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 글은 운영자 소개 글인 「왜 나는 몸과 마음의 회복을 연구하게 되었는가」와 연결되는 개인 경험 기록입니다.
👉 [왜 나는 몸과 마음의 회복을 연구하게 되었는가]https://honeypig66.tistory.com/pages/%EC%83%9D%EA%B0%81-%EB%82%B4%EA%B0%80-%EA%B1%B4%EA%B0%95%EA%B3%BC-%EB%87%8C-%EA%B3%BC%ED%95%99-%EC%BD%98%ED%85%90%EC%B8%A0%EB%A5%BC-%EC%93%B0%EA%B2%8C-%EB%90%9C-%EC%9D%B4%EC%9C%A0

1. 제의실의 악몽, 왜 나는 아직도 그곳에 있는가

어젯밤에도 꿈을 꾸었습니다. 낡은 제의실의 냄새가 났습니다. 묵직한 자수와 빳빳한 천의 감촉, 그 익숙한 제의를 어깨에 걸치려는데, 갑자기 제 뒤로 동료 신부들이 들어옵니다. 그들은 아무렇지 않게 자신의 옷을 챙겨 입는데, 저는 그들 앞에서 제의를 만지작거리다 덜컥 멈춰 섭니다. '아차, 나 이제 신부가 아니지.'
가슴 한구석이 텅 빈 것처럼 쭈볏거립니다. 나는 그들에게 보일까 봐 황급히 옷을 내려놓고, 뒷걸음질 치며 제의실을 나옵니다. 18년의 세월이 나를 지배하던 그 시간으로, 나는 매일 밤 꿈속에서 되돌아가고 있었습니다. 왜 나는 사제복을 벗은 지 한참이 지난 지금도, 꿈에서조차 제의실을 서성이는 걸까요.
2. 18년, 내 존재의 전부였던 이름

제 인생에서 '신부'라는 이름은 직업이 아니었습니다. 그것은 저라는 사람을 지탱하던 척추였고, 세상과 소통하던 유일한 언어였습니다. 18년. 성인이 되어 처음으로 짊어진 십자가이자 영광이었던 그 무게는, 너무나 깊이 박혀 있어 내 살점이 떨어져 나가는 것과 같았습니다. 공황장애로 무너지고 파산을 겪으며 모든 것이 끝났다고 생각했던 그날에도, 저는 여전히 제 안의 신부를 버리지 못하고 있었습니다. 사제복을 벗는다는 것은 단순히 옷을 갈아입는 일이 아니라, 18년 동안 만들어온 내 세계를 완전히 해체하는 일이었습니다.
3. 왜 아직도 그 꿈을 꾸는가

심리학에서는 오랫동안 자신을 규정하던 역할을 잃었을 때, 무의식이 그 시절을 반복해서 재생하는 경우가 있다고 말합니다. 군인이 전역한 뒤에도 꿈에서 군복을 입고, 교사가 퇴직한 뒤에도 교실에 서 있는 꿈을 꾸고, 사업을 접은 사람이 여전히 회사로 출근하는 꿈을 꾸는 것처럼 말입니다.
어쩌면 제 꿈도 같은 이유였는지 모릅니다. 사제복을 그리워한 것이 아니라, 신부라는 이름으로 살던 시절의 '나'를 아직 완전히 떠나보내지 못한 것이었습니다.
4. 사제복을 그리워하는 것이 아니었다

