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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선과 관점 (Insight) 세상 읽기 : 담론과 생각

[시리즈 2부] 어찌어찌 사제가 되었고, 나는 너무 성실했다… 마주하지 못한 마음은 어디로 가는가(「피하면 병이 되고 마주하면 빛이 된다」 시리즈)

by honeypig66 2026. 10. 26.

1부에서 저는 십자가가 걸려 있던 집과 신학교까지의 이야기를 했습니다.

 

사람은 변할 수 있다는 신념을 품고 사제가 되었다는 데서 끝냈습니다.

2부는 그 신념에 어떻게 금이 가기 시작했는지에 관한 기록입니다.

당시 제가 느낀 대로 적었고, 사람과 장소는 밝히지 않았습니다.

사람들을 사랑하고 하나로 모으려 했던 시절, 저는 제 마음 안에서 무슨 일이 일어나는지 아직 제대로 알지 못했습니다 출처: 본인 촬영

1. 왕초보에게 맡겨진 갈라진 본당

사제가 된 초반에는 누구보다 성실하게 살았습니다.

그런데 보좌 2년 차이던 저는 사정이 복잡한 큰 본당의 주임서리로 발령을 받았습니다.

전임 주임신부님은 그 자리를 떠나셨고, 바로 앞의 보좌신부는 제 동기였습니다.

신자들은 신부님을 지지하는 쪽과 반대하는 쪽으로 갈려 서로 싸우고 있었습니다.

 

저는 왕초보였고 견뎌야 했습니다. 도움이 된 것은 일반대학 시절 총학생회장으로 일한 경험이었습니다.

저는 "모두 사랑하자"며 양쪽을 끌어안기 시작했습니다.

 

그러자 전임 신부님을 따르던 몇 분이 찾아와 항의하셨습니다.

"왜 저 사람들을 단죄하지 않으십니까?"

저는 단죄하지 않았습니다.

그렇게 지내며 견진성사를 400명 넘게 준비해낸 뒤, 8개월 만에 다른 본당으로 발령을 받았습니다.

2. 너무 고요해서 시끄러웠던 4개월

이번에는 4개월짜리 주임서리였습니다.

그곳은 고요했습니다.

너무나요. 그 고요 속에서 비로소 제 안의 소리가 들리기 시작했습니다.

 

흔들리는 제 마음을 직면했어야 했는데, 그때는 몰랐습니다.

이미 정서적으로도 신앙적으로도 많이 금이 가 있다는 것을요.

얼마 뒤 저는 또 다른 본당의 주임으로 발령을 받았습니다.

다른 동기들은 아직 보좌로 있을 때였습니다.

바깥이 조용해졌을 때 비로소 들리는 마음의 소리가 있었습니다. 그때의 저는 그 소리를 어떻게 들어야 할지 몰랐습니다. 출처: Pexels — Satyam Pathak, A Person Sitting by a Window(https://www.pexels.com/photo/a-person-sitting-by-a-window-18540099/?utm_source=chatgpt.com)

3. 영신수련, 그리고 너무 능동적인 기도

그 무렵 저는 성 이냐시오의 영신수련을 하고 있었습니다. 신

학교 2학년 때 총장 신부님께 쫓겨날 뻔했던 위기에서 우연히 접한 것이 영신수련이었고,

그 뒤로 계속해 왔습니다.

 

문제는 제가 그 기도를 너무 능동적으로 한다는 데 있었습니다.

예를 들어 지금의 문제를 기억 속으로 가져가 예수님을 상상 속에 모셔 놓고,

옛 기억을 뒤져 위안을 얻는 식이었습니다.

이 기도의 문제는 은총을 제가 인위적으로 얻을 수 있다는 신념에 있었습니다.

그러니 새 본당에서도 영적, 정서적 긴장이 팽팽하게 흐르고 있었습니다.

4. 미친 듯이 살았다: 운동, 술, 기도

저는 그 긴장을 풀려고 미친 듯이 살았습니다.

운동에 미쳤고, 술에 미쳤고, 기도에도 미쳤습니다.

휴가다운 휴가는 한 번도 가지 못한 채 피정을 쫓아다녔습니다.

이윽고 신학교로 발령을 받아 학생들과 함께 미친 듯이 운동하며 지냈지만,

끊어질 듯한 긴장은 계속되었습니다.

