 안 온다… 엑시트만 남은 10년의 민낯

[脫한국, 실패한 리쇼어링]


1) 2020년, 코로나 팬데믹은 전 세계 공급망을 뒤흔들었다. 글로벌 경제는 휘청였고, 각국은 자국 중심의 공급망 재편을 외쳤다. 한국 역시 예외는 아니었다. 정부는 ‘리쇼어링(reshoring)’이라는 구호를 앞세워 해외로 나간 기업들을 국내로 불러들이는 데 총력을 기울였다. 대규모 세제 혜택, 규제 완화, 공공 부지 제공까지. "이제는 돌아올 때"라는 정치적 선언은 당시 언론을 타고 희망적으로 퍼졌다.


하지만 그로부터 10년이 지난 2025년, 현실은 정반대로 흘러가고 있다. 돌아오는 기업은커녕 떠나는 기업만 늘고 있다. 산업단지는 텅 비었고, 정부의 유턴 기업 지원센터는 사실상 개점휴업 상태다. '리쇼어링 1호'라 불리던 몇몇 기업들도 조용히 다시 해외로 발길을 돌렸다. 무엇이 잘못된 걸까. 이른바 ‘탈(脫)한국’은 왜 가속화되고 있는가.

2) 리쇼어링, 처음부터 삐걱였다


정부는 2020년 이후 매년 "리쇼어링 활성화 대책"을 발표해왔다. 해외에 나간 제조업체들이 국내로 복귀하면, 법인세 감면과 함께 입지 지원, 연구개발(R&D) 보조금 등을 제공하겠다는 내용이었다. 실제로 정부는 리쇼어링 기업에게 최대 20년간 법인세 감면 혜택을 제시했다. 하지만 현실은 이 제도들이 기업 입장에서 실효성이 없다는 것을 여실히 드러냈다.

첫째, 국내 인건비는 동남아나 중국에 비해 최소 2배 이상 비쌌다. 단순히 세금을 줄여준다고 해서 이 차이를 상쇄할 수 없었다. 둘째, 노동 유연성이 극도로 낮았다. 한 번 고용한 인력을 해고하기 어려운 구조는 기업 입장에서 ‘위험요소’로 작용했다. 셋째, 환경 규제, 행정 절차, 인허가 시스템 등은 여전히 복잡하고 느렸다. 정부가 "기업하기 좋은 나라"를 외쳤지만, 기업들은 "달라진 게 없다"고 입을 모았다.


3) 눈속임에 불과했던 ‘리쇼어링 1호’ 기들

2021년, A중공업이 ‘리쇼어링 1호 기업’으로 소개됐다. 당시 언론은 대대적으로 보도했고, 정부 고위 관계자가 현장을 방문해 기념사진을 찍었다. 하지만 정작 A중공업은 본사 기능만 일부 옮겼을 뿐, 핵심 생산라인은 여전히 베트남에 남겨뒀다. 이른바 ‘서류상 리쇼어링’이었다.


이후로도 비슷한 사례는 줄을 이었다. 어떤 기업은 단순히 해외 지사를 정리하고, 국내에 새로운 법인을 설립한 뒤 '복귀'했다고 발표했다. 실제 고용 창출이나 생산 능력 이전은 없었다. 정부의 보조금을 받기 위한 ‘형식적인 귀환’이었을 뿐이다.

실제 통계를 보면 더 뚜렷하다. 2020년 이후 2024년까지

정부가 ‘리쇼어링 성공’으로 발표한 기업은 총 120여 곳. 그러나 이 중 완전한 생산 공장을 국내에 건설한 기업은 10%도 채 되지 않았다. 나머지는 연구소 수준의 시설이거나, 생산 비중이 미미한 수준이었다.

4) 탈한국, 가속페달을 밟다


반면, 해외로 떠나는 기업은 꾸준히 증가하고 있다. 2024년 한 해에만 약 1,500개 기업이 신규 해외 법인을 설립했다. 주로 동남아, 인도, 멕시코 등으로 향했다. 최근에는 미국과 유럽으로의 ‘탈한국’도 두드러진다. 이는 단순한 생산비 절감을 넘어, ‘시장 근접성’, ‘정책 안정성’, ‘노동 유연성’ 등 포괄적 경영 환경에서 한국이 경쟁력을 잃고 있다는 방증이다.


