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먹는 습관’도 유전된다: 아버지의 식생활이 자녀의 식습관에 미치는 과학적 영향

우리는 종종 부모로부터 외모나 성격, 질병 경향성을 유전받는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최근의 과학적 연구들은 식습관, 특히 ‘무엇을 언제 얼마나 먹느냐’ 하는 먹는 습관 자체도 유전적·후성유전적 요인을 통해 부모로부터 자녀에게 전달될 수 있음을 시사하고 있다. 특히 아버지의 식습관과 생활 양식이 자녀의 건강과 식생활 방식에 영향을 줄 수 있다는 점이 주목을 받고 있다.
이 글에서는 아버지의 식습관이 자녀의 식습관에 영향을 미치는 여러 과학적 기전을 유전학, 후성유전학, 행동 과학, 환경심리학, 영양학 등의 관점에서 분석한다.
1. 유전학과 식습관: 단순한 유전 그 이상

식습관은 단순히 개인의 취향 문제처럼 보일 수 있지만, 실제로는 다양한 유전적 요인과 밀접한 관련이 있다. 예를 들어, 특정 음식에 대한 민감성이나 선호는 유전자에 따라 다르게 나타날 수 있다. TAS2R38 유전자는 쓴맛을 느끼는 민감도에 관여하는 유전자로, 이 유전자의 특정 변이를 가진 사람은 브로콜리, 케일, 콜리플라워 같은 쓴맛이 강한 채소를 꺼릴 수 있다. 이 유전자는 부모로부터 물려받기 때문에 아버지가 쓴맛에 민감해 채소를 기피한다면, 자녀도 유사한 유전적 특성을 갖고 비슷한 기피 행동을 보일 수 있다.

또한, FTO 유전자는 포만감 조절과 식욕에 영향을 미치며, 해당 유전자의 특정 변이는 과식을 유발하거나 고지방·고열량 음식을 선호하게 만들 수 있다. 이 유전자 역시 아버지로부터 자녀에게 유전될 수 있으며, 이런 유전적 경향은 가족 단위의 식습관 패턴에 자연스럽게 영향을 끼친다.

2. 후성유전학(Epigenetics): 아버지의 식생활이 자녀 유전자 발현을 바꾼다
유전적 요인 외에도 **후성유전학(epigenetics)**은 아버지의 식생활이 자녀에게 영향을 미칠 수 있는 핵심 기전으로 주목받는다. 후성유전이란 유전자의 염기서열 자체는 변하지 않지만, DNA의 발현 방식이 환경적 요인—예를 들어, 영양 상태나 스트레스, 독성 물질 노출 등—에 따라 달라지는 현상을 말한다.

동물 실험에서 아버지 생쥐에게 고지방 식이를 제공한 결과, 이 생쥐의 자손들은 인슐린 저항성과 대사 이상을 보였다. 이는 아버지의 정자 DNA 메틸화 양상이 변화되었고, 그 결과 자녀 세대에서 당 대사와 관련된 유전자들이 비정상적으로 발현된 것으로 분석되었다. 인간에서도 유사한 현상이 보고되고 있다. 예를 들어, 스웨덴 Överkalix 연구에서는 19세기 북부 스웨덴의 곡물 수확 상황이 남성 청소년기의 영양 섭취에 영향을 미쳤고, 이 시기 아버지를 둔 자손들이 당뇨와 심혈관질환에 걸릴 확률이 통계적으로 유의하게 달라졌다는 결과를 제시했다.

이러한 후성유전 기전은 아버지의 식생활이 단순히 가정 내 식탁 문화를 형성하는 데서 그치지 않고, 자녀의 대사 건강과 식습관의 생물학적 기반에 영향을 미친다는 점에서 매우 중요한 발견이다.
3. 사회학적 모방과 행동 심리학: ‘먹는 태도’도 학습된다

유전과 후성유전은 생물학적 기반이지만, 자녀의 식습관에 영향을 미치는 더 직접적인 요인은 **사회학적 모델링(social modeling)**이다. 이는 부모의 식사 행태를 자녀가 관찰하고 모방하는 과정에서 비롯된다. 특히 아버지는 자녀에게 강한 동기 유발 모델로 작용할 수 있다. 연구에 따르면, 아버지가 규칙적인 식사를 하고 건강한 식단을 유지하면, 자녀 또한 자연스럽게 이를 모방하는 경향을 보인다. 반면 아버지가 패스트푸드나 단 음식을 자주 섭취하는 경우, 자녀 역시 해당 음식을 ‘보통의 선택’으로 인식하게 되어 비슷한 패턴을 따르게 된다.

