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속에서 끓는 기름처럼 지구 내부에도 아직 우리가 완전히 알지 못한 에너지원이 존재한다. 최근 과학자들이 주목하고 있는 자원 중 하나가 바로 천연수소(natural hydrogen), 즉 지하에서 자연적으로 생성되고 축적된 수소 가스다. 우리가 흔히 알고 있는 수소는 물을 전기분해하거나 화석연료를 개질하여 억지로 만들어낸다. 하지만 천연수소는 지하에서 자연스럽게 생성되어 마치 천연가스나 석유처럼 존재한다. 가장 최근의 과학적 추정에 따르면, 이런 천연수소의 매장량은 무려 석유 17만 년분에 해당할 수 있다. 이 글에서는 천연수소가 생성되는 경로, 매장 위치, 그리고 인류 에너지 전환에 미칠 수 있는 영향 등을 과학적으로 분석한다.

1) 천연수소란 무엇인가?
천연수소는 화학적으로 분자 수소(H₂) 형태로 존재하며, 지구 내부의 다양한 화학적, 지질학적 과정을 통해 자연적으로 생성된다. 인공적으로 생산되는 수소는 '그레이 수소'(천연가스 개질), '블루 수소'(탄소 포집 포함 개질), '그린 수소'(재생에너지 기반 전기분해) 등으로 나뉘지만, 천연수소는 자연 상태에서 스스로 생겨나는 자원이기 때문에 생산 비용이 거의 들지 않는다는 점에서 수소 경제의 게임체인저가 될 수 있다.

2) 천연수소의 생성 경로: 두 가지 주요 메커니즘
천연수소는 크게 지질학적 수화반응과 방사성 분해라는 두 가지 주요 메커니즘을 통해 생성된다.

1. 지질학적 수화반응 (Serpentinization)
이 반응은 지하 깊은 곳에서 철(Fe)이 풍부한 암석(특히 감람석)이 물과 반응할 때 발생한다. 이 과정에서 수소 분자가 방출된다. 지질학적으로 활발한 해령(mid-ocean ridge)이나 초마그마암 지대에서 흔히 일어나며, 이는 현재 해저와 대륙 지각 양쪽에서 모두 발생 가능성이 있는 반응이다. 이 반응은 열수 분출구(hydrothermal vent) 근처에서 자주 관찰되며, 심해에서 미생물 생태계의 주요 에너지원이 되기도 한다.

2. 방사성 원소에 의한 수분 분해 (Radiolysis)
천연 방사성 물질(예: 우라늄, 토륨, 칼륨 등)이 붕괴하면서 방출되는 방사선이 암석 속 수분을 분해해 수소를 생성하는 과정이다. 이 반응은 지각 깊숙한 곳에서 수백만 년에 걸쳐 지속되며, 전 세계적으로 넓은 지역에서 발생할 수 있는 매우 안정적인 수소 생성원으로 간주된다.

이 외에도 철-탄소 반응, 박테리아에 의한 생성, 열분해 등 여러 보조적인 수소 생성 메커니즘이 존재하지만, 위 두 가지가 천연수소의 주된 근원이 된다.

3) 천연수소의 매장 위치와 지질학적 특징
천연수소는 기존 화석연료처럼 특정 지역에 국한되지 않고 모든 대륙에서 발견 가능성이 있다는 것이 가장 큰 특징 중 하나다. 최근 탐사 사례를 보면 아프리카의 말리(Mali), 유럽의 프랑스 로렌 지역, 오스트레일리아, 미국의 미드웨스트 지역 등 매우 다양한 곳에서 천연수소 분출 및 축적이 확인되었다.

특히 말리의 부르케사(Bourakébougou) 지역에서는 지표면에서 수소가스가 자연적으로 분출되어 이를 직접 연소하는 방식으로 마을에 전력을 공급하고 있다. 이 지역의 수소 함량은 98% 이상으로, 거의 정제 없이 바로 사용 가능한 고순도다. 또한 이 수소 분출은 최소 10년 이상 지속되었고, 이는 지하에 재충전되는 수소 저장소가 존재한다는 사실을 암시한다.

