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울증 치료해도 행복하지 않다…이유는 유전 변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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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울증 치료해도 행복하지 않다…이유는 유전 변이

by honeypig66 2025. 5. 17.

정신 질환과 주관적 행복의 유전적 연결 고리: 대규모 유전체 분석을 중심으로

1. 서론: 정신 건강과 행복의 과학적 상관성


정신 건강은 단순히 질환 유무를 넘어 삶의 질, 특히 ‘주관적 행복’과 밀접하게 연결되어 있다. 최근 발표된 대규모 유전체 연구에서는 유럽인 65만 명과 한국인 11만 명의 유전 정보를 분석해, 14가지 주요 정신 장애와 주관적 행복 간의 유전적 상관성을 밝혀냈다. 이 연구는 우울증, 조현병, 주의력결핍 과잉행동장애(ADHD), 알츠하이머병 등 다양한 정신질환이 개인의 주관적 행복감에 어떤 유전적 영향을 미치는지를 탐구하는 데 초점을 맞췄다. 특히 이 중 우울증, 양극성 장애 1형, 조현병, 거식증, ADHD, 대마초 사용 장애, 자폐 스펙트럼 장애 등 7개 질환이 주관적 행복도와 유전변이를 공유한다는 점이 밝혀졌다. 이는 정신 질환의 생물학적 기반이 단순한 신경 전달 이상을 넘어, 인간의 행복감 자체와도 근본적인 연관이 있음을 시사한다.


2. 유전적 상관관계의 개요: 공통된 유전변이란 무엇인가

유전체 연구에서 특정 형질과 유전변이의 관계를 분석하는 방법은 'GWAS(Genome-Wide Association Study, 전장 유전체 연관 분석)'를 기반으로 한다. 이 방법은 수십만 명의 유전자 정보를 비교하여, 특정 형질(예: 우울증 유병 여부, 행복감의 자가 평가 등)에 통계적으로 유의미하게 연관된 단일염기다형성(SNP, single nucleotide polymorphism)을 찾아낸다. 이번 연구는 각 정신질환 환자의 유전체와 행복도가 높은 집단의 유전체를 비교함으로써, 특정 유전변이가 두 가지 형질 모두와 동시에 관련되어 있다는 점을 발견하였다. 이를 ‘공통된 유전 기반’ 혹은 ‘유전적 연관성’이라 부른다.

유전자검사 결과는 2015년 미국 의학 유전학 및 유전체학회/분자병리학학회(American College of Medical Genetics and Genomics and the Association for Molecular Pathology, ACMG/AMP) 가이드라인에 따라 병인성변이, 준 병인성변이, 미분류변이, 준 양성변이, 양성변이로 분류하고 있다.

즉, 우울증과 주관적 행복 모두에 영향을 미치는 유전변이는, 뇌의 보상회로, 감정 조절, 사회적 인식에 관련된 특정 유전자에서 발견되었고, 이는 단순한 병리적 상태가 아니라 행복이라는 긍정적 감정 상태와도 생물학적으로 연결되어 있음을 보여준다.

3. 주요 정신질환과 주관적 행복의 유전적 공유

가장 밀접한 유전적 연관성이 밝혀진 7가지 정신질환은 다음과 같다:


우울증(Major Depressive Disorder): 우울증은 낮은 도파민 및 세로토닌 수치와 관련된 신경전달물질 이상이 특징이다. 이와 관련된 유전자는 뇌의 쾌락 중추와 감정 조절 시스템에 영향을 미치며, 이는 주관적 행복과 매우 높은 음의 상관관계를 보였다. 즉, 우울증 관련 유전변이를 많이 가진 사람은 유전적으로도 행복을 느끼기 어려운 상태일 수 있다.


양극성 장애 1형(Bipolar Disorder Type I): 조증과 우울증의 극단을 오가는 이 장애는 감정 기복의 조절이 어려운 상태를 의미한다. 유전적으로 도파민 수용체, 시냅스 가소성, 전두엽 기능 조절 유전자가 관련되어 있으며, 이는 주관적 행복도의 안정성과 연결된다.


조현병(Schizophrenia): 현실 인식 능력의 손상, 환각, 망상 등의 증상을 특징으로 한다. 조현병 관련 유전자는 시냅스 형성, NMDA 수용체 기능, 미세신경 회로 구성과 관련되어 있으며, 이는 사회적 보상, 감정 해석 능력에 영향을 미친다. 주관적 행복감 역시 인간관계와 환경 해석 능력에 따라 달라지므로 조현병과 유전적 연결고리를 공유한다.


거식증(Anorexia Nervosa): 식욕 억제와 자기 이미지 왜곡이 주요 증상으로, 보통 자존감과 정서 상태가 깊이 관련된다. 거식증 유전자는 대사 조절과 자율신경계 조절뿐 아니라 스트레스 반응 및 정서 불안과도 관련된다. 이는 신체 인식과 행복감 간의 유전적 연결을 설명한다.


