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이 글은 운영자 소개 글인 「왜 나는 몸과 마음의 회복을 연구하게 되었는가」와 연결되는 개인 경험 기록입니다.👉 [왜 나는 몸과 마음의 회복을 연구하게 되었는가]https://honeypig66.tistory.com/pages/%EC%83%9D%EA%B0%81-%EB%82%B4%EA%B0%80-%EA%B1%B4%EA%B0%95%EA%B3%BC-%EB%87%8C-%EA%B3%BC%ED%95%99-%EC%BD%98%ED%85%90%EC%B8%A0%EB%A5%BC-%EC%93%B0%EA%B2%8C-%EB%90%9C-%EC%9D%B4%EC%9C%A0
1. 2024년 5월 16일, 멈춰버린 시계

2024년 5월 16일. 요양원 병동 문이 제 뒤에서 철컥 닫혔습니다. 그 소리를 아직도 기억합니다. 그날 저는 18년 동안 입었던 사제복도, 사회적 지위도, 돈도, 건강도 잃은 상태였습니다. 솔직히 말하면 저는 그날, 내 인생이 끝났다고 생각했습니다. 다시는 사회로 돌아가지 못할 것 같았습니다. 다시는 사람들 앞에 설 수도 없을 것 같았습니다. 그런데 지금 저는 이 글을 쓰고 있습니다. 인생이 끝났다고 생각했던 바로 그 장소에서, 다시 살아가는 법을 배우게 되었기 때문입니다.
2. 수면제에 취해 잃어버린 6개월

입원 후 처음 6개월은 '시간'이라는 개념 자체가 없었습니다. 눈을 뜨면 아침인지 저녁인지 몰랐고, 간병인이 흔들어 깨우면 밥을 몇 숟갈 뜨고 다시 잠들었습니다. 코에 튜브를 꽂고 영양액을 공급받던 제 모습은 스스로 생각해도 참혹했습니다. 화장실로 걸어가는 것조차 버거워 휠체어에 의지해야 했습니다.
어느 날 달력을 보니 제가 기억하지 못하는 날짜들이 한 달 넘게 지나 있었습니다. 그때 처음으로 무서워졌습니다. 나는 지금 살아있는 것일까, 아니면 그냥 시간을 소비하고 있는 것일까. 창밖으로는 계절이 바뀌고 꽃이 피고 지는데, 병동 안에서는 오직 정해진 시간에 밥을 먹고, 약을 먹고, 잠드는 반복뿐이었습니다. TV 소리조차 견디기 힘들어 귀를 막고 침대에 웅크린 채 천장만 바라보던 날들. 사람들은 요양원에 들어가면 몸이 쉬는 줄 알지만, 저는 몸보다 마음이 먼저 산산조각이 나 있었습니다. 6개월이라는 시간은 제 기억 속에서 통째로 도려내어진, 검은 구멍과 같았습니다.
3. 지옥 같은 병실, 그놈과의 악연

병실은 작은 사회였습니다. 저를 인간적으로 대해주는 이들도 있었지만, 늘 옆자리에 있던 한 놈이 문제였습니다. 저보다 조금 더 빨리 들어왔다는 이유로 제게 막 대하며 모욕을 주었습니다. 자존감이 바닥난 상태에서 그의 언어폭력은 제게 비수가 되어 꽂혔습니다. 너무나 화가 나고 억울해서 밤마다 기도했습니다. "제발 저 사람을 제 삶에서 멀어지게 해주십시오. 이 고통에서 저를 벗어나게 해주십시오."
제가 걷기 시작하면서 간병인이 없는 병실로 옮겼지만, 공교롭게도 그곳에도 비슷한 부류의 인간이 들어와 저를 괴롭혔습니다. 신께서는 제 기도를 즉각적으로 들어주지 않으셨습니다. 대신 제 안에 쌓인 분노를 마주하게 하셨습니다. 죽이고 싶을 만큼 미웠던 그들을 향한 기도가, 결국은 내 안의 비루한 상처를 확인하는 과정임을 깨닫기까지 오랜 시간이 걸렸습니다.
4. 아무도 오지 않는 복도

가족들은 1년이 넘도록 발길을 끊었습니다. 병보다 무서웠던 것은 외로움이었습니다. 통증은 약으로 버틸 수 있었지만, 아무도 오지 않는 기다림은 견딜 방법이 없었습니다. 처음에는 기다렸습니다. 오늘은 오겠지, 이번 주에는 연락이 오겠지. 복도 끝에서 들려오는 발소리마다 귀를 기울였지만, 그 소리는 늘 제 방을 지나쳐 다른 곳으로 향했습니다.
사랑하는 이들에게 징글징글한 존재가 되었다는 사실을 인정하는 것은, 신부복을 벗는 것보다 더 아팠습니다. 결국 저는 기다리는 법부터 포기해야 했습니다. 아무도 오지 않는 복도를 홀로 걸으며, 저는 비로소 인간관계의 허상을 보았습니다. 사랑은 때로 상대의 짐이 될 수 있다는 것, 그리고 결국 내 영혼을 구원할 사람은 오직 나 자신뿐이라는 것을 그 긴 침묵의 복도에서 배웠습니다.
5. 무너진 사람만이 알게 되는 것

