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론입니다. 아래는 ‘테토-에겐 이론’(테스토스테론-에스트로겐 이론)에 대해 과학적, 사회학적으로 분석한 글입니다.
MBTI 다음은 호르몬? ‘테토-에겐 이론’에 열광하는 MZ세대 – 호르몬 기반 유형 프레임의 과학적·사회학적 분석

최근 MZ세대(밀레니얼+Z세대) 사이에서는 성격이나 인간 유형을 분류하는 새로운 방식이 주목받고 있다. MBTI를 넘어 이제는 생물학적 호르몬을 기반으로 인간의 성향을 분류하는 ‘테토-에겐 이론’이 유행처럼 번지고 있다. 테토(Teto)는 남성호르몬인 테스토스테론(testosterone)을, 에겐(Egen)은 여성호르몬인 에스트로겐(estrogen)을 줄인 말로, 사람의 행동 양상이나 대인관계 방식, 사회적 태도를 이 두 호르몬의 영향으로 설명하려는 시도이다.
겉보기에는 생물학에 기반한 과학적인 이론처럼 보이지만, 실제로 ‘테토-에겐 이론’은 과학적 근거보다는 사회문화적 맥락과 정체성 담론의 일부로 이해되어야 한다. 본 글에서는 테스토스테론과 에스트로겐의 생물학적 기능과 그 한계, 이 이론이 인기를 끄는 사회적 배경, 그리고 이러한 유형 프레임이 인간 이해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를 과학적·사회학적으로 고찰하고자 한다.
1. 테스토스테론과 에스트로겐: 무엇을 하는 호르몬인가?

테스토스테론은 주로 남성의 고환에서 생성되는 스테로이드 호르몬으로, 근육량 증가, 체모, 골밀도, 성적 충동, 공격성, 경쟁욕과 관련이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여성도 난소와 부신에서 소량을 생성하지만, 남성보다 훨씬 적은 농도를 유지한다.

에스트로겐은 여성의 난소에서 분비되는 주요 성호르몬으로, 월경주기 조절, 유방 발달, 피하지방 축적, 감정 조절 등에 관여한다. 남성도 소량의 에스트로겐을 가지고 있으며, 뇌 기능 및 정자 생성에 일정한 역할을 한다.
이 두 호르몬은 단순히 성별을 구분짓는 것이 아니라, 뇌와 신체의 다양한 기능에 영향을 미친다. 특히 테스토스테론은 뇌의 편도체(공포 및 공격성 반응과 관련) 활성과 연관이 있고, 에스트로겐은 전두엽(계획과 판단, 감정 조절과 관련) 및 해마(기억과 학습과 관련) 활동과 연계되어 있다고 보고된다.

하지만 이러한 생물학적 기능이 곧 인간의 성격을 단정짓거나 유형화할 수 있다는 뜻은 아니다. 인간의 성향은 유전자, 환경, 경험, 문화적 요인 등 다양한 요소가 복합적으로 작용해 만들어지며, 호르몬은 이 중 하나의 요소일 뿐이다.
2. 테토형과 에겐형: 단순화의 유혹

‘테토형’은 테스토스테론의 영향을 많이 받은 사람이라는 의미로, 대체로 직선적, 과감함, 승부욕 강함, 감정보다 이성적 판단 우위, 주도적 성향으로 설명된다. 반대로 ‘에겐형’은 공감 능력 우수, 감성적, 관계 중심, 협력 추구, 섬세하고 부드러운 이미지로 묘사된다.

이런 설명은 매우 직관적이고 쉽게 공감되는 측면이 있다. 그러나 이는 성별 고정관념과 매우 유사한 틀을 재활용하는 구조다. 실제로 테스토스테론이나 에스트로겐 수치가 성격의 본질을 좌우한다는 결정적 증거는 없다. 오히려 동일한 호르몬 수치를 가진 사람도 전혀 다른 성격과 행동 양식을 보이는 경우가 많으며, 호르몬 수치는 시시각각 변동한다.
즉, 테토형과 에겐형은 과학적 이론이라기보다는 호르몬을 빌린 ‘성격 설명의 비유적 모델’이며, 개인차를 무시하고 이분법적으로 인간을 구분하려는 단순화의 산물이라고 할 수 있다. 문제는 이러한 모델이 개인의 정체성을 고정시키고 오해를 부추길 수 있다는 점이다.

3. 왜 MZ세대는 ‘유형 프레임’에 열광하는가?
MBTI, 애니어그램, 퍼스널컬러, 그리고 이제는 ‘테토-에겐 이론’까지. MZ세대는 자신을 유형화하고, 남을 분석하며, 그에 따라 인간관계를 설명하려는 경향을 강하게 보인다. 그 배경에는 몇 가지 사회적 요인이 존재한다.

