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론입니다. 아래는 "가장 끔찍했던 기억 마주해야 트라우마 치료 가능"이라는 주제를 실제 심리학 이론과 사례를 바탕으로 구성했습니다.
“가장 끔찍했던 기억 마주해야 트라우마 치료 가능”

인간은 잊을 수 있는 존재다. 하지만 때때로 어떤 기억은 지워지지 않는다. 그것도 단순히 아픈 기억이 아니라, 마음 깊숙한 곳에서 끊임없이 되살아나며 고통을 주는 기억—바로 ‘트라우마’다. 우리가 일상에서 겪을 수 있는 교통사고, 자연재해, 학대, 전쟁, 성폭력, 폭력 등의 극심한 경험은 시간이 흐른 뒤에도 강한 감정 반응과 신체 반응을 일으킨다. 그리고 그런 고통스러운 기억은 단지 ‘기억’으로만 남지 않고, 그 사람의 인생 전체를 잠식해버릴 수도 있다.
1) 트라우마란 무엇인가?

트라우마(Trauma)는 그리스어로 ‘상처’를 의미한다. 정신의학에서의 트라우마는 감정적으로 감당하기 어려운 충격적인 사건을 겪은 뒤, 그 기억이 뇌에 각인되어 불안, 우울, 과각성, 회피, 재경험 등의 증상을 유발하는 심리적 상처를 뜻한다.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PTSD)는 그 대표적인 진단이다.

예컨대 성폭력 피해를 입은 여성이 몇 년이 지나도 가해자의 냄새나 비슷한 상황만으로도 심한 불안과 공포를 느낀다거나, 전쟁을 겪은 군인이 갑작스러운 소리에 주저앉고 눈물을 터뜨리는 현상 등이 이에 해당한다. 이처럼 트라우마는 단지 과거의 일이 아니라, 현재를 왜곡하고 미래를 위협하는 ‘살아 있는 고통’이다.
2) 왜 기억을 회피하면 치료가 어려운가?
많은 사람들은 트라우마를 마주하는 것 자체를 피하려 한다. 이는 본능적인 방어 기제이다. 하지만 정신분석학과 인지행동치료(CBT), 심리학계에서는 오랫동안 하나의 명제가 공유되어 왔다. 바로, **“트라우마는 마주해야 치유된다”**는 것이다.

이유는 간단하다. 트라우마는 뇌 속에 ‘감정과 감각’으로 저장되어 있기 때문이다. 일반적인 기억은 시간이 지나면 흐릿해지고, 좌뇌(언어와 논리를 담당하는 부분)에 저장된다. 그러나 트라우마는 우뇌(감정과 직관을 담당하는 부분)에 생생한 이미지와 감정으로 각인된다. 때문에 언어로 표현하지 않으면, 그리고 그것을 인식하지 않으면 계속해서 ‘몸’과 ‘감정’으로 재현된다.

PTSD 환자들의 뇌 영상 연구에 따르면, 트라우마를 떠올릴 때 뇌의 언어 중추는 비활성화되고, 감각을 담당하는 부위가 활성화된다. 즉, 그들은 ‘사건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 ‘그때의 감각을 다시 느끼는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트라우마를 치유하려면 그 감각과 감정을 의식적으로 마주하고, 언어화하고, 재구성하는 과정이 필요하다.
3) 노출 치료: 가장 끔찍한 기억으로 들어가는 문

이 연구는 IBS(기초과학연구원) 인지 및 사회성 연구단 신희섭 단장의 연구팀이 진행한 것으로,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PTSD, 트라우마)를 치료하는 데 효과적인 심리치료 기법의 과학적 근거를 동물실험을 통해 세계 최초로 입증한 사례다.
연구진은 트라우마 기억을 가진 생쥐를 모델로 사용하여, 양측성 자극(bilateral stimulation)이 공포반응을 효과적으로 감소시킨다는 사실을 확인했다. 이는 '안구운동 민감소실 및 재처리 요법(EMDR: Eye Movement Desensitization and Reprocessing)'과 유사한 방식으로, 트라우마 기억을 줄이거나 완화하는 데 매우 효과적인 심리치료법이다.
주요 성과 요약:
EMDR의 효과를 동물 실험으로 세계 최초로 입증.
공포반응을 줄이는 새로운 뇌 회로 발견.
연구 결과는 세계적인 과학 학술지 Nature에 2025년 2월 14일 게재됨.
치료 기법 개발 및 PTSD 환자에게 새로운 희망 제공.
이 연구는 영화 이터널 선샤인처럼 기억을 조작하는 공상과학을 넘어, 실제로 고통스러운 기억을 조절하는 과학적 실현 가능성을 보여준다.

