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래는 “유전병을 모른 채 정자를 기증한 남성과 암에 걸린 10명의 아이들”이라는 주제를 다룬 과학적 분석 글입니다. 이 글은
서술형으로 구성되었으며, 유전질환의 유전 방식, 정자은행 시스템의 문제점, 암과 유전자의 관계, 예방 가능성과 법적·윤리적 쟁점을 포괄적으로 설명합니다.

1) 유전병 모르고 정자 기증한 남성, 그리고 암 진단받은 아이들: 과학과 윤리의 경계
현대 생식의학에서 정자 기증은 불임 부부나 독립적인 임신을 원하는 여성에게 중요한 대안으로 자리 잡았다. 그러나 최근 유전질환을 지닌 남성이 정자 기증을 통해 67명의 아이를 출산하게 했고, 이 중 10명이 암 진단을 받았다는 보도가 나오면서 생명윤리, 유전학, 공공의료 시스템의 허점이 심각하게 드러나고 있다. 이 사건은 개인의 유전 정보가 제대로 확인되지 않은 채 생식의학에 활용될 경우, 단순한 개인의 문제가 아니라 공중보건 문제로 확산될 수 있음을 강력하게 시사한다.

2) 유전병의 전달: 단순한 통계의 문제가 아니다
유전병은 일반적으로 DNA의 돌연변이로 인해 발생한다. 이러한 돌연변이는 성염색체, 상염색체 또는 미토콘드리아 DNA에 위치할 수 있으며, 상염색체 우성·열성, 성연관 유전, 다인자 유전 등 다양한 방식으로 후손에게 전달된다. 많은 유전병은 환자 본인이 증상을 인식하기 전에도 타인에게 유전될 수 있다. 특히, 이 사건에서 문제가 된 질병은 리-프라우메니 증후군(Li-Fraumeni syndrome) 으로 알려진 상염색체 우성 유전 질환이다. 이 질병은 TP53 유전자에 발생한 변이로 인해 발생하며, 변이 보유자는 어린 시절부터 평생 동안 다양한 종류의 암에 걸릴 위험이 극도로 높다.

TP53 유전자는 흔히 "유전자 수호자(guardian of the genome)"로 불리며, 세포 분열과 DNA 복구, 세포사멸을 조절하는 데 핵심적인 역할을 한다. 이 유전자가 손상되면 세포가 비정상적으로 분열하거나 DNA 돌연변이가 축적되어 암으로 이어질 가능성이 커진다. 이 유전자의 변이를 보유한 사람은 30세까지 암에 걸릴 확률이 50% 이상이며, 평생 동안의 누적 발병률은 90%에 달한다. 일반 인구에서는 5,000~20,000명 중 1명 정도의 빈도로 발생하지만, 정자 기증과 같은 인위적인 생식 개입이 개입되면 이 비율은 급격히 왜곡될 수 있다.

3) 정자은행 시스템의 구조적 한계
많은 국가는 정자 기증자의 건강검진, 가족력 조사, 감염병 검사 등을 의무화하고 있다. 그러나 현실적으로 유전자 검사까지 의무화된 국가는 거의 없다. 이유는 다양하다. 첫째, 유전자 검사는 비용이 많이 들고 해석이 복잡하며, 검사 결과가 '위험 가능성'을 시사할 뿐 예측 정확도가 낮은 경우도 있다. 둘째, 기증자의 프라이버시와 개인정보 보호 문제가 얽혀 있어 광범위한 유전자 분석을 법적으로 강제하기 어렵다. 셋째, 일부 유전자 변이는 불완전 침투성과 다양한 표현형을 가지기 때문에 질병 유무를 단정하기 어렵다.

하지만 이 사건에서처럼 정자 기증자가 리-프라우메니 증후군처럼 고위험 유전자를 보유하고 있을 경우, 그 결과는 매우 치명적이다. 기증된 정자는 인공수정, 체외수정(IVF), 동결보관 등 다양한 방식으로 오랜 시간 동안 여러 여성에게 사용될 수 있다. 이로 인해 특정 유전질환 보유자가 10명, 50명, 심지어 수백 명의 유전적 후손을 남길 수 있다. 실제로 네덜란드에서는 한 남성이 500명 이상의 자녀를 낳았다는 사례도 있다. 이 같은 현상은 특정 유전질환의 집단 내 유병률을 기형적으로 증가시킬 수 있으며, 이는 '유전자 병목현상(genetic bottleneck)'과 유사한 문제를 야기한다.

