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래는 “늙고 병들면 누가 날 돌봐줄까”라는 질문에 대한 설문조사 결과를 중심으로, 고령화 사회에서의 돌봄 주체 인식 차이를 성별·사회문화적 요인·가족구조 변화·복지정책 등을 토대로 과학적으로 분석한 글입니다.

“늙고 병들면 누가 나를 돌봐줄까”: 성별 인식차, 가족 돌봄의 붕괴, 그리고 요양보호사의 부상
1. 조사 개요 및 주요 결과 요약

재단법인 돌봄과미래가 한국리서치에 의뢰해 2025년 4월 25일부터 30일까지 전국 40세 이상 남녀 1,000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지역사회 돌봄 인식과 수요 조사'는 고령화 사회의 핵심 이슈인 노년기 돌봄 주체에 대한 한국인의 인식을 분석한 중요한 자료다. 응답자 중 39%는 ‘요양보호사가 돌볼 것’이라고 답해 가장 높은 비율을 차지했으며, ‘배우자’(35%), ‘스스로 돌봄’(21%), ‘자녀’(4%) 순으로 나타났다. 특히 배우자 돌봄에 대한 기대는 남성과 여성 사이에서 매우 큰 차이를 보였는데, 남성의 49%는 '배우자(아내)'를 선택한 반면, 여성은 22%만이 '남편'을 돌봄 주체로 상정했다.

이 결과는 단순한 통계적 차이를 넘어, 한국 사회의 돌봄 구조 붕괴, 성별 역할 인식의 불균형, 가족 구조의 변화, 그리고 요양보호사의 제도적 중요성 부상이라는 네 가지 사회적 흐름을 함축한다.
2. 성별 돌봄 인식의 불균형: 왜 남성은 아내를, 여성은 배우자를 덜 신뢰하는가?

설문에서 남성의 절반에 가까운 49%는 배우자인 아내가 자신의 병을 돌봐줄 것으로 기대한 반면, 여성은 단 22%만이 남편을 돌봄 주체로 인식했다. 이 차이는 단순한 기대감의 문제가 아닌, 성별에 따른 생애 경험과 돌봄 역할의 체화 차이를 반영한다.
2.1 가부장제 문화와 ‘돌봄의 성별 분업’

한국 사회는 오랜 기간 가부장제를 기반으로 한 성별 역할 분업이 일반적이었다. 여성은 무급 가사노동과 가족 돌봄을 당연시하는 문화 속에서 자녀, 시부모, 배우자 등을 돌보는 역할을 주도해 왔다. 이에 비해 남성은 ‘돌봄 제공자’보다는 ‘생계부양자’로서의 정체성이 강조되었다. 통계청의 2023년 ‘가사노동 시간 분포 조사’에 따르면 여성은 하루 평균 3시간 이상을 가사 및 돌봄 노동에 사용한 반면, 남성은 45분에 그쳤다.

이러한 현실은 고령 여성으로 하여금 "남편이 나를 돌보지 않을 것"이라는 판단으로 이어진다. 기대의 근거가 경험에 기반한 것이다. 실제 한국의 장기요양보험 수급자 중 65% 이상이 여성이고, 이들 다수는 배우자 사망 또는 부재 상황에서 요양보호사의 도움을 받고 있다.

2.2 남성의 의존성과 인식 왜곡
반면 남성은 생애 전반에서 돌봄 노동을 수행해본 경험이 거의 없어, 노년에도 돌봄은 외부에서 주어지는 것이라는 수동적 인식이 강하다. 특히 배우자인 아내가 자신을 돌볼 것이라 기대하는 경향은, "나는 돌보지 않지만 아내는 돌보는 게 당연하다"는 은퇴기 남성의 무의식적 성 역할 고정관념에서 비롯된다.

3. 가족 돌봄의 약화와 자녀 돌봄 기대의 붕괴
설문 응답에서 자녀가 자신을 돌볼 것이라 답한 비율은 단 4%에 불과했다. 이 결과는 가족 중심 돌봄 체계가 이미 기능을 상실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3.1 저출산과 핵가족화

통계청에 따르면 2024년 기준 한국의 합계출산율은 0.72명으로 세계 최저다. 과거 3~4명의 자녀가 부모를 ‘분담하여’ 돌보던 시절과 달리, 이제는 형제가 없는 외동자녀에게 부모 부양의 모든 책임이 집중되거나, 아예 자녀 수가 없어 돌봄 공백이 발생한다. 더욱이 결혼 및 출산을 하지 않는 인구가 증가하며, 고령층의 '무자녀' 리스크도 커지고 있다.
3.2 자녀 돌봄의 심리적 부담