요양원에는 많은 사람들이 있습니다. 몸이 아파 들어온 사람, 마음이 아파 들어온 사람, 삶에 지쳐 들어온 사람. 처음에는 모두가 자신의 인생이 끝났다고 생각합니다. 저 역시 그랬습니다. 하지만 신기하게도 시간이 지나면 알게 됩니다. 사람은 생각보다 쉽게 무너지지 않는다는 것을 말입니다. 완전히 끝났다고 생각했던 사람도 다시 웃게 되고, 걷지 못하던 사람도 다시 걸으며, 아무것도 하고 싶지 않던 사람도 어느 날 갑자기 새로운 계획을 세우기 시작합니다. 회복은 거창하게 찾아오지 않습니다. 어느 날 창문을 열었는데 바람이 좋다고 느껴지는 것, 산책길에 핀 꽃이 눈에 들어오는 것, 오늘 하루를 버텨낸 자신이 조금 덜 미워지는 것. 회복은 그런 작은 순간들의 합이었습니다.
6. 침묵 속에서 찾은 '할 일'

사람들에게서 받은 상처는 사람에게서 치유해야 한다고들 합니다. 글쎄요, 아직 그 말에 완벽히 동의할 수는 없습니다. 하지만 경산에서의 침묵 속에서, 그리고 요양원의 좁은 침대 위에서 저는 한 가지 사실을 깨달았습니다. 저에게는 글을 쓰는 재능이 있다는 것입니다.
처음에는 그저 시간을 죽이기 위해 글을 썼습니다. 그런데 어느 날 댓글 하나가 달렸습니다. "제 이야기인 줄 알았습니다." 그 짧은 문장을 읽는 순간 알게 되었습니다. 내가 겪은 고통이 헛된 것이 아니었구나. 신부였던 시절에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들어주었습니다. 지금은 제 이야기를 씁니다. 신기하게도 그렇게 쓴 글들이 다시 누군가의 이야기가 되어 돌아옵니다. 방법만 달라졌을 뿐, 지금도 누군가의 곁에 서 있다는 것을 깨닫습니다. 최근 개인파산을 겪으며, 벼랑 끝에서도 길을 여시는 살아계신 분의 손길을 느낍니다.
7. 요양원에서 맞이한 두 번째 봄

올해로 요양원에서 두 번째 봄을 맞이하고 있습니다. 작년엔 그저 살아남느라 계절조차 느끼지 못했습니다. 하지만 올해는 달랐습니다. 어느 날 아침, 병실 창문으로 들어오는 햇살을 보다가 문득 깨달았습니다. 작년에도 같은 햇살이 들어왔을 텐데, 저는 그것을 보지 못했습니다. 살아남는 것에만 집중하느라 계절을 잃어버렸던 것입니다.
이제 저는 아침에 눈을 뜨면 스스로 걷고, 글을 쓰며, 세상과 소통할 준비를 합니다. 첫 번째 봄이 '버티기'였다면, 지금의 두 번째 봄은 '확인'입니다. 실패한 것이 아니라, 가장 고통스러운 방식으로 제 인생을 재건하고 있는 중입니다.
8. 나는 아직 끝나지 않았다

혹시 지금 사람 만나는 것이 두렵습니까? 너무 오래 혼자 버텨왔기 때문에 몸과 마음이 쉬어 달라고 신호를 보내고 있는 것일지도 모릅니다. 저 역시 그 길을 지나왔습니다.
가끔은 아직도 불안합니다. 앞으로 어떻게 살아야 할지 모르겠는 날도 있습니다. 하지만 한 가지는 분명합니다. 예전의 저는 성공해야만 가치 있는 사람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지금의 저는 살아 있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의미가 있다고 믿습니다. 그래서 오늘도 글을 씁니다. 어쩌면 이 글은 무너졌던 한 사람의 기록이 아니라, 다시 살아가기로 결정한 사람의 기록인지도 모르겠습니다.
2024년 5월 16일. 저는 제 인생이 끝났다고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지금 돌아보면, 그날은 끝이 아니었습니다. 모든 것을 잃은 자리에서 비로소 진짜 나를 만나기 시작한 날이었습니다. 사제복도, 돈도, 건강도, 사람들도 잃어버렸습니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그 모든 것을 잃고 나서야 저는 저 자신을 되찾았습니다. 그래서 오늘도 살아갑니다. 느리지만, 조금씩. 봄은 어느 날 갑자기 오는 것이 아니라, 겨울을 견딘 사람 안에서 먼저 시작된다는 것을 이제는 알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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