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자본 갭투자 90억대 전세사기범 형량 높인 2심…이유는
임대보증금 돌려막기 수법…보증금 34억 편취
가짜 임차인·허위 전세계약서 통해 57억 대출
1심, 반성 고려해 징역 12년…2심은 징역 15년
2심 "전세사기 사회적 폐해 극심…죄질 나쁘다"

전세 사기를 통해 90억 원대 부당이득을 챙긴 '무자본 갭투자' 전세사기범에게 항소심 재판부가 1심보다 더 무거운 형량을 선고했다. 서울고등법원은 피고인의 반성과 일부 피해 회복에도 불구하고 "범행의 죄질이 매우 나쁘고 사회적 폐해가 극심하다"며 징역 15년형을 선고했다. 이는 1심의 징역 12년에서 3년이 늘어난 형량으로, 전세사기 범죄에 대한 사법부의 엄중한 인식을 드러낸 판결이다.
1) "무자본 갭투자"의 민낯

이 사건의 핵심은 이른바 '무자본 갭투자'다. 갭투자는 집값과 전세금의 차이를 활용해 적은 자본으로 부동산을 매입하는 방식이다. 그러나 피고인은 자신의 자금이 거의 없는 상태에서 이 구조를 악용했다. 전세금을 받아 집을 사는 ‘돌려막기’ 방식으로 부동산을 다수 취득하고, 기존 임차인의 보증금을 돌려막아 새로운 임차인에게 전세를 놓는 방식으로 수십억 원을 편취했다.
피고인은 이런 수법으로 총 34억 원의 임대보증금을 편취했다. 피해자는 대부분 사회초년생, 신혼부부, 지방 거주 청년 등이었으며, 이들은 갑작스럽게 보증금을 돌려받지 못하게 되어 생계 위기를 겪는 상황에 처했다.

2) 허위계약서와 가짜 임차인까지 동원

사건은 단순한 갭투자 수준에 머물지 않았다. 피고인은 가짜 임차인을 내세워 허위 전세계약서를 작성하고, 이를 근거로 금융기관으로부터 거액의 대출을 받는 등 고의적이고 조직적인 사기 행각을 벌였다. 허위 전세계약서를 통해 받은 대출액은 무려 57억 원에 달했다. 이 과정에서 가족과 지인까지 동원해 명의를 빌리고, 실거래가보다 부풀린 임대차 계약서를 제출해 부동산 가격을 허위로 조작했다.
결과적으로 피해자는 100여 명에 이르렀으며, 부동산 가격이 급락하면서 담보가치도 크게 하락해 피해 회복이 더욱 어렵게 됐다. 일부 피해자는 수천만 원에서 1억 원 이상에 이르는 보증금을 잃고 극단적 선택을 고민하기도 했다.

3) 1심 “피해 회복 일부”…징역 12년
1심 재판부는 피고인이 일부 피해를 변제했고, 범행을 인정하며 반성하는 점을 고려해 징역 12년을 선고했다. 피고인의 연령과 가족 상황, 재범 방지 가능성 등도 형량 결정에 영향을 미친 것으로 알려졌다.
그러나 피해자 측은 1심 판결에 강하게 반발했다. 수년간 보증금을 돌려받지 못하고 이사도 가지 못한 채 전전긍긍했던 피해자들은 “피해액 규모와 사회적 파장을 고려할 때 지나치게 관대한 판결”이라고 지적했다.

2심 “사회의 신뢰 훼손…형량 낮출 수 없어”
2심 재판부는 1심 판결을 뒤집고 형량을 3년 높인 징역 15년을 선고했다. 재판부는 판결문에서 “피고인의 범행은 단순한 민사상의 채무불이행이 아닌, 계획적이고 반복적인 사기 행위로 다수의 선량한 시민에게 심각한 재산상 피해를 초래했다”며 “임대차 시장에 대한 사회적 신뢰를 크게 훼손시켰다”고 지적했다.
특히 재판부는 “무자본 갭투자를 이용한 전세사기는 최근 사회 전반에 걸쳐 빈번하게 발생하며, 그로 인해 주거 불안을 겪는 서민층의 고통이 심각하다”며 “단순히 피해 회복 여부만으로는 죄질을 경감하기 어렵다”고 강조했다.

4) 반복되는 전세사기…왜 끊이지 않나
전세사기는 최근 몇 년 사이 급증한 사회문제로, 특히 저금리 시기와 부동산 가격 급등기의 틈을 타 무자본 갭투자가 성행하면서 피해 규모도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났다. 정부는 임대사업자 등록제와 전세금 반환보증 제도를 강화하는 등의 대책을 내놓고 있지만, 여전히 제도의 허점을 노린 사기 행각은 이어지고 있다.
특히 지방이나 수도권 외곽의 신축 빌라들이 주로 범행의 대상이 되고 있다. 이들 지역은 공시가격 대비 실거래가의 차이가 크고, 전세금으로 매매가를 모두 충당할 수 있는 구조이기 때문에 사기범들이 선호하는 ‘전세사기 취약지대’로 꼽힌다.

5) 사법부의 태도 변화…중형 선고로 이어지나
이번 항소심 판결은 사법부가 전세사기에 대해 보다 엄정하게 대처하겠다는 신호로 해석된다. 과거에는 사기범이 일부 피해를 변제하거나 반성문을 제출하면 비교적 가벼운 형량이 선고되었지만, 최근 들어 피해 규모와 사회적 파장을 중요하게 고려하는 추세다.
특히 전세사기 범죄는 단순히 금전 피해를 넘어 사회적 신뢰를 무너뜨리고, 선량한 시민의 주거 안정을 심각하게 위협하는 행위로 간주되고 있다. 이에 따라 앞으로도 전세사기에 대한 중형 선고가 이어질 가능성이 높아지고 있다.

6) 전문가 “예방 위한 구조적 제도 마련 시급”
부동산·법률 전문가들은 이번 판결을 계기로 사기 예방을 위한 제도적 보완이 시급하다고 강조한다. 한 부동산 전문 변호사는 “사후 처벌도 중요하지만, 무엇보다도 사기를 사전에 막을 수 있는 투명한 거래 시스템과 공공 데이터 연계가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이어 “허위 계약서나 가짜 임차인을 통한 대출 사기를 막기 위해서는 금융기관과 부동산 정보시스템 간의 연동이 필요하다”며 “전입신고, 확정일자 등 임대차 계약 정보를 실시간으로 검증할 수 있는 인프라가 구축돼야 한다”고 제언했다.

7) 결론
이 사건은 단순한 한 개인의 범행을 넘어 우리 사회가 직면한 주거 안전망의 허점을 드러낸다. 2심 재판부의 판단처럼, 전세사기의 죄질은 결코 가볍지 않다. 앞으로도 이러한 범죄에 대해 사법부가 어떤 입장을 취해 나갈지, 그리고 정부와 사회가 어떻게 재발 방지를 위한 장치를 마련할지가 중요한 과제로 남아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