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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리 & 과학(뇌과학·심리·생명과학·동물과학)

🪟 조하리의 창으로 들여다본 나… 나는 정말 나를 알고 있을까?

by honeypig66 2026. 9. 15.

프롤로그|나는 나를 가장 잘 아는 사람일까?

 

우리는 흔히 내가 나를 가장 잘 안다고 생각하며 살아갑니다.

내가 무엇을 좋아하는지, 무엇을 싫어하는지 알고 있습니다.

어떤 말을 들으면 기분이 상하는지도 알고, 어떤 사람과 있으면 편안한지도 압니다.

무엇보다 내 마음속에서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지는 나만이 알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런데 이상합니다.

사람과 사람 사이에서는 자꾸만 어긋나는 일이 생깁니다.

나는 따뜻한 마음으로 건넨 말인데 상대방은 상처를 받습니다.

나는 괜히 말을 보태지 않고 기다려준 것뿐인데 상대방은 나를 무관심한 사람이라고 생각합니다.

나는 상황을 침착하게 바라보고 있었을 뿐인데 누군가는 나를 차갑고 냉정한 사람이라고 말합니다.

반대로 나는 누군가에게 서운한 마음을 품고 있으면서도 괜찮은 척 웃고 있을 때가 있습니다.

상대방은 내가 아무렇지도 않은 줄 알지만, 사실 내 마음속에서는 이미 여러 번 그 일을 되짚어보고 있었던 것입니다.

 

그렇다면 이런 생각이 듭니다.

나는 정말 나를 잘 알고 있는 것일까?

어쩌면 인간관계에서 가장 어려운 일은 상대방의 마음을 읽는 것이 아니라, 내가 어떤 사람인지 정확하게 알아차리는 일인지도 모르겠습니다.

18년 동안 사목 현장에서 참 많은 사람을 만났습니다.

기쁜 사람도 만났고, 삶의 가장 힘든 순간에 찾아온 사람도 만났습니다.

누군가는 자신의 이야기를 아주 솔직하게 털어놓았고, 누군가는 한참을 침묵하다가 마지막에 단 한마디만 남기고 돌아가기도 했습니다.

 

그 사람들의 이야기를 오래 듣다 보니 한 가지를 자주 발견하게 되었습니다.

사람은 자기 자신을 생각보다 잘 모른다는 것.

내가 생각하는 나와 다른 사람이 바라보는 내가 다를 수 있고, 내가 알고 있는 나보다 훨씬 많은 내가 내 안에 숨어 있을 수 있다는 사실입니다.

지금 병원 807호에서 몸의 움직임을 잠시 멈추고 내면을 바라보는 시간 속에서, 저는 이 생각을 다시 꺼내보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오늘은 아주 오래된 심리학적 도구 하나를 식탁 위에 올려놓아 보려고 합니다.

이름은 조금 낯설지만 생각보다 재미있습니다.

'조하리의 창(Johari Window)'입니다.

창문 하나를 통해 나를 바라보는 것입니다.

그런데 네 개의 창문을 하나씩 들여다보다 보면 조금 묘한 일이 생깁니다.

창문을 바라보는 것은 결국, 그 너머에 있는 세상이 아니라 내 안을 바라보는 일이기도 합니다. 출처: Pexels / August de Richelieu

처음에는 다른 사람을 이해하기 위해 펼쳐본 창인데, 마지막에는 결국 나 자신을 바라보고 있는 나를 만나게 됩니다.


🌱 오늘 마음의 유리창 너머로 들여다볼 이야기들

  • 1~3. 내가 알고 있는 나와, 나만 모르고 있던 '맹점'이라는 창
  • 4~5. 숨겨둔 마음과 아직 발견하지 못한 나
  • 6~7. 네 개의 창 가운데 가장 두려운 창은 무엇인지
  • 8~9. 서로 다른 창을 바라보는 사람들이 어떻게 다시 이해할 수 있는지
  • 에필로그. 그리고 병원 807호에서 다시 만난 나

1. 조하리의 창|내 안에는 내가 모르는 방이 있다

 

1955년 미국의 심리학자 조셉 루프트(Joseph Luft)와 해링턴 잉햄(Harrington Ingham)은 인간관계와 자기인식을 설명하기 위한 하나의 모델을 만들었습니다.