운동과 일, 기도에 몰두했지만, 바쁘게 움직이는 것만으로 마음속 긴장까지 사라지는 것은 아니었습니다. 출처: Pexels — Andre Morgan, Man Running at Night (https://www.pexels.com/photo/man-running-at-night-5572165/?utm_source=chatgpt.com)

5. 해안도로의 밤

그날 차가 도랑에 빠진 뒤 제 마음에 가장 먼저 떠오른 것은 뜻밖에도 ‘왜 살아났지?’라는 질문이었습니다. 출처: Pexels — ArtHouse Studio, Road by the Sea During Night Time (https://www.pexels.com/photo/road-by-the-sea-during-night-time-8146237/?utm_source=chatgpt.com)

 

어느 날 교구 강의를 마치고 돌아오던 길에 큰 사고가 났습니다.

해안도로에서 앞차와 경쟁하다 튕겨 나갔고, 차가 360도 회전하며 도랑에 빠졌습니다.

경쟁하던 차는 그대로 달아났고, 저는 다행히 제 발로 걸어 나왔습니다.

그때 제 마음속 첫 생각은 이랬습니다. "아, 내가 살아났네. 왜 살아났지?"

지금 돌아보면 그것은 안도보다 우울에 가까운 질문이었습니다.

그만큼 저는 우울한 감정에 지배당하고 있었습니다.

술은 잠시 긴장을 잊게 해주었지만, 결국 몸과 판단력, 관계에도 대가를 남겼습니다. 출처: Pexels — cottonbro studio, A Glass and Whiskey on the Table(https://www.pexels.com/photo/a-glass-and-whiskey-on-the-table-9419353/?utm_source=chatgpt.com)

 

동료 사제의 차에 실려 병원 응급실로 갔습니다.

소식을 들은 동료 신부들은 제 운전을 탓했습니다.

실제로 저는 그전에도 고속도로에서 시속 230킬로미터를 넘길 정도로 몰았습니다.

자랑이 아니라 기록입니다.

 

퇴원한 뒤 저는 동기들과 20여 일 동안 술을 마시고 다녔고,

결국 술병이 나 다시 응급실로 실려 갔습니다.

이틀을 토하던 새벽, 변기를 붙들고 있다가

문득 "예수님은 늘 나와 함께 계셨구나" 하는 생각과 함께 기쁨이 차올랐습니다.

저는 "주님 감사합니다, 알렐루야"를 외쳤습니다.

제게 그 순간은 설명하기 어려운 기쁨이 찾아온 때였습니다. 신앙의 언어로는 은총이라 부를 수 있는 경험이었습니다. 출처: Pexels — cottonbro studio, Sunrays Through a Window (https://www.pexels.com/photo/sunrays-through-a-window-7520362/?utm_source=chatgpt.com)

 

그러다 질문이 떠올랐습니다. "제가 무엇을 드려야 할까요?" TV면 되겠느냐는 생각이 들었다가,

밭에 묻힌 보물과 진주의 비유(마태 13,44-46)가 떠오르면서

가장 소중한 것을 드려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술이면 되겠습니까?"

그렇게 묻고 위로를 받으며 저는 그러겠다고 답했습니다.

6. 술을 끊고 나서 시작된 어색함

퇴원 뒤 동기들과의 첫 만남은 완전히 어그러졌습니다.

저는 동기 대표였는데 그 역할을 그만두었고, 함께 가기로 한 여행도 취소시켰습니다.

 

술 한 잔 없이 돌아와 저는 당시 주교님께 편지를 썼습니다.

동기 몇 명의 행동을 영성적인 문제로 제기하며,

사제 영성교육을 강화해야 한다고 주장하는 편지였습니다.

 

지금 돌아보면 조금 과했습니다.

그 뒤로 저는 동기 모임에 나가지 않았습니다.

그 시기에 저를 이해해 준 사제는 선배 신부님 한 분이었습니다.

모임이 많았는데 그렇게 불편할 수가 없었고, 동기들을 봐도 어색했습니다.

그때부터 제 사제 생활이 꼬이기 시작했습니다.

 

그러던 중 제가 신학교 영성부장을 맡았고,

같은 시기에 동기 가운데 한 사람이 영성지도 사제로 들어왔습니다.

어색한 것을 견디지 못하는 저는,

신학교 영성지도의 방향을 두고 사제들이 갈라지는 가운데 서 있었습니다.

결국 저는 병원 정신과를 찾았고, 수면제를 처방받아 먹기 시작했습니다.

관계가 어색해지고 신뢰가 무너질수록 저는 사람들 사이에 있으면서도 점점 혼자가 되어 갔습니다. 출처: Pexels — Lucia De Gros, Silhouette of Person Sitting on a Window(https://www.pexels.com/photo/silhouette-of-person-sitting-on-a-window-6784304/?utm_source=chatgpt.com)

7. 공개된 자리에서

사제 7년 차, 영성부장 2년 차였습니다.

