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한 사고로 가족을 잃은 유족 A씨는 고인의 지인들에게 부고를 전하고 싶었지만, 연락처를 알 길이 없어 난감했다. 고인의 휴대전화와 이메일 계정에는 지인들의 연락처가 남아 있었을 가능성이 높았지만, 유족이 이를 열람할 권한이 명확하지 않아 연락조차 할 수 없었다. 디지털 환경이 일상화되면서 고인의 연락처, 사진, 메신저 대화 기록, 소셜미디어 계정 등 디지털 유산(디지털 자산)의 처리 문제가 점점 더 중요해지고 있다. 하지만 국내에는 아직 명확한 법적 규정이 없어 유족들이 혼란을 겪고 있다.
디지털 유산, 누구의 권리인가?
디지털 유산이란 개인이 온라인에서 생성하고 관리하던 데이터, 계정, 디지털 콘텐츠 등을 의미한다. 여기에는 이메일, SNS, 클라우드 저장소, 온라인 뱅킹, 암호화폐 등 다양한 자산이 포함된다. 과거에는 유언장이나 법적 절차를 통해 고인의 재산을 상속받는 것이 일반적이었지만, 디지털 유산은 기존의 상속 개념과는 다른 문제를 야기한다.
특히, 개인정보 보호법과 서비스 제공업체의 이용약관이 충돌하면서 유족들이 고인의 디지털 유산을 접근하는 데 어려움을 겪는다. 예를 들어, 구글, 애플, 네이버 등의 플랫폼은 가입자의 사망 후 계정 접근을 명확히 규정하지 않거나, 별도의 요청 절차를 요구하는 경우가 많다. 이 과정에서 가족들은 복잡한 절차를 거쳐야 하며, 때로는 고인의 계정을 영구히 폐쇄해야 하는 경우도 발생한다.
국내외 규정 비교: 해외는 어떻게 대응하고 있나?
미국과 유럽 일부 국가에서는 디지털 유산 상속에 대한 법적 규정을 마련하고 있다. 미국은 2015년 '통일 수탁 디지털 자산법(UFADAA)'을 도입해, 고인의 디지털 유산을 법적 상속자가 접근할 수 있도록 했다. 이 법에 따라 개인은 생전에 디지털 자산 관리자를 지정할 수 있으며, 유족들은 법원의 허가를 받아 고인의 계정에 접근할 수도 있다.
반면, 한국에서는 디지털 유산에 대한 명확한 법적 규정이 존재하지 않는다. 현행법상 개인정보 보호법은 고인의 개인정보를 유족이 열람하는 것에 대한 명확한 조항이 없으며, 정보통신망법 역시 계정 소유자의 사망 이후의 처리를 구체적으로 다루지 않는다. 따라서 유족들은 개별 플랫폼의 정책에 따라 절차를 진행해야 하며, 경우에 따라서는 법원의 결정이 필요할 수도 있다.
디지털 유산 처리의 문제점
1. 복잡한 접근 절차
대부분의 플랫폼은 계정 소유자가 직접 설정한 비밀번호나 2단계 인증 없이는 접근이 불가능하다. 유족이 이를 해제하려면 사망 증명서, 가족 관계 증명서 등을 제출해야 하는데, 승인까지 오랜 시간이 걸릴 수 있다.
2. 법적 보호 부족
디지털 유산은 일반적인 재산과 달리 법적으로 상속 개념이 명확하지 않다. 특히, 일부 플랫폼은 사망 후 계정을 폐쇄하거나 삭제하는 정책을 유지하고 있어 유족이 필요한 정보를 확보하지 못할 수도 있다.
3. 프라이버시 침해 논란
유족이 고인의 계정에 접근하는 것이 고인의 사생활을 침해하는 것인지에 대한 논란도 있다. 일부 고인은 자신의 디지털 자료가 공개되지 않기를 원할 수도 있기 때문에, 사전에 이에 대한 동의를 명확히 남겨야 한다는 의견도 있다.
해결 방안: 디지털 유산 관리법 마련 시급
디지털 유산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법적 제도 정비가 필요하다. 이를 위해 다음과 같은 방안이 제시될 수 있다.
1. 디지털 유산 관리 법제화
디지털 유산을 상속의 범위에 포함하고, 유족이 고인의 계정과 데이터에 접근할 수 있도록 법적 근거를 마련해야 한다.
2. 생전 관리 시스템 도입
사용자가 생전에 자신의 디지털 자산을 사후에 어떻게 처리할지 설정할 수 있도록 하는 시스템이 필요하다. 예를 들어, 구글의 '사망한 계정 관리자' 기능처럼, 일정 기간 활동이 없을 경우 미리 지정한 사람에게 데이터 접근 권한을 부여하는 방식이 있다.
3. 서비스 제공업체와 협력 강화
국내 주요 IT 기업과 협력해, 유족이 보다 쉽게 고인의 디지털 유산을 처리할 수 있는 표준 절차를 마련해야 한다. 이를 통해 플랫폼별로 다른 정책을 통합하고, 유족들이 불필요한 법적 절차를 거치지 않도록 할 필요가 있다.
맺음말
디지털 시대가 지속되면서 디지털 유산 문제는 앞으로 더욱 중요해질 것으로 보인다. 고인의 지인에게 부고를 알리는 것처럼 기본적인 정보 접근조차 어려운 현실에서, 유족들이 겪는 불편을 해소하기 위한 법적·제도적 정비가 시급하다. 디지털 유산이 고인의 사생활과 유족의 권리 사이에서 적절한 균형을 찾을 수 있도록, 사회적 논의와 법 개정이 필요한 시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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