오랫동안 저는 그 꿈의 의미를 오해했습니다. 사제복을 다시 입고 싶어서 꾸는 꿈이라고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알게 되었습니다. 제가 그리워했던 것은 사제복이 아니라, 사제복을 입고 있을 때의 '확실함'이었습니다. 그때의 저는 내가 누구인지 알고 있었습니다. 아침에 눈을 뜨면 해야 할 일이 있었고, 사람들은 저를 신부님이라 불렀으며, 제 자리도 분명했습니다.
하지만 모든 것이 무너진 뒤에는 달랐습니다. 더 이상 신부도 아니고, 성공한 사람도 아니고, 건강한 사람도 아니었습니다. 그래서 무의식은 자꾸만 저를 과거의 제의실로 데려갔던 것입니다. 그곳이 행복해서가 아니라, 그곳이 익숙했기 때문입니다. 인간은 행복한 곳보다 익숙한 곳을 더 그리워합니다. 심지어 그곳이 고통스러웠더라도 말입니다.
5. 병동에서 마주한 '벌거벗은 나'

요양원 병동의 차가운 벽면을 보며 저는 매일 밤 죽음과 대면했습니다. 튜브를 꽂고, 간병인의 손길에 의존하며, 아무도 오지 않는 복도를 홀로 걸을 때, 저는 비로소 사제복이라는 거대한 보호막이 걷힌 '진짜 나'를 마주했습니다. 그곳에서는 신부도, 사제도 없었습니다. 그저 밥을 먹고 잠을 자고, 통증에 신음하는 한 명의 '인간'만 있었습니다.
제가 꿈속에서 뒷걸음질 치며 나왔던 그 제의실은 사실 제가 18년 동안 가두어두었던 '인간 김덕원'의 감옥이었습니다. 사제복을 입었을 때 저는 거룩했으나 외로웠고, 모든 것을 잃고 병동에 누웠을 때 저는 비루했으나 비로소 숨을 쉴 수 있었습니다.
6. 아무도 오지 않는 복도, 병보다 무서웠던 외로움

가족들은 1년이 넘도록 발길을 끊었습니다. 병보다 무서웠던 것은 외로움이었습니다. 통증은 약으로 버틸 수 있었지만, 아무도 오지 않는 기다림은 견딜 방법이 없었습니다. 처음에는 기다렸습니다. 오늘은 오겠지, 이번 주에는 연락이 오겠지. 복도 끝에서 들려오는 발소리마다 귀를 기울였지만, 그 소리는 늘 제 방을 지나쳐 다른 곳으로 향했습니다.
어느 순간부터는 복도 끝에서 발소리가 들려도 고개를 들지 않게 되었습니다. 기대하지 않으면 실망도 하지 않을 수 있으니까요. 그렇게 사람을 기다리는 법을 잊어갔습니다. 그런데 이상한 일이었습니다. 사람을 기다리지 않게 되자 비로소 제 마음이 보이기 시작했습니다. 저는 누군가가 와서 저를 구해주기를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하지만 아무도 오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바로 그 사실이 저를 살렸습니다. 내 인생을 대신 살아줄 사람은 없다는 것을 받아들인 순간, 저는 처음으로 제 두 발로 다시 일어서기 시작했습니다.
7. 침묵 속에서 찾은 '할 일', 새로운 강론

사람들에게서 받은 상처는 사람에게서 치유해야 한다고들 합니다. 하지만 경산에서의 침묵 속에서, 그리고 요양원의 좁은 침대 위에서 저는 한 가지 사실을 깨달았습니다. 저에게는 글을 쓰는 재능이 있다는 것입니다.
처음에는 그저 시간을 죽이기 위해 글을 썼습니다. 그런데 어느 날 댓글 하나가 달렸습니다. "제 이야기인 줄 알았습니다." 그 짧은 문장을 읽는 순간 알게 되었습니다. 내가 겪은 고통이 헛된 것이 아니었구나. 신부였던 시절에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들어주었습니다. 지금은 제 이야기를 씁니다. 신기하게도, 그렇게 쓴 글들이 다시 누군가의 이야기가 되어 돌아옵니다. 어쩌면 이 글들은 저를 살리는 기록인 동시에, 누군가에게는 다시 살아갈 이유가 될지도 모르겠습니다.
8. 요양원에서 맞이한 두 번째 봄