현대사회에서는 자녀가 경제적, 정서적으로 독립된 개체로 성장하며, '효' 중심의 부모 부양 가치관이 약화되었다. 특히 젊은 세대일수록 부모 부양에 대한 의무감을 부담으로 인식하며, 부모 세대 역시 자녀에게 부담을 주기 꺼려 요양시설이나 요양보호사를 선호하는 경향이 강하다.
4. 요양보호사의 부상과 돌봄의 제도화
이번 조사에서 가장 높은 비율인 39%가 ‘요양보호사’를 돌봄 주체로 선택했다는 사실은, 한국이 ‘비공식적 가족 돌봄’에서 ‘공식적 전문 돌봄’ 체계로 이행하고 있다는 신호다.
4.1 장기요양보험제도와 요양보호사 제도

한국은 2008년부터 노인장기요양보험제도를 시행하고 있으며, 등급 판정을 받은 고령자는 재가급여(요양보호사 방문) 또는 시설급여를 받을 수 있다. 현재 전국에 등록된 요양보호사는 약 180만 명에 달하며, 그중 실제 활동 인원은 약 40만 명이다. 이들은 가사, 투약관리, 위생관리, 정서적 지지 등 복합적 돌봄을 수행한다.
4.2 돌봄 노동의 전문화와 사회적 인정

과거 ‘가족 내 보살핌’은 무급 노동이었지만, 요양보호사 제도는 돌봄을 유급노동이자 사회적 권리로 재정의했다. 특히 독거노인, 치매 환자, 만성질환자 등이 증가하면서 전문 요양보호사의 수요는 폭발적으로 늘고 있으며, 2030년경에는 한국의 전체 65세 이상 인구의 약 20%가 장기요양 서비스를 필요로 할 것으로 예측된다.
5. 스스로 돌봄(Self-care)에 대한 인식 증가

‘스스로 나를 돌봐야 한다’는 응답이 21%에 이른다는 점도 주목할 만하다. 이는 돌봄의 개인화와 건강 자립의식 증가를 시사한다.
5.1 건강 수명과 예방적 자기관리
보건복지부에 따르면 평균 기대수명은 83.6세지만, 건강수명(질병 없이 생활 가능한 연령)은 66.3세로 약 17년의 갭이 있다. 이 차이를 줄이기 위해 중년 이후부터 운동, 식이조절, 정신건강 관리 등을 통해 자기 건강을 지키려는 노력이 늘어나고 있다.
5.2 경제적 부담과 제도적 불신

일부는 돌봄 서비스에 대한 경제적 비용 부담, 또는 요양기관에 대한 불신으로 인해 스스로 건강을 관리하고 가능한 한 타인의 도움을 받지 않으려는 선택을 하기도 한다. 이들은 디지털 헬스케어, 스마트워치, AI 돌봄 로봇 등의 기술에 관심을 갖기도 한다.
6. 시사점: 돌봄의 젠더 불평등 해소와 지역사회 돌봄 확충 필요
이 조사결과는 노년기 돌봄에서 나타나는 젠더 격차와 가족 돌봄의 종말, 그리고 지역사회 돌봄 체계로의 전환 필요성을 강조한다.
젠더 관점에서는 남성의 ‘배우자 의존적’ 사고를 교정하고, 남성도 돌봄에 적극 참여하도록 유도하는 정책이 필요하다. 이는 성인지적 돌봄 교육과 노년기 돌봄의 역할 재정립을 통해 가능하다.

사회적 측면에서는, 요양보호사의 처우 개선, 돌봄 서비스의 품질 제고, 그리고 지역사회 기반 돌봄 인프라 확충이 핵심 과제가 된다. 특히 ‘커뮤니티 케어’는 요양시설의 한계를 보완하며, 노인의 주거지에서의 존엄한 생애 마무리를 가능케 한다.
개인적으로는, 자신의 노후를 타인에게 전적으로 기대하지 않고, 신체적·정신적 자립성과 재무 준비를 포함한 통합적 노후 전략이 필요하다.
결론
“늙고 병들면 누가 나를 돌봐줄까?”라는 질문은 단순한 개인의 불안이 아니라, 한국 사회가 직면한 고령화, 가족 해체, 성별 불균형, 돌봄의 제도화라는 복합적 문제의 집합체다. 앞으로의 돌봄 정책은 단순히 요양시설을 늘리는 것에 그치지 않고, 가족·지역사회·전문 돌봄 인력 간 역할 분담과 연계를 통해 포괄적 돌봄 생태계를 구축하는 방향으로 나아가야 한다. 그러기 위해선 남성과 여성, 개인과 국가, 가족과 지역 모두가 함께 돌봄의 책임을 나눌 수 있는 지속 가능한 사회적 연대의 복원이 필수적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