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대부분 세 살 이전의 기억이 거의 없거나, 매우 희미하게만 남아 있다고 느낀다. 이러한 현상은 심리학과 신경과학에서 **‘영아기 기억상실(Infantile Amnesia)’**이라고 불리며, 오랫동안 학자들의 관심을 받아온 주제이다. 오랫동안 연구자들은 인간이 왜 영아기의 기억을 잃어버리는지, 그리고 실제로 기억이 사라지는 것인지, 아니면 단순히 떠올릴 수 없는 것인지에 대해 논쟁을 벌여왔다.
최근 연구들은 영아기의 기억이 완전히 사라지는 것이 아니라 단순히 회상하기 어려운 상태에 놓여 있음을 시사한다. 즉, 한살배기 아기도 경험한 것을 기억하고 있으며, 다만 그것을 나중에 언어적·인지적으로 떠올릴 능력이 부족할 뿐이라는 것이다.
1. 영아기 기억상실이란 무엇인가?
영아기 기억상실은 사람들이 생후 2~3년 동안의 기억을 거의 떠올리지 못하는 현상을 의미한다. 이는 인간뿐만 아니라 많은 포유류에서도 발견되는 공통적인 현상이다. 어린 시절 특정한 경험을 했더라도 성장하면서 이를 기억하지 못하는 것이 일반적이다.
영아기 기억상실에 대한 주요한 질문은 다음과 같다.
영아들은 실제로 경험을 기억하는가?
기억이 저장되었지만 단순히 꺼내지 못하는 것인가?
아니면 시간이 지나면서 기억 자체가 사라지는 것인가?
최근의 연구들은 "기억이 사라지는 것이 아니라, 단순히 인출(회상)되지 못하는 것"이라는 가설을 뒷받침하고 있다.
2. 기억은 저장되지만 회상되지 않는 이유
1) 해마(hippocampus)의 미성숙

기억을 담당하는 뇌의 중요한 부위 중 하나가 바로 **해마(hippocampus)**다. 해마는 새로운 기억을 형성하고 저장하는 역할을 하지만, 인간의 해마는 출생 직후 완전히 발달하지 않은 상태이다. 연구에 따르면 해마는 생후 2~4년 사이에 급격히 성장하며, 이 과정에서 기존의 기억을 다시 조직화하는 일이 벌어진다.
즉, 영아기에도 기억이 해마에 저장될 수 있지만, 해마의 미성숙으로 인해 나중에 이 기억을 회상하는 것이 어려워질 수 있다.
2) 언어의 발달과 기억 회상의 관계
어린아이는 언어 능력이 제한적이므로, 경험을 언어적으로 저장하는 것이 어렵다. 기억은 보통 우리가 언어를 통해 정리하고 표현하면서 더욱 강화되는데, 영아들은 이러한 과정이 미흡하다. 따라서 영아기 때의 기억이 비언어적 형태로 저장되었을 가능성이 크고, 성인이 된 후 이를 회상하려 해도 적절한 언어적 틀이 없어 떠올리기 어려운 것이다.
3) 신경세포의 활발한 생성과 기억 손실
또한, 연구자들은 어린 시절 신경세포의 빠른 생성이 오히려 기억을 방해할 수 있다고 보고 있다. 캐나다 토론토 대학교와 미국 뉴욕 대학의 연구에 따르면, 어린 시절 뇌에서 활발하게 신경세포가 생성될수록 기존 기억이 사라질 가능성이 높아진다고 한다.
쥐를 대상으로 한 실험에서, 어린 쥐들은 성체 쥐보다 신경세포 생성이 활발한데, 이들이 특정한 경험을 학습한 후 시간이 지나자 해당 기억을 잃어버리는 경향이 있었다. 반면 신경세포 생성을 인위적으로 억제한 쥐들은 어릴 때 학습한 기억을 더 오래 유지했다.
이는 인간에게도 적용될 가능성이 높다. 즉, 유아기 동안 뇌에서 신경세포가 활발히 생성되면서, 기존의 기억이 흐려지거나 재구성되는 것이다.
3. 실험을 통한 영아기의 기억 확인
그렇다면 정말로 아기들은 기억을 저장하고 있는 것일까? 이에 대한 답을 찾기 위해 여러 실험이 진행되었다.

1) ‘모빌 실험’ – 기억 능력 확인
미국의 심리학자 **캐럴린 로비 콜리어(Carolyn Rovee-Collier)**는 영아의 기억 능력을 확인하는 유명한 실험을 진행했다.
생후 2~6개월 된 아기들의 발에 끈을 묶고, 그 끈을 모빌(천장에 매달린 장난감)과 연결하였다.
아기가 발을 차면 모빌이 흔들리도록 설계되었고, 아기들은 이를 학습하여 더 자주 발을 움직였다.
며칠 후 다시 같은 실험을 진행했을 때, 일부 아기들은 자신이 발을 움직이면 모빌이 흔들린다는 것을 기억하고 같은 행동을 반복했다.
이 실험은 아기들이 특정한 경험을 기억할 수 있음을 보여준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회상 능력이 감소하는 것도 확인되었다.
2) 얼굴 인식 실험
다른 연구에서는 신생아들이 얼굴을 기억하는 능력이 있음을 보여주었다. 실험에서 특정한 얼굴을 반복적으로 본 신생아들은 이후 같은 얼굴을 봤을 때 시선을 더 오래 머무르는 경향을 보였다. 이는 아기들이 새로운 자극과 익숙한 자극을 구별할 수 있으며, 기억하고 있다는 증거가 된다.

4. 영아기 기억상실에 대한 새로운 해석
이러한 연구 결과들을 종합하면, 영아기 기억상실이 기억의 부재가 아니라 기억의 회상 문제에서 비롯된다는 해석이 유력하다. 아기들은 경험을 기억하지만, 성장하면서 해마의 구조적 변화와 언어적 발달 부족으로 인해 이를 떠올리기 어려워지는 것이다.
또한, 영아기에는 기억이 언어적 형태가 아니라 감각적·정서적 형태로 저장될 가능성이 높다. 따라서 우리가 유아기 기억을 떠올리지 못하더라도, 특정한 냄새, 소리, 혹은 장소가 익숙하게 느껴지는 것은 무의식적으로 저장된 기억이 존재하기 때문일 수 있다.
5. 결론
영아기 기억상실은 단순히 기억이 사라지는 것이 아니라, 뇌 발달 과정에서 기존 기억이 재구성되거나 접근하기 어려운 형태로 저장되는 과정에서 나타나는 현상이다.
해마의 미성숙
신경세포 생성 과정
언어적 발달 부족
이러한 요인들이 결합하여 영아기 기억이 회상되지 않도록 만든다. 하지만 실험적으로 볼 때, 아기들은 분명히 기억을 형성하고 있으며, 그것이 완전히 사라지는 것은 아니다.
결국, 한살배기도 기억하지만, 단순히 그것을 꺼내지 못할 뿐이라는 말은 과학적으로도 설득력 있는 주장이라 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