ADHD(주의력결핍 과잉행동장애): 도파민 대사와 관련된 유전자가 다수 관여하며, 이는 집중력 부족, 충동성, 과잉행동 등을 유발한다. 도파민 시스템은 보상 예측과 동기부여, 그리고 즉각적인 쾌락 경험과 관련되어 주관적 행복감에 영향을 준다.


대마초 사용 장애(Cannabis Use Disorder): 중독은 쾌락 시스템과 매우 밀접한 관계가 있으며, 대마초 의존은 뇌의 보상 회로 기능에 영향을 미친다. 이와 관련된 유전변이 역시 행복감과의 상관성을 보인다.


자폐 스펙트럼 장애(Autism Spectrum Disorder): 사회적 신호 해석, 정서 공감, 상호작용 능력과 관련된 유전자가 포함된다. 이들 유전자는 인간관계에서 유래하는 긍정적 정서와의 연결이 약화되어, 결과적으로 주관적 행복도에 영향을 미친다.


4. 왜 약물 치료로도 주관적 행복은 회복되지 않는가

흥미로운 점은 이들 정신질환 환자들이 약물치료를 통해 증상을 어느 정도 개선하더라도, ‘행복하다’는 주관적 인식은 쉽게 회복되지 않는다는 것이다. 이는 단순히 증상이 줄어든다고 해서 뇌가 행복감을 자동으로 복원하지 않기 때문이다. 주관적 행복은 보상회로뿐 아니라 자기 이미지, 사회적 유대감, 스트레스 인식 등 복합적 요소가 작용하는데, 이들 역시 유전적 영향을 받는다. 즉, 치료는 표면적 증상을 조절할 수 있으나, 행복감 자체에 영향을 미치는 유전 기반은 비교적 고정되어 있어 변화시키기 어렵다.

뿐만 아니라, 약물은 대부분 신경전달물질의 분비량 혹은 수용체 활성도를 조절하는 데 집중되어 있지만, 유전적으로 뇌 회로 자체가 다르게 구성된 환자에게는 같은 약물이라도 효과가 제한적일 수 있다. 결국 유전적으로 주관적 행복을 낮게 느끼는 체질이라면, 현재의 치료 방식만으로는 만족스러운 회복이 어려울 수 있다는 것이 이번 연구의 중요한 시사점이다.

연구에 따르면 이번에 규명된 유전변이는 정신장애와 인지기능에 관여하는 FOXP1, UNC5C 근처에 위치했으며, 대뇌 등 중추신경계 조직에서 더 많았다.

5. 한국인 데이터의 중요성: 인종 간 유전적 차이

이번 연구는 유럽인 65만 명과 더불어 한국인 11만 명의 유전체를 분석함으로써, 인종 간 유전적 구조 차이에 따른 정신질환-행복 연관성을 비교할 수 있었다. 실제로 일부 유전변이는 한국인에게 더 흔하거나 유럽인에게는 거의 발견되지 않기도 했다. 예를 들어, 특정 도파민 수용체 유전자(DRD2, DRD4)의 발현 양상은 동아시아인에서 유의미하게 다르게 나타났고, 이는 충동성 및 정서 안정성과 연결되어 한국인 집단에서 ADHD와 행복도의 연관성이 더 뚜렷하게 나타나게 만들었다.


이러한 차이는 앞으로 정신질환에 대한 진단 및 치료 방식을 개인의 유전적 배경에 맞춰 조정하는 ‘정밀의학(precision medicine)’의 필요성을 강조하는 근거가 된다.


6. 결론: 유전적 운명인가, 극복 가능한가

이번 대규모 유전체 연구는 정신질환과 주관적 행복 사이에 존재하는 유전적 연결을 과학적으로 보여주었다. 특히 우울증, 조현병, ADHD 등을 가진 이들은 단순히 질환의 증상뿐 아니라 행복감을 느끼는 능력 자체가 유전적으로 제약될 수 있다는 점이 확인되었다. 이는 정신 건강의 회복을 단순히 ‘증상 완화’로만 정의해서는 안 된다는 점을 시사한다.

그러나 유전이 절대적인 운명은 아니다. 뇌의 가소성, 환경적 자극, 사회적 지지, 인지행동 치료(CBT)와 같은 비약물적 접근은 유전적 취약성을 보완하는 중요한 방법이 될 수 있다. 향후 연구는 유전자와 환경의 상호작용을 더 정교하게 분석하고, 개인 맞춤형 정신 건강 관리 방식을 개발하는 방향으로 나아가야 한다. 유전은 행복의 경향을 설명할 수는 있지만, 궁극적인 행복을 결정짓는 단 하나의 요인은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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