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린 시절의 환경이 뇌 속 ‘하얀 길’을 바꾼다
– 스트레스 많은 어린 시절, 뇌 발달과 생각하는 힘에 어떤 영향을 줄까?

1) 사람의 뇌는 아주 복잡한 구조로 되어 있습니다. 우리가 생각하고, 감정을 느끼고, 행동하는 모든 과정은 뇌 안의 여러 부분이 서로 신호를 주고받으며 이뤄집니다. 이때 이 신호들이 빠르고 정확하게 오가도록 도와주는 것이 바로 뇌 속의 ‘백질(white matter)’입니다. 백질은 쉽게 말해 뇌 속의 도로처럼 생겼다고 생각하면 됩니다. 도로가 잘 깔려 있어야 차가 빠르게 다니듯, 뇌의 백질이 튼튼해야 우리가 생각하고 말하고 움직이는 과정이 매끄럽게 이루어질 수 있습니다.

그런데 최근 연구들에 따르면, 어린 시절의 환경—특히 스트레스를 많이 받는 환경—이 이 백질의 발달에 나쁜 영향을 줄 수 있다는 사실이 밝혀졌습니다. 즉, 어린 시절의 삶이 뇌의 기본 설계에 영향을 줄 수 있다는 말입니다. 그리고 이런 변화는 단순히 뇌 안에서만 끝나지 않고, 생각하는 힘, 감정 조절, 행동 습관 등에도 영향을 미칠 수 있습니다.
2) 뇌 속의 하얀 길, 백질이란?

우리 뇌는 회백질과 백질로 나뉘는데, 회백질은 신경세포가 밀집해 있는 부분으로 ‘뇌의 본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반면 백질은 이 신경세포들이 서로 정보를 주고받는 통로 역할을 하는 부분입니다. 이 백질은 하얗게 보여서 ‘백질’이라 불립니다. 백질이 잘 발달하면 뇌의 각 부분이 빠르게 소통할 수 있게 되고, 그만큼 인지 능력이나 감정 조절 능력도 좋아지게 됩니다.

이 백질은 사람이 자라면서 점점 발달하게 되는데, 특히 태어나서 청소년기까지가 백질이 성장하는 중요한 시기입니다. 이 시기에 좋은 환경에서 자라면 뇌는 더욱 건강하고 유기적으로 연결될 수 있습니다. 하지만 만약 이 시기에 스트레스를 많이 받고 힘든 경험을 한다면, 백질의 발달이 늦어지거나 방해받을 수 있습니다.
3) 어린 시절 환경 스트레스가 백질에 미치는 영향
1. 스트레스는 뇌에 직접 영향을 준다

사람이 스트레스를 받으면 몸에서 ‘코르티솔’이라는 스트레스 호르몬이 나옵니다. 이 호르몬은 위급한 상황에서 우리 몸을 보호해주는 역할을 하지만, 너무 자주 또는 오랫동안 많이 분비되면 오히려 뇌에 해를 끼칠 수 있습니다. 특히 아직 자라고 있는 어린이의 뇌에서는 이 스트레스 호르몬이 백질 발달을 방해할 수 있습니다.

예를 들어, 가정에서 자주 싸움이 일어나거나, 학대를 당하거나, 부모의 관심 없이 방치된 아이들은 코르티솔이 자주 분비되고, 이로 인해 뇌 속에서 백질이 제대로 자라지 못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2. 백질 연결이 약해진다

백질은 뇌의 여러 부분을 연결하는 통로인데, 스트레스가 심한 환경에서 자란 아이들은 이 백질의 연결이 약해지거나 불균형하게 자라나는 경우가 많습니다. 뇌 안의 ‘도로’가 덜 깔리거나, 덜 매끄러운 상태가 되는 것입니다. 이렇게 되면 생각이나 말, 행동이 느려지거나 엉키는 현상이 나타납니다.
4) 인지 기능과 감정 조절에도 영향
1. 생각이 느려지고, 집중이 어려워진다

백질이 제대로 발달하지 않으면, 우리가 정보를 처리하는 속도도 느려집니다. 글을 읽고 이해하는 데 시간이 더 걸리고, 복잡한 문제를 풀 때 쉽게 지치기도 합니다. 또한 주의 집중이 어려워서 공부나 일에 몰두하기 힘든 경우도 많아집니다.