두 사람의 이름을 따서 붙인 이름이 바로 조하리의 창(Johari Window)입니다.

방법은 단순합니다.

'내가 나를 알고 있는가'와

'다른 사람이 나를 알고 있는가'라는 두 가지 기준으로 나를 네 영역으로 나누어 보는 것입니다.


타인이 알고 있음
타인이 모르고 있음
내가 알고 있음
🪟 개방 영역
🪟 은폐 영역
내가 모르고 있음
🪟 맹점 영역
🪟 미지 영역

처음 보면 별것 아닌 표처럼 보입니다.

그런데 가만히 들여다보면 꽤 불편한 사실 하나가 들어 있습니다.

'내가 나를 모르는 영역'이 있다는 것.

나는 나를 24시간 데리고 살아갑니다.

 

그런데도 내가 모르는 내가 있습니다.

더 재미있는 것은 그 모습을 다른 사람이 먼저 알고 있을 수도 있다는 사실입니다.

내가 평소 어떤 말투를 쓰는지, 화가 났을 때 어떻게 행동하는지, 상대방의 말을 어떻게 끊는지, 어떤 상황에서 유난히 방어적으로 변하는지….

나는 너무 익숙해서 알아차리지 못하는데 다른 사람에게는 그것이 아주 선명하게 보일 수 있습니다.

그것이 바로 조하리의 창에서 말하는 '맹점'입니다.


2. 개방 영역|내가 알고, 남도 아는 나

 

개방 영역은 비교적 편안한 공간입니다.

나도 알고 있고 다른 사람도 알고 있는 나입니다.

예를 들어 이런 것입니다.

"저 사람은 말수가 적지만 약속은 잘 지켜."

"표현은 무뚝뚝해도 어려운 사람을 보면 그냥 지나치지 못해."

"저 사람은 사람을 만나면 먼저 인사하는 편이야."

이런 이야기를 들었을 때

"맞아. 내가 좀 그런 편이지."

하고 고개를 끄덕일 수 있다면 그것은 나와 타인이 함께 알고 있는 모습입니다.

 

오랜 시간 사람들을 만나보면 이런 공통된 이해가 관계를 편안하게 만들어준다는 것을 느끼게 됩니다.

상대방이 어떤 사람인지 어느 정도 알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여기에서 한 가지 오해는 피해야 합니다.

개방 영역이 크다고 해서 반드시 좋은 사람인 것은 아닙니다.

또 개방 영역이 작다고 해서 문제가 있는 사람인 것도 아닙니다.

 

나는 모든 사람에게 내 속마음을 공개할 의무가 없습니다.

오히려 살아가면서 중요한 것은 무엇을 말할 것인가만큼 무엇을 말하지 않을 것인가를 아는 것일 때도 있습니다.

건강한 자기 개방은 모든 것을 보여주는 것이 아닙니다.

상대방을 믿을 수 있는 만큼, 그리고 내가 감당할 수 있는 만큼 나를 보여주는 것입니다.

마음에도 문턱이 필요합니다.

누구나 들어올 수 있는 집은 어쩌면 편안한 집이 아닐 수도 있으니까요.


3. 맹점 영역|내가 모르는 내가 가장 가까운 사람에게 보인다

 

조하리의 창을 이야기하면서 제가 가장 오래 생각하게 되는 영역은 맹점입니다.

왜냐하면 이 창은 조금 아프기 때문입니다.

누군가가 나에게 이렇게 말했다고 생각해보십시오.

"당신은 화가 나면 말을 아예 안 하잖아."

"당신은 다른 사람 이야기를 잘 들어주는 것 같지만, 사실 결론을 이미 정해놓고 듣는 것 같아."

"당신은 친절한데 이상하게 가까이 다가가기가 어려워."

 

첫 반응은 아마 비슷할 것입니다.

"내가 언제 그랬다고 그래?"

억울합니다.

서운합니다.

심지어 화가 날 수도 있습니다.

나는 그렇게 행동했다고 생각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집에 돌아와 혼자 있을 때 이상하게 그 말이 자꾸 떠오릅니다.