1. 불확실성에 대한 대응 기제
복잡하고 예측 불가능한 현대 사회에서 사람들은 자신의 정체성과 방향성을 확인할 도구를 찾는다. 유형 프레임은 "나는 어떤 사람인가?"라는 질문에 쉽게 답을 제공하며, 관계에서 오는 불확실성과 불안을 완화시켜준다.
2. 디지털 사회의 커뮤니케이션 도구
SNS에서 자신의 성향을 공개하고 공유하는 것은 하나의 문화로 자리 잡았다. “나는 테토형이야, 너는 에겐형이지?”와 같은 대화는 친밀감을 만들고 관계를 정의하는 수단이 되며, 이는 일종의 ‘관계 정립 레벨 테스트’ 역할을 한다.

3. 개인의 차이를 존중하면서도 분류하고 싶어 하는 욕구
MZ세대는 다양성과 개성을 중시하지만, 동시에 사람을 빠르게 파악하고 관계를 형성하고 싶어 한다. 유형화는 그 복잡성을 단순화하여 관계 비용을 줄이는 역할을 한다.
4. 전통적 젠더 프레임에 대한 유연한 저항
흥미로운 점은 테토-에겐 이론이 전통적 젠더 구분과 유사한 구조를 가지면서도, 성별과 무관하게 누구든 ‘테토형’ 혹은 ‘에겐형’이 될 수 있다는 점에서 젠더 중립적 감수성을 일부 반영하고 있다는 것이다. 이는 젠더 고정관념에서 벗어나고자 하는 세대의 욕구와 호르몬 기반 설명을 결합한 타협적 결과물로 볼 수 있다.

4. 호르몬 결정론의 위험성과 한계
‘테토-에겐 이론’이 간과하는 중요한 사실은 인간이 호르몬에 의해 전적으로 결정되는 존재가 아니라는 점이다. 생물학적 요인이 성격과 행동에 영향을 줄 수는 있지만, 그것이 전부는 아니다. 인간은 학습 가능하고 변화할 수 있으며, 상황과 맥락에 따라 전혀 다른 행동을 보인다.

또한 호르몬 농도 자체가 상황에 따라 변한다. 스트레스, 운동, 수면, 사회적 상호작용 등은 테스토스테론이나 에스트로겐의 분비에 직접적인 영향을 미치며, 이로 인해 그 사람이 한시적으로 더 공격적이거나 감성적일 수는 있다. 그러나 이러한 상태는 고정된 성향을 의미하지 않는다.
결정론적 사고는 개인의 책임을 호르몬 탓으로 돌리거나, 변화 가능성을 부정하게 만들 수 있다. 예를 들어, “나는 테토형이라서 공감 능력이 부족해” 같은 인식은 자기 성찰의 기회를 줄이고, 타인에 대한 이해를 막는다. 이는 인간관계의 단절을 낳을 수 있다.
5. 사회학적 맥락에서 본 ‘유형 중독’

현대인은 끊임없이 자신을 정의하고 타인을 분류하고 싶어 한다. 이는 정체성의 불안에서 비롯된 일종의 방어기제다. 유형화는 타인의 복잡성을 축소시키고, 이해를 돕는 도구로 활용될 수 있지만, 지나친 의존은 편견과 낙인을 불러올 수 있다.
사회학자 피에르 부르디외는 인간을 하나의 유형이나 계급으로 단순화하는 시도를 ‘상징적 폭력’이라고 표현한 바 있다. 이는 표면적으로는 중립적이거나 과학적일 수 있으나, 실상은 사회적 위계와 권력을 내면화시키는 도구가 되기 때문이다.

‘테토-에겐 이론’ 역시 특정 성향(예: 테토형의 추진력, 카리스마, 지배력)을 더 가치 있는 것으로 간주하게 만들 수 있으며, 이는 사회적 편향을 강화시킨다. 이는 과거 남성성 중심적 리더십 모델의 연장선으로도 해석될 수 있다.
결론: 호르몬보다 중요한 것들
‘테토-에겐 이론’은 생물학적 언어를 빌려 인간을 분류하려는 하나의 문화적 현상이다. 이는 정체성 탐색과 소통을 위한 수단으로 활용될 수 있으나, 과학적 진실로 오인되어서는 안 된다. 호르몬은 인간 행동에 영향을 주는 수많은 요소 중 하나일 뿐이며, 인간은 호르몬을 넘는 복합적 존재다.
MZ세대가 유형 프레임에 열광하는 이유는, 결국 불확실한 세상 속에서 자신을 이해하고 관계를 정의하려는 욕구 때문이다. 그러나 진정한 이해와 성장은 유형화된 틀을 넘어서려는 시도에서 비롯된다. 사람을 이해하는 가장 좋은 방법은 질문하고 경청하는 것이지, 혈중 호르몬 수치를 가늠하는 것이 아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