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래는 "자녀보다 먼, 친구보다는 가까운" 존재로서 반려견의 정체성과 인간과의 관계를 다룬 텍스트입니다. 헝가리 외트뵈시 로란드 대학의 연구와 관련된 내용을 기반으로 구성하였습니다.
자녀보다 먼, 친구보다는 가까운…반려견은 우리에게 어떤 존재인가

1) 현대 사회에서 반려동물, 특히 반려견은 단순한 동물이 아닌 가족의 일원으로 자리 잡았다. 그들은 우리와 함께 일상을 보내며 감정을 나누고, 때로는 고독을 달래주는 존재로서 우리 곁에 있다. 하지만 우리는 이 존재를 정확히 어떻게 인식하고 있을까? 헝가리 외트뵈시 로란드 대학(ELTE)의 에니코 쿠비니이 교수 연구팀은 이에 대해 흥미로운 질문을 던졌다. “사람들은 반려견을 자녀처럼 여기는가, 아니면 친구처럼 여기는가?” 이 질문에 대한 해답을 찾기 위해, 연구팀은 약 700여 명의 반려견 보호자를 대상으로 심층적인 설문조사와 인터뷰를 진행했고, 그 결과는 2025년 4월 23일(현지시간) 과학 저널 *사이언티픽 리포트(Scientific Reports)*를 통해 발표되었다.

2) 인간-개 관계의 심리적 구조
연구진은 설문을 통해 보호자들이 반려견과 맺고 있는 정서적 유대, 상호작용 방식, 책임감의 수준, 의사소통의 형태 등을 다각도로 분석하였다. 그 결과, 대부분의 보호자들이 반려견을 "완전히 독립된 존재"로 보기보다는 "가족처럼 소중한 존재"로 인식하고 있었으며, 특히 많은 응답자들이 반려견을 “자녀보다 덜하지만 친구보다는 더 가까운 존재”라고 응답했다. 이는 단순히 애정의 정도를 넘어, 보호자가 반려견에게 느끼는 보호 본능, 돌봄의 책임, 정서적 유대감을 포괄하는 것이다.

쿠비니이 교수는 이를 두고 "반려견은 인간에게 정체성이 독특한 관계적 존재로 자리잡고 있다. 그들은 자녀처럼 전적으로 의존하는 존재는 아니며, 친구처럼 동등하게 의사소통할 수 있는 존재도 아니다. 반려견은 그 중간 지점에서 사람에게 특별한 의미를 부여한다"고 설명했다.

3) 반려견을 통해 드러나는 인간의 감정 구조

흥미롭게도, 반려견과의 관계는 보호자의 성격, 연령, 사회적 배경 등에 따라 차이를 보였다. 젊은 보호자일수록 반려견을 친구처럼 인식하는 경향이 있었으며, 중장년층은 더 높은 비율로 자녀 같은 존재로 간주했다. 이는 인간이 나이가 들수록 정서적 의지 대상이나 돌봄의 필요가 커지는 것과 연관이 있어 보인다. 또한 독신이거나 자녀가 없는 경우, 반려견을 자녀 대체물로 인식하는 경향이 두드러졌다.

이러한 정서적 대체 효과는 단순한 감정의 투사로 끝나지 않고, 실제 삶의 방식까지 변화시킨다. 예컨대 일부 보호자들은 반려견의 식습관이나 건강을 인간의 그것과 동일한 수준으로 신경 쓰며, 여행 계획이나 이사 등의 중요한 인생 결정 시에도 반려견의 존재를 가장 먼저 고려한다. 연구팀은 이를 통해 반려견이 "사회적 결정의 축"으로 기능하고 있다고 분석했다.

4) 언어를 초월한 의사소통
쿠비니이 교수팀은 이 연구에서 인간과 반려견 간의 ‘비언어적 의사소통’의 중요성도 강조했다. 인간은 말을 하지 않는 반려견과도 표정, 몸짓, 소리 등을 통해 정서적 교감을 나눈다. 실제로 보호자들은 반려견의 ‘기분’을 알아차리는 능력이 뛰어난 것으로 나타났으며, 이는 장기적인 상호작용과 학습의 결과로 볼 수 있다.

연구에 참여한 한 보호자는 이렇게 말했다. “말은 없지만, 제 개는 제 기분을 저보다 더 잘 압니다. 제가 힘들어할 때 조용히 곁에 있어주는 그 존재감은 말로 표현할 수 없어요.” 이처럼 반려견은 언어를 초월한 감정적 유대를 가능하게 하며, 이는 인간관계에서 경험하기 힘든 특별한 교감의 형태다.

5) 반려견은 단순한 애완동물이 아니다

이번 연구의 중요한 시사점은, 반려견을 더 이상 단순한 애완동물(pet)로 분류할 수 없다는 데 있다. 애완동물이라는 단어가 암시하는 수동성과 일방적 애정의 수용체라는 개념은 이제 반려견에게 부적절하다. 반려견은 인간과 상호작용하며 관계를 형성하는 ‘동반자(companion)’로서, 사회적 위치를 재정립해야 할 시점에 있다.

이러한 관점은 법적, 제도적 변화로도 이어지고 있다. 이미 일부 유럽 국가에서는 반려동물을 ‘물건’이 아닌 ‘정서적 존재’로 규정하고, 이들의 복지를 보호하는 법적 틀이 마련되고 있다. 한국에서도 반려동물의 법적 지위를 강화하려는 움직임이 이어지고 있으며, 반려견을 위한 보험, 심리치료, 유치원 등 새로운 산업도 급속히 성장 중이다.
결론: 우리에게 반려견은 누구인가?
연구 결

과는 인간과 반려견 사이의 관계가 단순히 ‘사람과 동물’의 구도를 넘어섰음을 보여준다. 그들은 우리의 감정을 반영하고, 우리의 일상을 함께하며, 때로는 삶의 목적조차 함께 나눌 수 있는 존재다. 자녀보다 약간은 거리감이 있으나, 친구보다 훨씬 더 깊은 애착을 형성하는 이 존재는, 인간에게 있어 독특하면서도 소중한 동반자다.
궁극적으로 반려견은 ‘가족’이라는 단어의 범주를 확장시키는 존재이다. 이들은 언어 없이도 사랑을 주고받고, 인간의 외로움을 감싸주는 존재로서, 앞으로도 더 많은 학문적, 사회적 조명이 필요하다. 그리고 우리는 묻는다. “그들은 과연 우리의 반려견일까, 아니면 우리 삶을 함께 살아가는 또 다른 가족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