 

그리고 며칠 뒤 비슷한 상황이 생겼을 때 문득 생각합니다.

"어… 혹시 저 사람이 그때 말한 게 이런 뜻이었나?"

바로 그 순간이 중요합니다.

내가 모르던 나를 아주 조금 발견하는 순간이기 때문입니다.

나는 침묵했다고 생각했는데 상대는 냉담함을 느꼈을 수 있습니다.

나는 솔직했다고 생각했는데 상대는 공격받았다고 느꼈을 수 있습니다.

나는 배려했다고 생각했는데 상대는 간섭받는다고 느꼈을 수도 있습니다.

 

여기에는 누가 거짓말을 하고 있는 것이 아닙니다.

나는 내 의도를 보고 있고, 상대는 내 행동을 보고 있기 때문입니다.

이 차이가 참 큽니다.

사람은 자신의 행동을 설명할 때 대개 자신의 의도를 함께 생각합니다.

"나는 그런 뜻이 아니었어."

물론 정말 그럴 수 있습니다.

하지만 상대방에게 전달된 것은 내 마음속 의도가 아니라 결국 내가 실제로 한 말과 행동입니다.

 

18년 동안 사람들의 이야기를 들으면서 느낀 것도 바로 이것이었습니다.

사람들은 자신이 어떤 사람인지 스스로 설명할 때보다, 다른 사람이 자신을 어떻게 보고 있었는지를 알게 되었을 때 더 크게 흔들립니다.

그래서 맹점은 불편합니다.

하지만 동시에 소중합니다.

 

내가 혼자서는 볼 수 없는 나를 보여주는 거울이기 때문입니다.


4. 은폐 영역|말하지 않았다고 해서 존재하지 않는 것은 아니다

 

이번에는 반대편 창으로 가보겠습니다.

이번에는 내가 알고 있지만 다른 사람은 모르는 나입니다.

사람에게는 누구나 이런 공간이 있습니다.

겉으로는 괜찮아 보이지만 속으로는 불안합니다.

 

아무렇지도 않은 얼굴을 하고 있지만 오래전 상처가 아직 남아 있습니다.

상대방에게 웃으며 이야기하면서도 마음 한쪽에서는 서운함을 삼키고 있습니다.

누구에게도 말하지 않은 두려움도 있습니다.

차마 꺼내놓지 못한 열등감도 있습니다.

그리고 때로는 아무에게도 말하고 싶지 않은 비밀도 있습니다.

이것이 은폐 영역입니다.

 

그런데 우리는 이 영역을 너무 쉽게 나쁜 것으로 생각합니다.

"왜 저 사람은 솔직하지 못할까?"

"왜 속마음을 이야기하지 않을까?"

 

하지만 꼭 그렇지는 않습니다.

마음을 숨기는 것과 거짓말을 하는 것은 다릅니다.

사람에게는 자신을 보호할 권리가 있습니다.

모든 상처를 모든 사람에게 보여줄 필요도 없습니다.

모든 비밀을 모든 관계에서 털어놓을 필요도 없습니다.

오히려 성숙한 사람은 자신의 마음을 무조건 닫는 사람이 아니라, 누구에게 어디까지 열어도 되는지를 아는 사람인지도 모르겠습니다.

 

신뢰가 쌓이면 은폐 영역은 조금씩 작아집니다.

어느 날 문득 이런 말을 할 수 있게 됩니다.

"사실 그때 나도 많이 힘들었어."

그 한마디를 듣는 순간 관계가 달라지는 경우가 있습니다.

 

왜냐하면 우리는 그때까지 보지 못했던 상대방의 창문 하나를 처음으로 들여다보게 되기 때문입니다.

🌿 마음의 문은 활짝 여는 것보다, 믿을 수 있는 사람에게 조금씩 여는 것이 더 중요할 때가 있습니다. 출처: Pexels / Mikhail Nilov

5. 미지 영역|나도 몰랐던 내가 어느 날 나타난다

그리고 마지막 창이 있습니다.

저는 이 창이 참 흥미롭습니다.

미지 영역.

나도 모르고, 다른 사람도 모르는 나입니다.

평소에는 존재하는지조차 알 수 없습니다.

