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osrgn"nnmu" 🦆 처음 본 개를 엄마처럼 따라간 새끼 오리, 대체 무슨 일이 벌어진 걸까? | 부제 : 뇌 회로에 깊이 새겨지는 각인의 순간과, 어른이 되어 다시 써 내려가는 관계의 방향
심리 & 과학(뇌과학·심리·생명과학·동물과학)

🦆 처음 본 개를 엄마처럼 따라간 새끼 오리, 대체 무슨 일이 벌어진 걸까? | 부제 : 뇌 회로에 깊이 새겨지는 각인의 순간과, 어른이 되어 다시 써 내려가는 관계의 방향

by honeypig66 2026. 9. 7.

 

  갓 깨어난 오리 알 앞에서 마당을 서성이던 강아지 한 마리가 호기심 어린 눈으로 멈춰 섭니다. 노란 털이 젖은 채 알껍데기를 깨고 나온 새끼 오리는 눈을 몇 번 껌벅이더니, 자신을 내려다보는 털복숭이 강아지의 얼굴을 유심히 바라봅니다.

그리고 강아지가 킁킁거리며 걸어가기 시작하자, 새끼 오리는 삐약거리며 망설임 없이 그 뒤를 쫄래쫄래 따라가기 시작합니다. 진짜 어미 오리가 옆에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말이죠.

부화 직후 처음 만난 대상을 따라가는 새끼 오리의 모습은 각인 현상을 보여주는 대표적인 장면입니다. 작은 새끼 오리의 첫 경험이 이후 행동의 방향에 영향을 줄 수 있다는 사실은 오랫동안 사람들의 호기심을 자극해 왔습니다. 출처: Unsplash / Priscilla Du Preez

 

이런 모습으로 널리 알려진 것이 오스트리아의 동물행동학자 콘라트 로렌츠(Konrad Lorenz)의 유명한 '각인(Imprinting)' 연구입니다.

콘라트 로렌츠는 부화 직후 자신을 처음 본 새끼 오리와 거위들이 자신을 따라다니는 현상을 관찰하며 각인 연구를 발전시켰습니다. 이후 각인은 동물의 초기 학습과 행동 발달을 이해하는 중요한 연구 주제가 되었습니다. 출처: Unsplash / Surface

 

로렌츠 교수는 부화 직후 어미 대신 자신이나 개, 심지어 걸어 다니는 장난감이나 노란 공을 먼저 본 새끼 오리와 거위들이 그 대상을 어미처럼 졸졸 따라다니는 모습을 관찰했습니다.

여기서 자연스럽게 한 가지 의문이 생겨납니다.

대체 갓 태어난 새끼 오리의 머릿속에서는 무슨 일이 벌어졌기에, 전혀 다르게 생긴 대상을 망설임 없이 '엄마처럼' 따라가고, 자신의 행동을 이끄는 대상으로 삼게 된 걸까요?

우리는 흔히 생명체가 부화할 때 어미의 완벽한 생김새나 유전적 정보를 머릿속에 다 가지고 태어난다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뇌과학과 행동생물학은 오리의 뇌가 훨씬 정교하면서도 효율적인 방식을 택했음을 보여줍니다.

부화 직후 일정한 시간 동안, 새끼 오리의 뇌에는 외부 자극에 극도로 민감하게 반응하는 '민감기(Sensitive period)'가 찾아옵니다.

부화 직후의 일정한 시기는 새끼 오리가 주변의 자극에 특히 민감하게 반응하는 시기입니다. 이때 경험한 대상은 이후 그 대상을 따라가는 행동과 강하게 연결될 수 있습니다. 출처: Unsplash / Toa Heftiba

 

이때 들어온 시각·청각 정보는 그 대상을 따라가는 행동을 유발하는 신경회로와 강하게 연결됩니다. 부화 직후 눈앞에서 움직이거나 소리를 내는 대상을 따라가도록 만들어진 선천적인 행동 경향에, 실제 경험이 결합하는 것입니다.

새끼 오리는 복잡한 어미의 생김새를 일일이 분석하는 대신, 부화 직후 만난 대상을 따라가는 효율적인 생존 기전을 발휘하는 셈입니다.

야생에서 부화한 새끼 오리에게 가장 먼저 눈앞에 나타나는 존재는 대개 자신을 품어준 어미입니다.