올해로 요양원에서 두 번째 봄을 맞이하고 있습니다. 작년엔 그저 살아남느라 계절조차 느끼지 못했습니다. 하지만 올해는 달랐습니다. 어느 날 아침, 병실 창문으로 들어오는 햇살을 보다가 문득 깨달았습니다. 예전의 저는 늘 어딘가를 향해 달려가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병동에서의 시간은 저를 강제로 멈춰 세웠습니다. 아무것도 할 수 없게 되었을 때, 비로소 보이는 것들이 있었습니다. 창밖의 나무, 복도 창문으로 스며드는 햇살, 아침 식사 후 마시는 따뜻한 물 한 잔. 예전에는 너무 작아서 보이지 않던 것들이, 지금은 하루를 버티게 하는 선물이 되었습니다. 어쩌면 행복은 특별한 곳에 있는 것이 아니라, 내가 살아 있다는 사실을 알아차리는 능력인지도 모르겠습니다.
9. 괜찮아, 나는 이제 그 옷이 없어도 된다

요즘도 가끔 꿈속에서 제의실을 만납니다. 하지만 예전과는 조금 다릅니다. 예전에는 제의를 붙잡고 서 있었습니다. 지금은 그 옷을 바라보다가 조용히 웃습니다. 그리고 속으로 말합니다. "괜찮아. 나는 이제 그 옷이 없어도 된다." 어쩌면 회복이란 과거를 잊는 것이 아니라, 과거를 떠올려도 더 이상 아프지 않는 상태인지도 모르겠습니다.
10. 결국 우리는 모두 옷을 벗으며 살아간다

생각해 보면 인생은 끊임없이 옷을 갈아입는 과정인지도 모르겠습니다. 학생이라는 옷을 벗고, 직장인이라는 옷을 입고, 어느 날은 부모라는 옷을 입고, 또 어느 날은 그 옷마저 벗어야 합니다. 저는 신부라는 옷을 입고 18년을 살았습니다. 하지만 인생은 제가 입고 있는 옷보다 훨씬 큰 것이었습니다. 사제복이 사라졌다고 해서 제가 사라지는 것은 아니었습니다. 오히려 모든 옷을 벗고 난 뒤에야, 비로소 진짜 나를 만나게 되었습니다.
11. 나는 아직 끝나지 않았다

가끔은 아직도 불안합니다. 앞으로 어떻게 살아야 할지 모르겠는 날도 있습니다. 하지만 한 가지는 분명합니다. 예전의 저는 성공해야만 가치 있는 사람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지금의 저는 살아 있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의미가 있다고 믿습니다. 그래서 오늘도 글을 씁니다. 어쩌면 이 글은 무너졌던 한 사람의 기록이 아니라, 다시 살아가기로 결정한 사람의 기록인지도 모르겠습니다.
2024년 5월 16일. 저는 제 인생이 끝났다고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지금 돌아보면, 그날은 끝이 아니었습니다. 모든 것을 잃은 자리에서 비로소 진짜 나를 만나기 시작한 날이었습니다. 사제복도, 돈도, 건강도, 사람들도 잃어버렸습니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그 모든 것을 잃고 나서야 저는 저 자신을 되찾았습니다. 그래서 오늘도 살아갑니다. 느리지만, 조금씩. 봄은 어느 날 갑자기 오는 것이 아니라, 겨울을 견딘 사람 안에서 먼저 시작된다는 것을 이제는 알기 때문입니다.
꿈속의 제의실 문은 여전히 가끔 열립니다. 하지만 이제 저는 압니다. 그 문은 다시 들어가라고 열린 문이 아니라, 얼마나 먼 길을 걸어왔는지 보여주기 위해 열린 문이라는 것을. 그리고 언젠가 다시 제의실 꿈을 꾸더라도, 이번에는 뒷걸음질 치지 않을 것입니다. 그곳은 내가 돌아가야 할 곳이 아니라, 내가 지나온 곳이라는 것을 이제는 알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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