이런 특징은 ADHD(주의력결핍과잉행동장애)나 학습장애 등으로 이어질 수 있습니다. 실제로 많은 연구들이, 어린 시절에 스트레스를 많이 받은 아이들 중 일부가 이러한 진단을 받을 가능성이 높다는 결과를 보여주고 있습니다.
2. 감정을 조절하는 데 어려움이 생긴다

백질은 단지 생각하는 데만 중요한 것이 아닙니다. 감정을 조절하고 사람들과 잘 지내기 위한 능력도 백질이 얼마나 잘 발달했는지에 달려 있습니다. 예를 들어, 화가 날 때 잘 참지 못하거나, 작은 일에도 과하게 슬퍼하거나, 상대방의 기분을 잘 헤아리지 못하는 경우는 백질 연결에 문제가 있을 수 있습니다.

특히 어린 시절에 방임이나 폭력, 정서적 무관심을 경험한 사람들 중 일부는 성인이 된 후 우울증이나 불안장애, 분노조절장애 같은 정서적 어려움을 겪기도 합니다.
5) 그럼 회복은 불가능할까?
1. 뇌는 변화할 수 있다


희망적인 소식은, 우리 뇌는 ‘가소성’을 가지고 있다는 점입니다. 가소성이란, 환경에 따라 뇌가 변화하고 적응할 수 있는 능력을 말합니다. 즉, 어린 시절에 힘든 환경에서 자랐다고 해도, 이후에 좋은 환경이나 적절한 치료를 받으면 뇌의 상태는 어느 정도 회복될 수 있습니다.

특히 백질은 청소년기 후반까지도 계속 발달하므로, 이 시기에 꾸준히 좋은 자극을 주는 것이 매우 중요합니다.
2. 도움을 주는 다양한 방법들

심리 상담 및 치료: 정서적으로 지지받고 자신을 이해받는 경험은 뇌 회복에 긍정적인 영향을 줍니다. 놀이치료, 음악치료, 미술치료 등은 어린이들에게 특히 효과적입니다.
규칙적인 생활: 충분한 수면, 건강한 식사, 규칙적인 운동은 뇌 건강을 유지하는 데 큰 도움이 됩니다.

사회적 지지: 주변 어른들의 관심과 애정, 친구들과의 긍정적인 관계는 뇌를 건강하게 성장시키는 데 필수적입니다.

6) 사회가 함께 고민해야 할 문제
어린 시절의 환경이 단지 성격이나 정서에 영향을 주는 것이 아니라, 뇌의 구조와 기능까지 바꾼다는 사실은 매우 중요한 의미를 가집니다. 이 문제는 개인만의 책임이 아니라, 사회 전체가 함께 풀어야 할 과제입니다.

부모 교육: 자녀에게 안전하고 따뜻한 환경을 제공하는 법을 알려주는 부모 교육 프로그램이 확대되어야 합니다.
위험 가정 지원: 스트레스를 겪는 가정에는 조기 개입과 상담, 재정 지원, 정신건강 서비스 등이 제공되어야 합니다.

학교 역할: 학교는 단순히 공부만 가르치는 곳이 아니라, 아이들의 정서와 사회성을 키워주는 중요한 공간입니다. 교사와 상담사는 아이들의 감정 변화를 잘 관찰하고 적절히 도와야 합니다.
7) 마무리하며
‘뇌 속의 하얀 길’인 백질은 우리 인생의 방향과도 관련이 깊습니다. 이 백질이 건강하게 잘 자라야 생각도 잘하고, 감정도 잘 다스리고, 다른 사람과 좋은 관계도 맺을 수 있습니다.

하지만 이 중요한 구조가 어린 시절의 스트레스에 의해 나빠질 수 있고, 그 여파는 평생에 걸쳐 이어질 수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아이들의 삶의 질을 단지 현재가 아닌 미래를 위한 투자로 생각해야 합니다.
모든 아이가 건강하고 튼튼한 ‘뇌 속 도로’를 가질 수 있도록, 가정과 사회가 함께 손잡고 나아가야 할 때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