한국을 떠난 한 중견 부품업체 대표는 “한국에서는 계획을 세우는 것보다 인허가를 받는 시간이 더 걸린다. 해외에선 6개월이면 공장 가동이 가능한데, 한국에선 2년이 걸릴 판”이라며 한숨을 내쉬었다. 그는 현재 베트남에 제2공장을 건설 중이다.

특히 반도체, 2차전지, 전기차 배터리 등 전략 산업조차 리쇼어링에 실패하고 있다. 글로벌 대기업들은 오히려 한국을 ‘생산기지’가 아닌 ‘연구거점’으로만 활용하고 있다. 고부가가치 연구는 국내에서 하고, 대량 생산은 외국에서 하는 구조다. 결국 국내 고용은 늘지 않고, 기술만 남는 ‘반쪽짜리 산업 전략’이 되고 있다.

5) 청년이 떠나고, 지방은 쪼그라든다

매매현수막 내걸린 구미 산업단지 - 지난 10일 경북 구미 국가산업단지 1단지에 공장 매매·임대를 알리는 현수막이 걸려 있다. 한국산업단지공단에 따르면, 지난 5월 기준 구미 국가산단에 있는 중소기업 10곳 중 4곳 정도만 공장을 가동하고 있다.

기업의 탈출은 청년의 탈출로 이어지고 있다. 제조업 중심 도시였던 구미, 창원, 포항 등은 청년 유출 1순위 도시가 됐다. 공장은 가동을 멈췄고, 산업단지는 텅 빈 건물만 남았다. 리쇼어링을 통해 지역 균형 발전을 이루겠다는 정부의 청사진은 이제 아무도 믿지 않는다.


지역 대학들은 매년 신입생 부족에 시달리고 있다. 산업과 인구가 빠져나간 도시엔 '기초생활 유지'마저 어려워진다. 정부가 내놓은 ‘지방소멸 대응 정책’조차 땜질에 불과했다. 전국 각지에 생긴 ‘유턴기업 특화단지’는 개점휴업 상태다. 수요가 없는 기반시설만 덩그러니 남아 있다.

6) 미래를 위한 전환점은 있는가

문제는 이제 단순히 ‘리쇼어링’이 실패했다는 사실을 넘어서, 산업 전반에 걸쳐 한국의 매력이 사라졌다는 데 있다. 노동시장 개혁, 규제 혁신, 교육 개편, 인구 정책 등 장기적이고 체계적인 구조 개혁 없이는 ‘다시 돌아오라’는 말조차 설득력을 잃는다.


일각에서는 "이제는 돌아오라"고 외치는 것이 아니라, "어떻게 남길 것인가"를 고민해야 한다고 말한다. 기업을 위한 토양이 아닌, 사람을 위한 국가 전략이 필요한 시점이다. 기업도, 사람도, 기술도 한국을 떠나는 이 흐름을 되돌리기 위해서는 땜질식 정책이 아닌 근본적 패러다임 전환이 필요하다.


마무리: 아무도 안 온다


2025년 현재, 유턴 기업 리스트는 사실상 멈췄다. 지원 예산은 삭감되고, 관련 부처조차 다른 사업에 눈을 돌렸다. 리쇼어링은 ‘정책적 실패’라는 꼬리표를 달고 역사 속으로 사라지는 중이다.


돌아오길 기대했던 이들은 오지 않았고, 남아 있던 이들마저 짐을 싸고 있다. '엑시트(Exit)'는 이제 기업만의 이야기가 아니다. 청년의 엑시트, 기술의 엑시트, 지방의 엑시트까지. 한국이 맞이한 ‘10년의 민낯’은 지금 우리에게 근본적인 질문을 던진다.

한국은 기업하기 좋은 나라인가. 아니, 살기 좋은 나라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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