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 글은 「왜 나는 몸과 마음의 회복을 연구하게 되었는가」에 이어지는 개인 회복 기록입니다.
사제복을 벗고, 파산과 공황장애를 겪으며 무너졌던 시간이 어떻게 지금의 저를 만들었는지 궁금하시다면 먼저 아래 글을 읽어보시길 권합니다.👉 [왜 나는 몸과 마음의 회복을 연구하게 되었는가]

연탄가스를 피우고 수면제 30알을 삼키던 그날 밤, 저는 죽음을 선택한 것이 아니었습니다. 당시의 저는 그저 18년 동안 입었던 거룩한 가면의 무게와, 파산으로 으스러진 자존감, 그리고 공황장애라는 지옥으로부터 도망치고 싶었을 뿐입니다.
그날 밤, 저는 미래를 보지 못했습니다.
1. 내가 끝내고 싶었던 것은 삶이 아니었다

우리는 흔히 '죽고 싶다'고 말합니다. 하지만 그 말의 진짜 의미는 '이렇게 살고 싶지 않다'는 뜻입니다. 제가 그날 밤 갈망했던 것은 저라는 존재의 소멸이 아니었습니다. 제 어깨를 짓누르던 감당할 수 없는 고통과 수치심을 단 한 번에 끝내고 싶었을 뿐이었습니다.
죽음은 목표가 아니라, 고통을 해결하기 위한 가장 비극적인 수단이었습니다. 저는 죽음 뒤에 있을 영원한 정적을 바란 것이 아니라, 지금 당장 내 앞을 가로막은 이 고통의 소음으로부터 도망치고 싶었습니다. 내가 끝내고 싶었던 것은 삶이 아니라 고통이었습니다.
2. 아무것도 보이지 않던 밤

18년 동안 입었던 사제복을 벗었고, 사회는 생각보다 차가웠으며, 주식으로 전 재산을 잃었습니다. 공황장애는 사람 얼굴조차 두렵게 만들었습니다. 사람을 만나면 심장이 뛰었고, 전화벨 소리만 울려도 가슴이 철렁 내려앉았습니다.
저는 제가 완전히 실패했다고 생각했습니다. 신부도 아니고, 직장인도 아니고, 사업가도 아니고, 그렇다고 건강한 사람도 아니었습니다. 그때의 저는 스스로를 "아무것도 아닌 사람"이라고 믿었습니다. 지금 돌아보면 참 이상합니다. 그 순간에도 창밖에는 계절이 바뀌고 있었고, 어딘가에서는 꽃이 피고 있었으며, 누군가는 평범한 하루를 살아가고 있었습니다. 하지만 고통은 사람의 시야를 그렇게까지 좁게 만듭니다. 저는 세상 전체가 아니라, 오직 고통만 보고 있었습니다.
3. 가장 낮은 곳에서 발견한 생명의 신호

아이러니하게도 제가 죽으려고 애쓰던 그 순간에도, 제 몸은 저를 살리기 위해 처절하게 사투를 벌이고 있었습니다. 심장은 쿵쿵거리며 박동했고, 폐는 본능적으로 산소를 찾았습니다.
변기통을 붙들고 구토를 하며 바닥을 치던 그날 새벽, 제가 깨달은 것은 하나였습니다. 고통조차도 내가 살아있기에 느낄 수 있는 감각이라는 사실입니다. 나를 괴롭히는 그 지독한 감정들은, 제가 죽어있는 것이 아니라 여전히 삶의 한복판에서 버티고 있다는 유일한 증거였습니다.
4. 고통을 분리하는 연습

저는 죽고 싶었던 그날 이후, '나'와 '고통'을 분리하기 시작했습니다. 예전에는 고통이 제 삶의 전부였지만, 이제는 제 삶에 찾아온 '손님'으로 대합니다. 손님은 머물다 가기 마련입니다. '내가 죽을 것 같다'가 아니라, '내 뇌가 지금 고통이라는 신호를 보내고 있구나'라고 객관적으로 바라봅니다. 이 작은 거리두기가 저를 오늘까지 살게 했습니다. 내 고통은 나라는 사람의 일부일 뿐, 내 삶 전체가 아니라는 사실을 깨달았기 때문입니다.
5. 죽으려 했던 사람이 발견한 삶의 이유

요양원 침대에 누워 천장을 바라보던 그 지루하고 비참했던 시간들이, 지금 돌아보니 제 인생의 '재부팅' 기간이었습니다. 사회적으로 사제복을 벗고, 경제적으로 파산하고, 육체적으로 무너졌던 그때, 저는 비로소 아무것도 아닌 '벌거벗은 인간 김덕원'으로 돌아갈 수 있었습니다.
죽으려고 했던 그날, 저는 제가 가졌던 모든 것을 잃었다고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사실 저는 그날, 가장 중요한 것을 얻을 기회를 얻었습니다. 바로 '타인의 시선에서 자유로운 나 자신'으로 다시 시작할 기회였습니다.
6. 내가 살아남은 진짜 이유

사람들은 가끔 묻습니다. "어떻게 살아남았습니까?" 솔직히 말하면 특별한 이유는 없습니다. 대단한 의지도 없었습니다. 그저 하루만 더 버텨보자는 생각이었습니다.
지금도 공황이 완전히 사라진 것은 아닙니다. 여전히 불안한 날이 있고, 이유 없이 마음이 무너지는 날도 있습니다. 하지만 이제는 압니다. 그날이 영원하지 않다는 것을요. 고통은 지나가고, 사람은 생각보다 오래 버틸 수 있다는 것을요. 그렇게 하루를 이어 붙이다 보니, 어느새 두 번째 봄을 맞이하게 되었습니다. 삶은 거대한 결심으로 이어지는 것이 아니라, 작은 포기를 하지 않는 것으로 이어지는지도 모릅니다.
저는 죽으려고 했던 사람입니다. 하지만 지금은 살아남은 사람입니다.
그래서 오늘도 하루를 살아봅니다. 내일이 좋아질 거라는 확신 때문이 아니라, 오늘이 영원하지 않다는 것을 알기 때문입니다.
당신이 지금 끝내고 싶은 것은 당신의 삶이 아닐 가능성이 큽니다. 당신을 짓누르는 고통, 수치심, 불안, 상실감, 외로움일 것입니다. 그러니 오늘 하루만 더 버텨보십시오. 저도 그렇게 살아남았습니다.
그리고 어쩌면, 지금은 보이지 않더라도 당신의 두 번째 봄도 이미 오고 있는 중인지 모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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