또한 식사 중 아버지의 말투, 식사 시간대, 음식을 선택하는 기준, 식사 예절까지 모두 자녀의 ‘식행동(食行動)’에 영향을 미친다. 이는 단순한 모방을 넘어 자녀가 음식에 대해 가지는 심리적 태도—예를 들어 음식에 대한 죄책감, 위안, 즐거움 등—에도 영향을 미친다. 특히 아버지가 식사 중 감정 조절 도구로 음식을 사용할 경우, 자녀 역시 스트레스를 받을 때 폭식이나 야식으로 이를 해소하려는 식습관을 가질 수 있다.

4. 가정 내 식환경과 접근성: 아버지의 선택이 자녀의 식단을 제한한다
가정 내에서 식품의 선택권은 종종 부모에게 있다. 아버지가 장보기, 외식 장소 선택, 음식의 조리 방식을 결정하는 경우, 그 선택은 자녀의 식습관 형성에 직접적인 영향을 미친다. 예를 들어, 아버지가 고기 위주의 식단을 선호하고 채소 섭취를 꺼리는 경우, 자녀는 어릴 때부터 채소에 노출될 기회가 줄어들고 자연스럽게 편식 경향을 보이게 된다. 반대로, 아버지가 다양한 식재료와 조리법을 활용하는 경우 자녀는 식습관의 다양성과 영양 균형을 학습할 기회를 얻게 된다.

또한, 아버지가 불규칙한 식사나 음주 중심의 저녁 식사를 자주 한다면, 자녀 역시 식사 리듬이 무너지고 야식 중심의 생활로 이어질 가능성이 높다. 이는 성장기 자녀의 비만, 수면장애, 집중력 저하 등으로 이어질 수 있다.
5. 성별에 따른 영향의 차이

흥미로운 점은 아버지의 식습관이 자녀에게 미치는 영향이 자녀의 성별에 따라 다르게 나타날 수 있다는 점이다. 일부 연구에 따르면, 아버지의 식생활은 특히 아들에게 더 강하게 모방되는 경향이 있다. 이는 남자아이가 아버지를 동일시하는 경향이 더 크기 때문으로 해석된다. 반면, 딸의 경우 어머니의 식습관에 더 영향을 받을 수 있으나, 아버지가 ‘가정 내 식문화의 중심’ 역할을 할 경우, 딸에게도 큰 영향을 미칠 수 있다.

6. 정책적·교육적 시사점
이러한 연구 결과들은 공공보건 및 식생활 교육 측면에서 중요한 시사점을 제공한다. 많은 국가에서는 모성을 중심으로 한 영양 교육에 집중하고 있지만, 아버지의 식습관이 후손의 건강에 미치는 장기적 영향을 고려할 때, 부성(父性) 중심의 식생활 교육도 강화할 필요가 있다. 특히 임신 전 준비기와 아이가 성장하는 초기 환경에서 아버지의 역할은 단순한 조력자에서 적극적 모델로 전환되어야 한다.

결론
아버지의 식습관은 단순한 개인의 생활 습관을 넘어서 자녀의 건강과 인생 전반에 걸친 식습관 형성에 깊은 영향을 미친다. 이는 유전적 특성에서 시작해, 후성유전적 변화, 모방 학습, 가정 내 식품 접근성과 선택권, 심리적 태도 형성까지 복합적인 경로를 통해 이루어진다.

따라서 건강한 식습관을 자녀에게 물려주고자 한다면, 아버지 자신이 먼저 자신의 식생활을 되돌아보고 바람직한 행동을 실천할 필요가 있다. "당신이 먹는 것이 곧 자녀의 미래를 만든다"는 말은 단순한 비유가 아니라 과학적으로 입증되고 있는 현실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