이듬해 안식년으로 해외 유학을 언급했다가 당시 보좌주교님께 큰 질책을 받았습니다.

전국 사제들이 모인 식사 자리였습니다.

저는 주교님께 그런 말씀을 듣는 것이 처음이었고, 그것도 공개된 자리였습니다.

그때 처음으로 밥상을 엎고 뛰쳐나가고 싶었습니다. (그렇게 받아들였다는 것이지, 그분의 뜻을 단정하려는 것은 아닙니다.)

 

얼마 뒤 저의 후원자였던 주교님이 선종하셨고, 그 자리에 보좌주교님이 정식 주교가 되셨습니다.

동기들 사이에서 제가 소외되는 정도는 더 깊어졌습니다.

결국 저는 해외 사목으로 미국에 발령을 받았습니다.

그때 저는 이미 동료들에 대한 신뢰를 모두 잃은 상태였습니다.

미국 교구로 옮기기를 원했지만 교구장은 허락하지 않았고, 저는 끝내 옷을 벗었습니다.

8. 마주하지 못한 마음은 어디로 가는가

제가 썼던 방법들을 심리학의 언어로 다시 읽어 봅니다.

그 시절의 저를 평가하려는 것이 아니라 이해하려는 시도입니다.

 

① 경험 회피와 대체 행동

수용전념치료(ACT) 같은 접근에서는 불편한 감정과 기억을 통제하거나 없애려는 시도를 '경험 회피'라고 부릅니다.

이것이 장기적으로 고통을 키울 수 있다고 설명합니다.

운동, 일, 술, 심지어 기도도 목적이 '불편한 감정 끄기'가 되면 회피의 기능을 할 수 있습니다. (아래는 제 해석입니다.)

제가 쓴 방법얻은 것놓친 것
운동 긴장 완화, 체력 감정을 말로 정리하는 시간
술 순간의 해방 수면, 판단력, 관계
능동적 기도 위안 불편한 감정이 머무는 시간
일과 피정 의미, 소속감 쉼과 회복

② 통제된 직면의 함정

 

직면은 불편한 감정이 일정 시간 머물도록 두는 일입니다.

위안으로 서둘러 건너가는 방식은 직면의 모양을 한 회피일 수 있습니다. 제 경우가 그랬는지도 모릅니다.

 

③ 우울이 슬픔이 아니라 질주와 과로로 올 때

 

우울은 눈물이 아니라 짜증, 무모한 운전, 과음, 과로로 가려져 나타나기도 한다는 것이 임상에서 보고됩니다.

겉으로는 활동적으로 보이는 사람이 가장 위험할 수 있습니다.

 

④ "왜 살아났지?"라는 질문

 

이런 생각은 의지가 약해서 드는 것이 아니라 우울이 깊다는 신호일 수 있습니다.

의학에서는 이를 수동적 자살사고로 분류하기도 하며, 말해도 되는 이야기입니다.

저와 비슷한 생각이 든다면 혼자 견디지 마세요.

 

⑤ 술을 끊는 일의 안전

 

오래 많이 마셔 온 사람이 갑자기 끊으면 떨림, 불안, 환각, 경련 같은 금단증상이 위험할 수 있습니다.

결심만으로 끊으려 하지 말고 의료진과 상의하세요.

 

⑥ 고립은 마음을 더 닫게 합니다

 

소속과 신뢰를 잃으면 스트레스와 우울이 깊어지고,

사회적 지지는 이를 완충한다고 연구에서 일관되게 보고됩니다.

 

⑦ 두 개의 언어

 

변기 앞에서 찾아온 그 기쁨을 신앙의 언어로는 은총이라 부르고,

심리학의 언어로는 극단까지 간 뒤 찾아온 정서적 전환이라고 부르기도 합니다.

저는 두 언어를 모두 존중합니다.

과거의 저를 단죄하기보다 이해하려는 일, 어쩌면 그때부터 진짜 직면이 시작되는 것인지도 모릅니다. 출처: Pexels — Walter Coppola, Interior of an Empty Church(https://www.pexels.com/photo/interior-of-an-empty-church-25323148/?utm_source=chatgpt.com)

9. 2부를 마치며

옷을 벗는다는 것은 직업 하나를 내려놓는 일이 아니었습니다.

그 뒤에 무슨 일이 있었는지는 3부에서 이어가겠습니다.

 

※ 이 글은 개인의 경험과 일반적인 건강정보이며 진단과 치료를 대신하지 않습니다.

마음이 너무 힘들다면 정신건강상담전화 1577-0199, 자살예방상담전화 109에서 24시간 도움을 받을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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