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말 탐구] 신부로 18년, ‘하나님’이 평안도 사투리라는 사실을 마주하다
서론: 당연했던 이름에 던지는 질문
사제로 살아온 18년이라는 시간 동안, 제 입술에 가장 많이 머문 단어는 단연 ‘하느님’이었습니다. 미사 중에, 고해소에서, 그리고 홀로 바치는 기도 속에서 그 이름은 공기처럼 당연한 것이었습니다. 하지만 최근 국문학적 문헌들을 살피다 마주한 한 줄의 기록은 저에게 신선한 충격을 주었습니다. 우리가 가톨릭과 개신교를 나누는 신학적 잣대로 여겨온 ‘하느님’과 ‘하나님’의 차이가, 사실은 140여 년 전 어느 번역 현장의 ‘사투리’에서 비롯되었다는 사실입니다.

본론: 아래아(ㆍ) 한 점이 갈라놓은 호칭의 역사
1. 신학적 결단인가, 언어적 현상인가? 흔히 개신교에서 사용하는 ‘하나님’은 ‘오직 하나(One)이신 분’이라는 유일신 사상을 강조하기 위해 만들어진 용어로 알려져 있습니다. 그러나 역사적 실체는 조금 다릅니다. 1887년 존 로스 목사가 만주에서 최초의 한글 신약전서인 ‘예수성교전서’를 펴낼 때, 번역을 도운 이들은 모두 평안도 사람들이었습니다.

2. 평안도 방언과 ‘하나님’의 탄생 당시 국어에서 ‘하늘’은 ‘하ᄂᆞᆯ’로 표기되었습니다. 표준어라면 ‘하ᄂᆞ님’이 ‘하느님’으로 이행되어야 했지만, 평안도 방언의 특징상 아래아(ㆍ) 발음이 ‘아’ 소리에 가깝게 생략되면서 자연스럽게 ‘하나님’이라는 표기가 탄생하게 된 것입니다. 즉, 오늘날의 거대한 교리적 차이는 사실 평안도라는 특정 지역의 음운 체계가 남긴 유산일지도 모릅니다.

3. 부를 수 없는 이름, YHWH 근본적으로 돌아가 보면, 성경의 신은 스스로를 ‘YHWH(야훼)’라 계시하셨습니다. 유대인들은 감히 그 이름을 소리 내어 부르지 못해 ‘아도나이(주님)’로 대체하여 읽었으며, 그 과정에서 원래의 정확한 발음조차 잊히고 말았습니다. 인간이 만든 ‘하느님’ 혹은 ‘하나님’이라는 번역어가 본래의 신성한 이름을 온전히 담아내기에는 역부족일 수밖에 없는 이유입니다.

결론: 이름의 너머를 바라보며
국문학적 논쟁의 관점에서 본다면 ‘하나님’은 문법적 변칙이자 방언의 산물일 수 있습니다. 하지만 18년 차 사제로서 저는 다시 생각해보게 됩니다. 신이 평안도 사투리를 통해 우리에게 처음 다가왔든, 서울의 표준어를 통해 이름을 알렸든, 중요한 것은 그 소리의 ‘형태’가 아닐 것입니다.
우리가 호칭의 옳고 그름을 두고 다투는 동안, 정작 그 이름이 향하는 대상인 ‘사랑’을 놓치고 있는 것은 아닐까요? 이름은 그저 가리키는 손가락일 뿐입니다. 이제는 ‘하느님’과 ‘하나님’이라는 글자 너머, 우리 모두를 품어 안으시는 그분의 침묵에 귀를 기울여야 할 때입니다.

'시선과 관점 (Insight) 세상 읽기 : 담론과 생각' 카테고리의 다른 글
| 휴가 다녀오니 ‘43일’이나 행복해진다고? 과학이 밝힌 진짜 이유 (6) | 2026.02.19 |
|---|---|
| 하느님? 하나님? 18년 차 사제였던 제가 들려주는 '이름' 이야기1) (0) | 2026.02.19 |
| 내가 힘들 때 반드시 배신할 사람들의 공통 행동 (6) | 2026.02.18 |
| 🚨 허위 테러 예고, 한 줄 장난이 수억 원으로 돌아온다 (8) | 2026.02.18 |
| 운을 잃게 만드는 사람들의 4가지 습관 — 이렇게 하면 기회가 떠나갑니다 (2) | 2026.02.17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