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인공감미료 '사카린'의 대반전?…'항생제 내성' 없앤다
100년 넘은 감미료, 미래 의학의 '키'가 될까

1900년대 초반부터 설탕을 대체할 감미료로 사용되며 세계인의 식탁에 오르내렸던 인공감미료 '사카린'이 최근 의학계에서 전혀 예상치 못한 용도로 주목받고 있다. 바로 현대 의학이 직면한 가장 큰 문제 중 하나인 '항생제 내성' 해결의 실마리를 제공할 수 있다는 연구 결과가 발표되면서다.
설탕의 300배 당도…오랜 역사 가진 감미료

사카린(Saccharin)은 1879년 미국 존스홉킨스대학교의 화학자 콘스탄틴 팔베르그(Constantin Fahlberg)에 의해 처음 합성되었다. 당시 그는 석탄 타르에서 유도한 화합물 중 하나가 놀랍도록 단맛이 나는 것을 발견했고, 이를 '사카린'이라 명명했다. 사카린은 설탕보다 약 300배 이상 단맛을 지니고 있으며, 칼로리가 거의 없어 당뇨병 환자나 다이어트를 원하는 사람들에게 대체 감미료로 각광받아왔다.

1930~1970년대까지는 사카린이 다양한 식품과 음료에 널리 사용되었지만, 이후 다른 감미료(예: 아스파탐, 수크랄로스 등)의 등장과 일부 동물실험에서의 발암 가능성 논란으로 사용량이 감소하기도 했다. 그러나 2000년대 이후 미국 식품의약국(FDA)과 유럽식품안전청(EFSA) 등 주요 보건기관들이 사카린의 안전성을 재확인하면서 다시금 다양한 식품 속에서 찾아볼 수 있게 됐다. 특히 요즘에는 무설탕 요구르트, 다이어트 음료, 껌, 약용 캡슐 코팅 등에 널리 활용된다.

2) '단맛' 너머의 가능성…항생제 내성 해결 열쇠?
최근 한국과학기술연구원(KIST)과 서울대학교 공동 연구진이 발표한 논문에 따르면, 사카린이 항생제 내성 세균을 억제하는 기능을 가지고 있을 가능성이 제기되었다. 연구진은 사카린이 특정 유형의 병원성 박테리아에 대해 생존력을 떨어뜨리는 효과가 있음을 실험을 통해 입증했으며, 특히 항생제가 듣지 않는 다제내성균(MDR, Multi-Drug Resistant bacteria)에 대해 사카린을 투입했을 때 항생제의 효과가 되살아나는 현상을 확인했다.

이 연구는 사카린이 박테리아의 대사 경로 중 일부를 차단하거나, 세포막을 불안정하게 만들어 항생제가 다시 작동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준다는 가설을 기반으로 진행되었다. 즉, 사카린은 단독으로 항생제 역할을 하지는 않지만, 항생제와 병용 투여했을 때 그 효과를 회복시켜주는 '보조제'로서의 가능성을 갖는다는 것이다.



3) 연구의 주요 결과와 의미
실험 결과, 사카린을 항생제 '테트라사이클린'과 함께 사용할 경우, 기존에는 생존율이 90% 이상이었던 내성균이 20% 미만으로 줄어드는 결과를 보였다. 이는 사카린이 내성균의 항생제 저항 메커니즘 일부를 억제한다는 강력한 근거로 해석된다. 특히 이 연구는 쥐를 대상으로 한 전임상 실험에서도 유의미한 효과를 확인한 만큼, 향후 임상시험으로 확대될 가능성이 높다.

또한 연구진은 사카린의 분자 구조를 바탕으로, 항생제 내성을 제어할 수 있는 신약 후보 물질을 합성해내는 데도 성공했다. 이로써 사카린은 단순한 감미료를 넘어, 차세대 항생제 연구의 '플랫폼 분자'로서도 활용될 수 있다는 새로운 관점을 열어줬다.


4) '약이 되는 감미료', 산업계 반응은?
이번 발견은 식품 및 제약 산업계 모두에게 큰 반향을 일으켰다. 식품 업계에서는 기존의 감미료에 대한 인식이 바뀌는 계기로 보고 있으며, 일부 제약사들은 이미 사카린 유도체를 기반으로 한 항생제 보조제 개발에 착수한 것으로 알려졌다.

국내 한 바이오벤처 기업 관계자는 "기존에 비의약 성분으로 간주되던 감미료가 항생제와 결합해 내성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는 사실은 신약 개발의 패러다임을 전환시킬 수 있다"며, "특히 식품 유래 성분이라는 점에서 안정성과 상용화 가능성 면에서 큰 장점을 지닌다"고 설명했다.

5)향후 과제와 신중한 접근 필요성
물론 아직 넘어야 할 산도 많다. 사카린은 현재까지 일반 식품첨가물로 분류되어 왔기에, 이를 의약 성분으로 활용하기 위해서는 철저한 독성 시험과 임상 시험이 필요하다. 특히, 감미료로서의 복용량과 의약적 용도로의 복용량이 다를 수 있기 때문에, 이에 대한 명확한 안전 기준 설정이 필요하다.
또한, 항생제 내성균은 매우 다양한 기전을 통해 저항성을 갖추고 있기 때문에, 사카린이 모든 유형의 내성균에 대해 효과를 보일지는 아직 미지수다. 연구가 확대될수록 그 적용 범위와 한계에 대한 추가적인 검증이 필요하다.
6) 결론: 사카린, 다시 '희망의 분자'로
100년 넘게 인류의 단맛을 책임져 온 사카린이 이제는 인류의 건강을 지키는 최전선에서 다시 조명을 받고 있다. 단순히 '달기만 한 감미료'로 여겨졌던 이 분자가 항생제 내성이라는 현대 의학의 난제를 풀어줄 열쇠로 재조명되는 것은 과학기술이 가져오는 '우연 속의 필연'일지도 모른다.
앞으로의 추가 연구와 임상 시험을 통해 사카린이 정말로 항생제 내성 해결의 실마리가 될 수 있다면, 이는 단순한 과학적 발견을 넘어 인류 보건 역사에 한 획을 긋는 사건이 될 것이다. 그리고 그 시작은 우리가 일상적으로 마시던 무설탕 음료 속 한 방울의 단맛에서 비롯되었을지도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