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자도 남자처럼 팔굽혀펴기 하라” – 美 육군, 전투병과에 ‘성중립 체력시험’ 도입

2020년대에 접어들며 전 세계 군대는 점차 다양성과 포용을 강조하는 방향으로 나아가고 있다. 미국 육군(Army)은 그 중심에 선 대표적 사례로, 최근 전투병과를 포함한 모든 부대에서 ‘성중립 체력시험(Gender-Neutral Physical Fitness Test)’을 본격적으로 도입하고 시행에 들어갔다. 이 체력시험의 핵심은 간단하다. “여성이든 남성이든, 전장에서 요구되는 임무는 동일하므로 동일한 기준으로 평가받아야 한다”는 원칙이다.

이 변화는 겉보기엔 단순한 체력평가 기준 조정처럼 보일 수 있다. 하지만 그 이면에는 군의 조직문화, 성평등 인식, 전투역량 평가 방식 등 다양한 층위에서의 의미 있는 변화가 얽혀 있다.
1) 체력시험의 전환: ACFT의 도입
기존의 미국 육군 체력시험(APFT)은 1980년대에 도입되어 오랫동안 사용되었다. 2분간의 팔굽혀펴기, 윗몸일으키기, 그리고 2마일(약 3.2km) 달리기로 구성되어 있었으며, 남성과 여성, 그리고 연령대별로 점수 기준이 달랐다. 하지만 이 시험은 실제 전투 상황과는 동떨어진 운동 위주라는 지적이 이어졌고, 이에 따라 육군은 보다 현실적이고 기능적인 기준을 마련하고자 2020년부터 새로운 ‘육군 전투 체력 시험(Army Combat Fitness Test, ACFT)’을 도입하였다.

ACFT는 총 6개 항목으로 구성되어 있으며, 이는 다음과 같다:
1. 3회 반복 최대 데드리프트
2. 약 4.5kg 의약품 공 던지기(후방으로)
3. 손으로 기는 플랭크 자세 및 릴리즈 푸쉬업
4.스프린트-드래그-캐리(Sprint-Drag-Carry)
5. 레그턱(Leg Tuck) 또는 플랭크

6. 2마일 달리기
이 항목들은 실제 전투 현장에서의 움직임—예컨대 적의 화망 아래에서 전우를 끌고 이동하거나, 무거운 장비를 들고 빠르게 뛰어야 하는 상황—을 반영해 구성되었다. 중요한 변화는 바로 모든 병사에게 동일한 기준을 적용한다는 점이다. 성별이나 연령에 따라 점수 기준이 달랐던 과거와 달리, ACFT는 ‘하나의 기준’ 아래 평가를 받게 되었다.

2) ‘성중립 시험’의 도입 배경
이러한 변화의 근저에는 2015년 미국 국방부의 결정이 있다. 당시 애슈턴 카터(Ashton Carter) 국방장관은 여성에게도 모든 전투병과를 개방한다고 발표했다. 여성들도 보병, 기갑, 특수전과 같은 전투 최일선에 투입될 수 있는 길이 열린 것이다.

그러나 이와 동시에 던져진 질문이 있었다. “여성도 전투 임무를 수행할 체력과 준비가 되어 있는가?” 그리고 더 근본적으로는 “우리는 여성을 남성과 동일하게 평가할 준비가 되어 있는가?”였다. 이 두 질문에 대한 미국 육군의 답은 ACFT였다. 여성도 남성과 같은 기준으로 훈련하고, 시험을 치르며, 합격 여부가 결정된다는 것이다.

이는 단순히 시험의 문제가 아니라, 군 조직의 성평등에 대한 철학을 반영한 결정이기도 하다. 미 육군은 “병사의 성별은 고려 대상이 아니다. 우리는 임무 수행 능력을 본다”는 입장을 내세우며, 성별에 관계없이 모두가 같은 전투력을 요구받는 현실을 시험에 반영한 것이다.
3) 현실의 반응과 논란

하지만 모든 변화에는 반발이 따른다. ACFT 시행 초기부터 ‘여성 차별 논란’이 일었다. 2021년 초, 시험 데이터를 분석한 결과 여성의 합격률이 남성보다 현저히 낮다는 보고서가 나왔고, 특히 체력적으로 고강도 항목(데드리프트, 스프린트-드래그-캐리 등)에서 여성 병사들의 낙제율이 높게 나타났다.

이에 대해 여성 병사들과 인권 단체들은 "평등과 공정함은 동일한 기준을 의미하지 않는다"며 시험 개편을 요구했다. 그들은 성별 간 생물학적 차이를 인정하고, 실질적 평등을 위한 차등 기준이 필요하다는 입장을 보였다.

반면, 다른 일부에서는 “전투현장은 평등을 고려하지 않는다”며 “누구든 전장을 버틸 수 있는 체력을 갖추는 것이 먼저”라는 반박이 나왔다. 특히 실제 전투를 수행한 퇴역 군인들 사이에서는 “동일 임무에는 동일 기준이 원칙”이라는 지지 의견도 적지 않았다.

결국 미 육군은 2022년 일부 항목을 조정하며 시험을 유연하게 적용하는 방식을 도입했다. 예컨대 레그턱 대신 플랭크를 선택할 수 있게 했고, 특정 직책에 따라 점수 기준을 구분하는 절충안을 내놓았다. 하지만 여전히 핵심 원칙인 ‘성중립’은 유지하고 있다.
4) 문화적 변화로서의 의미
ACFT는 단순한 체력 시험이 아니다. 그것은 미국 군 조직이 변화하는 사회와 어떻게 접점을 찾고, 포용적이면서도 효율적인 시스템을 구축하려 하는지를 보여주는 상징적 사례다. 여성 군인의 수는 매년 증가하고 있고, 그들은 이제 단지 ‘참여자’가 아닌 ‘중추적인 전력’으로 여겨지고 있다.

과거에는 ‘여성도 군에 갈 수 있다’는 것이 뉴스였다면, 이제는 ‘여성도 전투에 나설 수 있다’는 현실이 되었고, 더 나아가 ‘동일 기준으로 평가받아야 한다’는 요구가 당연한 것으로 받아들여지고 있다. 이 흐름은 군대라는 폐쇄적이고 보수적인 조직마저 변화를 수용하게 만들었고, ACFT는 그 상징 중 하나다.
5) 한국군에도 시사하는 바
이러한 미국 육군의 변화는 한국군에도 중요한 시사점을 던진다. 최근 몇 년간 한국에서도 여군의 역할 확대에 대한 논의가 이어져 왔고, 전투병과의 일부가 여군에게 개방되었다. 그러나 여전히 체력기준, 배치 방식, 내부 문화 등에서 성별에 따른 구분이 존재하며, 때로는 그 차이가 불필요한 고정관념과 차별을 낳기도 한다.
미국 육군의 사례는 "진정한 평등이란 같은 훈련, 같은 기준, 같은 평가를 통해서만 이룰 수 있다"는 교훈을 제공한다. 물론 단순한 기준의 복제가 아니라, 각 군의 문화와 특수성을 반영한 실질적인 제도 설계가 필요할 것이다. 그러나 ‘성중립’이라는 개념 자체가 한국군에서도 점차 화두로 떠오르고 있다는 점은 분명한 변화의 조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