그러다가 어느 날 뜻밖의 상황이 찾아오면 갑자기 모습을 드러냅니다.

 

평생 겁이 많다고 생각했던 사람이 위기 앞에서 놀라울 만큼 침착해지기도 합니다.

평소에는 아무런 자신감이 없던 사람이 누군가를 지켜야 하는 순간에는 놀라운 용기를 내기도 합니다.

새로운 일을 시작하면서 자신에게 이런 능력이 있었다는 사실을 처음 발견하기도 합니다.

"내가 이런 사람이었나?"

살면서 한 번쯤 해본 말일 것입니다.

 

그때 우리는 새로운 사람이 된 것이 아닙니다.

원래 내 안에 있었지만 아직 발견하지 못했던 나를 만난 것입니다.

🌱  아직 만나지 못한 내가 내 안에 남아 있을지도 모릅니다. 출처: Pexels / Kindel Media

그래서 저는 병원 807호를 생각하게 됩니다.

병원에 누워 있는 시간은 평소와 다릅니다.

내가 원하는 만큼 움직일 수도 없고, 하루가 이상할 만큼 천천히 흘러갑니다.

예전 같으면 그냥 지나쳤을 생각이 오래 머뭅니다.

평소에는 들리지 않았던 마음의 소리가 들립니다.

 

그리고 그제야 알게 됩니다.

내가 나 자신을 꽤 잘 안다고 생각했는데, 사실은 그렇지 않았다는 것을.

아픔과 멈춤은 분명 힘든 일입니다.

 

하지만 때로는 삶이 멈춰 서야만 볼 수 있는 것이 있습니다.

바쁘게 살아갈 때는 보이지 않던 나.

어쩌면 807호는 저에게 그 미지의 창문 하나를 열어준 공간인지도 모르겠습니다.


6. 네 개의 창 중 가장 무서운 것은 무엇일까?

 

네 개의 창을 모두 보고 나면 이런 질문이 생깁니다.

"그렇다면 이 가운데 가장 무서운 창은 어느 것일까?"

처음에는 맹점이라고 생각했습니다.

나는 모르는데 다른 사람들은 알고 있다는 것이니까요.

내가 모르는 습관을 다른 사람이 알고 있고, 내가 모르는 단점을 다른 사람이 보고 있을 수도 있습니다.

 

그런데 807호에서 가만히 생각해보니 조금 달라졌습니다.

어쩌면 더 두려운 것은 미지 영역일지도 모르겠습니다.

맹점은 그래도 다른 사람이 알려줄 수 있습니다.

하지만 미지 영역은 아무도 모릅니다.

나도 모릅니다.

앞으로 어떤 일이 일어났을 때 내가 어떤 사람이 될지 나 자신도 알 수 없습니다.

 

그러나 여기에서 생각을 조금 뒤집어볼 필요가 있습니다.

미지 영역은 두려움만을 뜻하지 않습니다.

아직 발견하지 못한 가능성이기도 합니다.

내 안에 아직 만나지 못한 내가 남아 있다는 뜻이기 때문입니다.

 

그렇게 생각하고 나니 미지의 창이 조금 다르게 보입니다.

두려운 창이면서 동시에 기대할 수 있는 창.

어쩌면 인생에서 가장 아름다운 창인지도 모르겠습니다.

때로는 삶이 잠시 멈춰 서야만, 평소에는 보이지 않던 나를 만날 수 있습니다. 출처: Pexels / Karolina Grabowsk

7. 조하리의 창은 나를 바꾸기보다 이해하게 만든다

 

조하리의 창을 처음 접하면 흔히 이런 생각을 합니다.

"개방 영역을 크게 만들어야 하는구나."

"맹점과 은폐 영역은 줄여야겠구나."

물론 그런 방향으로 설명할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저는 조금 다르게 생각합니다.

조하리의 창을 꼭 나를 고치는 도구로 사용할 필요는 없습니다.

오히려 나를 덜 오해하기 위한 도구로 바라보면 어떨까요?

맹점 영역에서는 이렇게 말할 수 있습니다.

"혹시 내가 모르는 내 모습이 있을지도 모르겠다."