또 다른 대표적인 트라우마 치료법 중 하나는 **‘노출 치료(Exposure Therapy)’**다. 이 치료법은 환자가 회피하는 트라우마의 기억을 점진적으로 떠올리게 하거나, 그와 유사한 자극에 노출시켜 익숙해지도록 하는 방식이다. 처음에는 불안이 극심하게 증가하지만, 반복된 노출을 통해 뇌는 점차 ‘이 기억은 위험하지 않다’는 신호를 받게 되고, 감정 반응이 감소한다
예를 들어, 비행기 사고를 겪은 후 비행기를 타지 못하는 환자에게 처음에는 비행기 사진을 보여주고, 이어 공항 근처에 가보게 하고, 마지막으로 실제로 짧은 비행을 하도록 유도하는 것이다. 또는 전쟁에서 목격한 장면을 언어로 반복 묘사하면서 점차 감정을 떨어뜨리는 방법도 사용된다.

이런 치료는 고통스럽지만, 반복적인 노출과 감정의 수용이 이루어질 때 트라우마는 단순한 ‘기억’으로 바뀔 수 있다. 그리고 이 과정은 환자가 자신의 삶을 통제할 수 있다는 감각—‘자기 효능감(self-efficacy)’을 회복하는 데에도 큰 도움을 준다.
4) “당신 잘못이 아니다” – 치유의 시작은 자기 자비

많은 트라우마 환자들은 자기 자신을 비난한다. “내가 왜 그때 거기 있었을까?”, “왜 저항하지 못했을까?”, “왜 아직도 이걸 극복 못하는 걸까?” 하는 생각은 피해자에게 2차 고통을 준다. 그러나 심리학자들은 말한다. 트라우마의 치유는 **자기 자비(self-compassion)**에서 시작된다고.

자기 자비란, 고통스러운 자신에게 연민을 가지고 다정하게 대하는 태도이다. 이는 단순한 위로나 긍정적 사고가 아니다. 자신이 겪은 경험을 있는 그대로 수용하고, 그 안에서 느끼는 감정—두려움, 수치심, 분노, 무력감 등을 부정하지 않는 태도다. 이것이 바로 ‘기억을 마주한다’는 것의 진정한 의미다.

5) 기억을 이야기로 바꾸는 힘

심리학자 댄 시겔(Dan Siegel)은 “이야기하지 않은 기억은 계속해서 우리 안에서 되풀이된다”고 말했다. 트라우마를 극복한다는 것은 그저 잊는 것이 아니라, 그 기억을 ‘내러티브(narrative)’로 바꾸는 과정이다. 즉, 무작위적이고 감각적인 단편의 기억을 시간 순서와 의미로 정리해, 스스로의 삶 속에 위치시켜야 한다.

그래야만 우리는 고통의 기억을 자신이 통제 가능한 것으로 바꿀 수 있고, 그것이 더 이상 나를 휘두르지 않게 된다. 이는 정신적 회복력, 즉 레질리언스(Resilience)의 핵심이다. 많은 트라우마 생존자들이 그 경험을 글이나 예술, 상담, 동료 지지 집단 등을 통해 이야기하는 것도 같은 맥락이다.
6) 치유는 ‘혼자’가 아닌 ‘함께’의 길

끝으로 중요한 것은, 트라우마 치료는 결코 혼자 해내야 할 과제가 아니라는 점이다. 기억을 마주하는 과정은 누구에게나 두렵고 힘들다. 그렇기에 전문적인 심리상담가, 정신과 의사, 그리고 안전한 지지적 환경이 필요하다. ‘말해도 된다’는 신호, ‘괜찮다’는 수용, ‘너는 혼자가 아니다’라는 메시지가 회복의 디딤돌이 된다.

세월호 생존자, 전쟁 난민, 아동 학대 피해자, 성폭력 피해자들처럼 심각한 트라우마를 겪은 사람들조차, 시간과 지지 속에서 회복되며 다시 일상을 살아간다. 그리고 그들은 말한다. “그 기억은 사라지지 않았지만, 더 이상 나를 지배하지 않는다.”
7) 맺으며
트라우마를 치유하기 위해 우리는 기억을 마주해야 한다. 가장 끔찍했던 그 순간을 회피하지 않고 바라보아야만, 그것을 ‘과거’로 만들 수 있다. 고통을 외면하지 않고, 언어화하고, 나누며, 재해석하는 과정은 고통스러우나, 그 끝에는 새로운 삶이 기다리고 있다.
“상처는 흔적을 남기지만, 그 흔적은 우리가 살아냈다는 증거이기도 하다.”
기억은 바뀌지 않지만, 그 기억을 대하는 우리의 태도는 바뀔 수 있다. 그리고 바로 그 변화가, 트라우마를 치유하는 첫걸음이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