야생에서 새끼 오리가 부화한 뒤 가장 먼저 만나는 존재는 대개 자신을 품어준 어미입니다. 환경에서 얻은 경험을 이용해 따라갈 대상을 정하는 방식은 새끼가 어미 곁에 머물도록 하는 데 매우 효율적일 수 있습니다. 출처: Unsplash / Tim Mossholder

 

따라서 뇌는 불필요하게 거대한 유전 정보를 머릿속에 담아두는 대신, 환경에서 얻은 단서로 어미를 알아보도록 진화했습니다.

작고 제한된 자원을 가진 뇌가 생존 확률을 높이기 위해 선택한, 가장 확실하고 정직한 학습 방식이었던 셈입니다.

그렇다면 이 강력한 각인은 평생 바뀔 수 없는 절대적인 운명일까요?

새끼 오리의 각인을 인간에게 그대로 대입할 수는 없습니다. 하지만 이 작은 생명체의 모습을 보고 있으면, 인간 역시 어린 시절의 경험과 관계 속에서 만들어진 기대와 두려움이 이후의 선택에 얼마나 깊은 흔적을 남기는지 떠올리게 됩니다.

18년 동안 현장에서 수많은 사람의 삶을 지켜보고, 예기치 않은 무너짐 속에서 내 몸과 마음을 다시 추스르며 깨달은 가슴 깊은 진실이 있습니다.

우리는 가끔 살아가면서 스스로도 이해하기 힘든 반응이나 습관에 사로잡히곤 합니다. 누군가에게 지나치게 의존하거나, 반대로 자그마한 상처에도 마음의 문을 닫아버리는 자신을 보며 자책하면서 말이죠.

내가 원해서 선택한 것이 아니었음에도, 처음 만난 환경이 새겨놓은 신념과 두려움의 틀을 마치 내 삶의 절대적인 정답인 양 고집하며 따라가고 있었던 것은 아닐까요.

그러나 인간의 뇌는 어린 새끼 오리의 고정된 민감기에만 갇혀있지 않습니다.

비록 내 처음의 경험과 흔적이 나를 아프게 했거나 원치 않는 방향이었을지라도, 어른이 된 우리는 새로운 경험과 깨달음을 통해 내 안의 신경 회로를 다시 가꾸어갈 수 있는 '신경가소성'이라는 또 다른 선물을 가지고 있기 때문입니다.

인간의 뇌는 이미 만들어진 경험의 흔적에만 머물러 있지 않습니다. 새로운 경험과 학습이 반복되면서 신경회로의 연결과 기능이 변화할 수 있다는 신경가소성은, 우리가 과거의 경험만으로 미래를 결정할 필요가 없다는 가능성을 보여줍니다. 출처: Unsplash / Alex Shute

 

오늘 나는 과거의 강렬한 첫 기억이나 타인이 새겨놓은 기준에 마냥 끌려가고 있지는 않은지, 이제는 내 의지와 정직한 진심으로 새로운 삶의 방향을 써 내려갈 준비가 되었는지 가만히 마음을 들여다봅니다.

처음 새겨진 흔적이 내 삶의 모든 방향을 결정할 필요는 없습니다. 지나온 경험을 지우지는 못하더라도, 새로운 경험을 통해 앞으로 걸어갈 길은 다시 선택할 수 있습니다. 출처: Pexels / Andrea Piacquadi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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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동물과 뇌과학] 기억과 학습의 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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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다음 이야기 예고

🐓 "‘닭머리’라는 말은 억울합니다… 사람 얼굴을 수십 명이나 구별한다고요?"

"기억력이 나쁘거나 어리석은 사람을 흔히 '닭머리(닭뇌)'라고 부르곤 합니다. 하지만 뇌과학과 조류 행동학이 밝혀낸 닭의 지능은 우리의 선입견을 한참 벗어납니다. 닭은 수십 마리의 동료는 물론, 자신에게 잘해준 사람과 해를 가한 사람의 얼굴을 구별해 기억한다는 사실! 편견 속에 가려져 있던 닭의 반전 기억력과, 타인의 얼굴에 선입견의 프레임을 씌우며 살아가는 우리 인간의 심리를 함께 들여다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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