지질학적으로는 초염기성암(ultramafic rock), 단층 및 절리 구조, 심층 수문지질계, 열수변질대 등이 중요한 요소로 작용한다. 수소가 축적되려면 생성뿐 아니라 지하에 가둬둘 수 있는 덮개암(cap rock) 구조가 필요하며, 이는 기존의 석유나 가스와 유사한 탐사 기술을 적용할 수 있음을 의미한다.
4) 왜 이제야 발견되었는가?
천연수소가 존재한다는 개념은 수십 년 전부터 알려져 있었지만, 정제 가능한 상업적 매장량이 있다는 사실은 최근에야 주목받기 시작했다. 그 이유는 다음과 같다.
과거에는 수소가 탐사 과정에서 무가치한 부산물로 간주되었고, 탐사 장비가 수소 검출에 최적화되지 않았다.

기존의 수소 경제는 화석연료 기반의 산업 구조에 밀접하게 연동되어 있어, 자생적인 수소 자원의 탐사나 개발에 경제적 유인이 부족했다.

최근 몇 년 사이 기후 변화 대응 및 탄소중립 정책이 전 세계적으로 확대되면서, 탄소 배출이 없는 에너지원으로서 천연수소의 가치가 급격히 재조명되고 있다.
5) 잠재 매장량: 석유 17만 년분?

프랑스 국립과학연구센터(CNRS)와 여러 지질연구기관들의 공동 추정에 따르면, 지구 지각에 존재하는 천연수소의 총 생성량은 연간 약 2300만 톤 이상이며, 이는 10억 년 이상 축적되어 왔다. 이러한 수치를 기반으로 보수적으로 계산해도 수백 조 Nm³에 달하는 수소가 지각 내부에 존재할 수 있으며, 이는 에너지 환산 시 현재 전 세계 석유 소비량의 약 17만 년분에 해당한다는 놀라운 추정이 나온다.

물론 모든 수소가 기술적으로 추출 가능한 것은 아니며, 경제성과 지질 구조, 환경 요인 등 다양한 제한이 존재한다. 하지만 지금까지 알려진 것보다 훨씬 많은 수소가 지하에 존재할 수 있다는 것은 사실이며, 미탐사 천연자원으로서의 수소 자산이 실재한다는 강력한 증거가 늘어나고 있다.

6) 에너지 전환에서의 천연수소의 역할
천연수소는 그 자체로 연소 시 이산화탄소를 전혀 배출하지 않는 청정에너지원이다. 또한 정제, 저장, 수송의 측면에서도 기존 수소 인프라와 연계할 수 있는 기술적 가능성이 높다. 천연가스처럼 지하에서 뽑아내기만 하면 쓸 수 있다는 점은 재생에너지 기반 전기분해 방식보다 비용과 탄소발자국 면에서 훨씬 유리하다.

특히 다음과 같은 에너지 전환 과정에서 큰 역할을 할 수 있다.
기존 화석연료 기반 산업의 저탄소화: 철강, 시멘트, 화학 등 고열이 필요한 산업에서 천연수소는 고온 열원으로서의 가치를 가진다.

수소 연료전지차 및 항공, 선박 연료: 수소의 고에너지 밀도는 전기차가 커버하지 못하는 중장거리 운송 수단에서 필수적인 대안이 된다.
에너지 저장 매개체: 태양광과 풍력처럼 간헐적인 재생에너지를 저장하고 분산 공급하는 데 있어 수소는 결정적인 역할을 한다.

마무리: 천연수소는 진정한 게임체인저인가?
천연수소는 수소 경제의 판도를 바꿀 수 있는 잠재력을 가진 자원이다. 특히, 전 세계 모든 대륙에서 발생 가능성이 있으며, 지질학적으로 재충전되는 성질을 가짐으로써 재생 가능한 자원처럼 작동할 가능성도 제기된다. 물론 현재로선 매장량과 상업적 생산 가능성을 입증하기 위한 탐사와 시추가 초기 단계에 있으며, 규제, 안전성, 저장 기술 등의 문제도 해결되어야 한다.

하지만 천연수소의 존재 자체가 인류에게 한 가지 중요한 시사점을 던진다. 우리는 지금껏 탄소 기반 에너지에만 의존해왔고, 그 대안으로는 인공적인 재생 기술만 떠올려왔다. 그러나 지구 내부는 여전히 우리가 잘 모르는 거대한 에너지 창고이며, 천연수소는 그 중 하나일 뿐이다. 에너지 전환의 미래는, 생각보다 지구 안쪽에서 가까운 곳에 있을지도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