그 한마디가 피드백을 받아들이는 시작입니다.

은폐 영역에서는 이렇게 생각할 수 있습니다.

"나는 누구에게 마음을 열고 싶은가?"

모두에게 열 필요는 없습니다.

믿을 수 있는 사람에게 조금씩 열면 됩니다.

 

미지 영역에서는 이렇게 생각할 수 있습니다.

"아직 내가 만나지 못한 내가 있을지도 모르겠다."

그래서 새로운 경험을 두려워하지 않을 수 있습니다.

그리고 개방 영역에서는 지금 이미 함께 알고 있는 나를 소중하게 가꾸면 됩니다.

네 개의 창문은 고정되어 있지 않습니다.

사람을 만나고,

대화하고,

상처받고,

용서하고,

새로운 경험을 하고,

때로는 혼자 조용히 자신을 돌아보면서

창문의 크기는 계속 달라집니다.


8. 인간관계가 힘든 것은 서로 다른 창을 보고 있기 때문이다

 

생각해보면 인간관계의 많은 갈등은 여기에서 시작되는지도 모르겠습니다.

나는 내 마음을 보고 있습니다.

상대방은 내가 한 행동을 보고 있습니다.

나는 내 의도를 알고 있습니다.

상대방은 그 의도를 모릅니다.

부부 사이에서도 그렇습니다.

 

남편은 말없이 참고 있었습니다.

"괜히 이야기해서 싸우기 싫었어."

그런데 아내는 이렇게 생각할 수 있습니다.

"나한테 관심이 없는 거야."

부모와 자녀 사이도 비슷합니다.

부모는 걱정되어 충고합니다.

"다 너를 위해서 하는 말이야."

하지만 아이에게는 이렇게 들릴 수 있습니다.

"엄마 아빠는 나를 믿지 않는구나."

누가 틀렸을까요?

어쩌면 둘 다 틀리지 않았을지도 모릅니다.

같은 장면을 보고 있어도, 사람마다 바라보는 창문은 다를 수 있습니다. 출처: Pexels / Julia M Cameron

서로 다른 창문을 바라보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나는 내 마음이라는 창문을 보고 있었고,

상대방은 자신의 경험이라는 창문을 통해 나를 보고 있었던 것입니다.

그래서 인간관계에서 중요한 질문은

"누가 맞느냐?"

가 아닐 때가 많습니다.

오히려

"당신은 나를 어떻게 보고 있었습니까?"

라고 물을 수 있어야 합니다.

 

그리고 상대방의 대답을 들은 뒤,

"나는 그런 뜻이 아니었는데."

라고 끝내는 것이 아니라,

"당신에게는 그렇게 보였구나."

라고 한 번 더 받아줄 수 있다면 관계의 문이 다시 열릴 가능성이 생깁니다.


9. 그렇다면 좋은 인간관계란 무엇일까?

 

우리는 좋은 인간관계를 생각할 때 흔히 이런 관계를 떠올립니다.

나를 잘 알아주는 사람.

내 마음을 알아서 헤아려주는 사람.

내가 굳이 설명하지 않아도 알아주는 사람.

물론 그런 사람이 있다면 참 고맙습니다.

 

하지만 세상에 나를 100% 정확하게 알아주는 사람은 없습니다.

나 자신조차 나를 완전히 알지 못하는데 다른 사람이 나를 완벽하게 알아주기를 기대한다는 것은 어쩌면 너무 큰 요구일지도 모릅니다.

그래서 좋은 관계는 어쩌면 다른 모습일 것입니다.

서로를 완벽하게 아는 관계가 아니라, 서로를 계속 알아가려는 관계.

내가 몰랐던 나의 모습을 이야기해주었을 때 당장 방어하지 않고 한 번쯤 생각해보는 관계.

상대방이 말하지 않는다고 해서 함부로 판단하지 않는 관계.

어제의 모습을 보고 오늘의 사람까지 단정하지 않는 관계.

 

그리고 무엇보다

"내가 보는 당신이 당신의 전부는 아닐 수 있다."

는 사실을 기억하는 관계입니다.

사람은 한 개의 창문으로 설명할 수 있는 존재가 아니기 때문입니다.