4) 암은 어떻게 유전되는가?
대부분의 암은 후천적 환경 요인—흡연, 방사선, 감염 등—에 의해 발생한다. 그러나 전체 암의 약 5~10%는 명확한 유전적 요인과 연관되어 있으며, 그중 상당수는 종양억제 유전자의 변이와 관련이 있다. BRCA1/2(유방암), MLH1/MSH2(대장암), TP53(다양한 암) 등이 대표적이다. 리-프라우메니 증후군은 TP53 유전자의 변이로 인해 발생하며, 유년기 육종, 유방암, 부신암, 뇌종양, 백혈병 등 다양한 종류의 암을 동시다발적으로 유발할 수 있다.

TP53 변이를 가진 사람은 일반적인 예방 검진으로는 조기 진단이 어렵고, 일상적인 방사선 검사조차 발암 위험을 높일 수 있어 매우 섬세한 관리가 필요하다. 이 때문에 일부 국가에서는 TP53 돌연변이 보유자가 어린 시절부터 정기적인 MRI 및 PET 검사, 유방 절제술, 조기 난소절제술 등을 권고한다. 그러나 이러한 정보는 철저한 유전자 검사 없이는 알 수 없다.

5) 예방 가능한 비극
이 사건이 더욱 안타까운 이유는 TP53 변이는 일반적인 유전체 스크리닝으로도 충분히 탐지할 수 있는 유전변이라는 점이다. 현재 미국 FDA나 유럽 EMA 등은 정식 승인을 받은 상업용 유전자 검사 패널을 보유하고 있으며, 리-프라우메니 증후군을 포함한 약 60여 개의 고위험 유전 질환에 대해 분석이 가능하다. 문제는 이러한 검사가 정자은행에서 표준화되어 있지 않다는 것이다.

실제로 기증자 본인은 자신이 질병 보인자(carrier)임을 모르고 있었으며, 정자은행 측도 유전자 분석 없이 건강 상태와 문진 결과만으로 기증을 승인했다. 이로 인해 기증된 정자를 통해 67명의 아이가 태어났고, 이 중 10명이 이미 어린 시절 암을 진단받은 것으로 드러났다. 이는 단순한 우연이나 예외가 아니라, 공공 시스템의 부재로 인한 '예고된 비극'이다.

6) 법적·윤리적 책임: 어디까지 누구의 잘못인가?
현재 많은 국가는 정자 기증자와 수혜자의 익명성을 보장한다. 이는 기증자의 프라이버시 보호와 기증 활성화를 위한 장치이지만, 유전 질환의 전파 가능성을 차단하지 못하는 구조적 약점이 있다. 만약 이 기증자가 자신의 유전자 정보 또는 가족력을 사전에 알았거나, 정자은행이 유전자 검사를 의무화했더라면 이와 같은 대규모 피해는 막을 수 있었을 것이다.

윤리적 관점에서도 정자 기증은 단순한 나눔을 넘어 생명을 매개하는 행위이므로, 기증자의 유전자 정보에 대한 최소한의 검증과 책임이 요구된다. 더불어, 자녀가 성인이 되었을 때 자신의 유전적 출처를 확인할 수 있는 ‘기증자 추적권’(right to know donor identity)의 필요성도 대두되고 있다.

7) 결론: 기술보다 시스템, 시스템보다 윤리
정자 기증은 현대 과학기술의 산물이지만, 그 이면에는 여전히 해결되지 않은 윤리적 공백과 제도적 허점이 존재한다. 유전병을 가진 남성의 정자 기증이 수십 명의 암 발생으로 이어졌다는 사실은, 생식과 유전, 공공의료가 단절된 채 운용될 경우 어떤 재앙이 발생할 수 있는지를 경고하는 실례다.

과학은 이미 질병을 조기에 감지하고 유전적 위험을 예측할 수 있는 수준에 도달했지만, 이 기술이 사회적 시스템과 윤리적 감수성을 갖추지 못한 채 운영된다면, 오히려 새로운 위험을 확산시키는 도구가 될 수 있다. 이제는 ‘가능한 것’을 넘어서 ‘허용 가능한 것’에 대한 진지한 논의가 필요하다. 그리고 그 논의의 중심에는 인간 생명과 존엄에 대한 과학적 이해와 도덕적 책임이 함께 놓여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