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3줄 요약
- 사제복의 상징인 ‘로만칼라’는 단순한 패션이나 권위가 아니라, 세상에 대해 죽고 그리스도 안에서 하느님께 전적으로 봉헌된 삶을 드러내는 거룩한 표지입니다.
- 최근 개신교 목회자들 사이에서도 로만칼라 착용이 늘고 있으나, 역사적·신학적 정체성과 관련해 다양한 의견과 신학적 긴장을 낳고 있습니다.
- 18년의 사목 경험과 병상의 환자복 속에서 깨달은 것은, 진정한 성직의 표지는 목에 두른 흰 띠가 아니라 끝까지 사람을 사랑하고 품으려는 마음이라는 사실입니다.
🖋️ 서론: 목을 조이는 흰 띠, 그 속에 담긴 18년의 약속

사제복의 상징인 '로만칼라'를 처음 목에 둘렀던 날의 기억은 여전히 생생합니다. 18년이라는 시간 동안 그 작고 하얀 플라스틱 띠는 때로 나를 숨 막히게 하는 굴레이기도 했고, 때로는 세상의 유혹으로부터 나를 지켜주는 가장 강력한 방패이기도 했습니다.
많은 이들이 이를 사제의 전용 '패션' 정도로 여기기도 하지만, 로만칼라에는 그보다 훨씬 깊은 신학적 의미와 한 인간의 투신이 담겨 있습니다. 단순히 검은 셔츠 위에 덧댄 장식이 아닌, 한 영혼이 하느님과 신자들 앞에 드린 거룩한 '성직'의 증표로서 로만칼라가 갖는 본질적인 가치를 가만히 돌아봅니다.
1. 로만칼라의 본래 의미를 묻다

최근 교파를 불문하고 '로만칼라' 셔츠를 입은 목회자들을 어렵지 않게 봅니다. 검은 셔츠에 흰색 칼라. 단순해 보이는 이 복장은 사실 가톨릭 사제가 세상에 대해서는 죽고 그리스도 안에서 살아가겠다는 봉헌의 표지이자 '거룩한 구별'의 상징입니다.
로만칼라는 사제가 자신의 목소리를 낮추고 주님의 말씀을 대신 전하겠다는 순명의 상징입니다. 또한 세상의 즐거움을 뒤로하고 자신을 비우고 하느님께 봉헌된 삶을 드러내는 외적 고백이기도 합니다. 목을 팽팽하게 조이는 그 작은 흰 띠는 사제로 하여금 언제나 누구를 향해 서 있는지 잊지 않게 만드는 거룩한 경계선이었습니다.
2. 왜 개신교 목회자들이 착용하는가? 신학적 시선의 차이

일부 개신교에서는 복장의 편의성이나 '성직자로서의 권위'를 세우기 위해 이를 차용하기도 합니다. 하지만 개신교의 근간인 '만인사제설'을 생각할 때, 가톨릭 사제직의 고유한 정체성과 역사적 맥락이 담긴 로만칼라를 착용하는 것은 신학적 긴장을 낳는다는 지적도 있습니다.
개신교 전통에서 목회자는 특별한 사제 계급이 아니라 회중을 섬기는 직분으로 이해됩니다. 그럼에도 최근 일부 교단과 목회자들 사이에서 성직의 권위와 일체감을 드러내기 위해 로만칼라나 성직복을 도입하려는 움직임이 나타나면서, 복장과 신학적 정체성 사이의 경계가 모호해지는 현상이 신학적 논의의 대상으로 다루어지고 있습니다.
3. 정체성의 혼란: 누구를 위한 복장인가?

길에서 로만칼라를 한 분을 보면 신자들은 당연히 '신부님'이라 생각하고 다가갑니다. 그러나 대화를 나누다 보면 목사님인 경우가 왕왕 있습니다. 이는 단순히 옷의 스타일이나 개인의 취향 문제를 넘어, 수백 년간 지켜온 가톨릭 사제직의 고유한 상징성과 시각적 정체성을 모호하게 만드는 행위가 되기도 합니다.
복장은 단순히 입는 옷이 아니라 그 사람이 품은 신학과 공동체의 역사적 정체성을 대변하는 언어입니다. 겉모습의 형태를 빌려오는 것보다 중요한 것은, 그 복장이 상징하는 거룩한 무게와 책임을 온전히 살아내는 태도일 것입니다.
📖 4. 로만칼라보다 더 중요한 것은 삶이었다

18년 동안 로만칼라를 착용하며 살아보니, 시간이 흐를수록 깨닫게 된 사실이 하나 있습니다. 사람들은 처음에는 로만칼라를 보고 다가오지만, 결국에는 그 사람이 어떤 삶을 살아가는지를 기억한다는 것입니다.
누군가에게는 위로의 말 한마디가 로만칼라보다 더 큰 사제의 표지가 되었고, 병실에서 손을 잡아주던 침묵이 어떤 설교보다 깊은 복음이 되기도 했습니다.
복장은 사람을 소개할 수는 있지만, 사람을 완성하지는 못합니다. 결국 성직자의 권위는 옷에서 나오는 것이 아니라 삶에서 드러납니다. 그래서 로만칼라는 목적이 아니라, 그 삶을 끊임없이 기억하게 하는 하나의 표지였습니다.
🖋️ 맺으며: 칼라를 벗고 마주한 세상, 그러나 지워지지 않는 흔적

현재 장제동 더필립병원 807호 병상에서 생활하며 사제복 대신 환자복을 입고 있지만, 18년 동안 내 목을 감쌌던 그 팽팽한 긴장감은 여전히 내 삶의 태도로 남아 있습니다.
우리가 겉으로 드러나는 '패션'이나 형식에 집중할 때, 그 이면에 담긴 '성직'의 무게를 잊지 말아야 합니다. 내가 새로운 지식을 나누고 새로운 길을 개척하는 지금의 과정 역시, 로만칼라를 찼을 때 가졌던 그 진실한 마음의 연장선이라 믿습니다.
이제 제 목에는 더 이상 로만칼라가 없습니다. 그러나 사람을 사랑하고, 상처 입은 이를 품으며, 진실을 말하려 했던 그 다짐만은 아직 제 삶 속에 남아 있습니다. 어쩌면 사제의 표지는 목에 두른 흰 띠가 아니라, 끝까지 사랑하려는 마음인지도 모르겠습니다.
📌 안내 말씀
※ 이 글은 특정 교파를 비판하거나 우열을 가리기 위한 목적이 아니라, 가톨릭과 개신교의 역사와 교리를 이해하기 쉽게 소개하기 위해 작성되었습니다. 교리와 역사에 대한 세부 해석은 각 교단 및 학자에 따라 차이가 있을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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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참고 문헌
- 「가톨릭교회 교리서」
- 「로만 칼라의 유래는? 신학과 영성」 (가톨릭뉴스 지금여기)
- 개신교 내에서의 로만칼라 착용 관련 논단 자료
- 국립국어원 및 교회 전례 용어 자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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