에필로그|나는 아직 나를 다 알지 못한다

 

그래서 이제는 "나는 나를 잘 안다"고 쉽게 말하지 않으려고 합니다.

나는 내가 알고 있는 나보다 조금 더 복잡하고,

내가 다른 사람에게 보여주는 나보다 조금 더 깊으며,

아직 나 자신도 발견하지 못한 내가 내 안에 남아 있기 때문입니다.

병원 807호 창가에서 가만히 생각합니다.

18년 동안 사목을 하면서 참 많은 사람을 만났습니다.

그들의 마음을 들여다보고, 그들의 이야기를 듣고, 때로는 그들의 아픔 곁에 오래 머물렀습니다.

 

그런데 정작 나 자신에 대해서는 얼마나 알고 있었을까.

문득 그런 생각이 듭니다.

나는 내가 알고 있는 나만을 데리고 살아온 것은 아닐까.

다른 사람들이 알고 있었지만 나는 모르던 나도 있었을 것이고,

누구에게도 보여주지 않은 나도 있었을 것이며,

아직 나 자신조차 만나지 못한 나도 있었을 것입니다.

그러니 어쩌면 자신을 안다는 것은 나를 완벽하게 설명할 수 있게 되는 일이 아닐지도 모르겠습니다.

오히려

"아직 내가 모르는 내가 있구나."

그 사실을 인정하는 것.

 

그것이 자기 자신을 알아가는 첫걸음인지도 모르겠습니다.

오늘도 807호 창가에서 마음속 네 개의 창을 천천히 바라봅니다.

내가 알고 있는 나.

다른 사람이 알고 있는 나.

아직 누구에게도 보여주지 않은 나.

그리고 나조차 아직 만나지 못한 나.

창문마다 조금씩 다른 내가 서 있습니다.

 

그 모습을 하나씩 바라보다가 마지막으로 스스로에게 묻습니다.

"나는 정말 나를 알고 있을까?"

아직은 잘 모르겠습니다.

그런데 이제는 그 질문이 싫지 않습니다.

오히려 조금 기대가 됩니다.

아직 만나지 못한 내가 남아 있다는 것은,

앞으로 살아가면서 새롭게 발견할 내가 아직 내 삶에 남아 있다는 뜻일 테니까요.

 

오늘 저녁,

잠시 혼자 앉아 마음속 네 개의 창문을 바라보신다면 어떨까요?

그리고 네 개 중 하나를 골라보십시오.

내가 잘 알고 있는 나일까요?

누군가의 눈을 통해 처음 발견한 나일까요?

아직 누구에게도 보여주지 않은 나일까요?

아니면…

아직 나조차 만나지 못한 나일까요?

어쩌면 그 창문 앞에서 오래 머무는 것만으로도,

오늘의 나는 어제의 나보다 조금 더 나를 알게 될지 모릅니다.

결국 가장 오래 들여다봐야 할 창문은, 어쩌면 내 마음속에 있는 창문인지도 모릅니다. 출처: Pexels / Photo By: Kaboompic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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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함께 읽으면 깊어지는 이야기]

> "사람을 조금 더 깊이 이해하기 시작하면, 인간관계에서 반복되는 오해도 조금씩 다르게 보이기 시작합니다. 
> 내가 보는 상대와 실제 상대 사이에는 언제나 작은 틈이 있습니다. 그 틈을 조금씩 좁혀가는 것이 결국 관계를 이해하고, 상처를 회복하고, 좋은 인연을 만들어가는 과정인지도 모르겠습니다.
> 나와 타인의 마음을 연결하고 인간관계 속 상처와 회복을 함께 생각해 볼 수 있는 글들을 아래에서 이어 읽어보세요."

* 📌 **[대화와 심리]** [좋은 말 해줬는데 왜 화를 낼까? 사람의 뇌는 '정답'보다 먼저 이것을 봅니다]
* 📌 **[인간관계와 뇌과학]** [왜 어떤 사람은 처음부터 편할까? 뇌가 먼저 알아보는 '안전한 사람'의 5가지 특징]
* 📌 **[사목의 성찰]**사제 18년의 통찰 | 사람 때문에 상처받지 않는 인간관계의 심리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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