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학력자들이 오히려 치매에 더 취약하다는 주장, 얼핏 보면 직관에 반하는 이야기처럼 들릴 수 있습니다. 통상적으로 교육 수준이 높을수록 뇌 인지 예비력(cognitive reserve)이 높고, 이는 알츠하이머병이나 치매에 대한 방어력이 강하다는 것으로 알려져 왔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최근 몇몇 연구는 오히려 고학력자들이 치매에 더 빠르게 진행되거나 더 취약한 경향이 있을 수 있다는 역설적인 관찰을 제시하고 있습니다. 이 현상의 핵심 배경으로는 수면 부족과 뇌 회복 시간의 결핍이 중요한 요인으로 지목되고 있습니다.

1. 인지 예비력의 양날의 검
인지 예비력은 반복적인 학습과 고차원적인 정신 활동을 통해 축적된 뇌의 '버퍼' 같은 개념입니다. 예를 들어, 같은 정도의 뇌 위축이나 아밀로이드 침착이 있어도 인지 예비력이 높은 사람은 외견상 증상이 늦게 발현될 수 있습니다. 고학력자, 전문직 종사자, 다중 언어 사용자 등이 이에 해당됩니다.

하지만 이 버퍼가 존재한다고 해서 치매로부터 완전히 안전한 것은 아닙니다. 오히려 인지 예비력이 높은 사람일수록 치매 증상이 발현되었을 때는 이미 뇌 손상이 많이 진행된 상태일 가능성이 크며, 그만큼 치매 진행 속도가 빠를 수 있습니다. 즉, '늦게 나타나지만 더 급격하게 악화된다'는 이중적 속성이 있습니다.

2. 고학력자의 생활 패턴과 수면 부족
최근 주목받는 요인 중 하나는 고학력자들의 수면 습관 및 뇌 회복 시간 부족입니다. 일반적으로 고학력자들은 더 많은 업무량, 책임, 스트레스를 감당하며 살아갑니다. 이는 학문적 훈련, 전문직에 종사하는 특성, 야근, 주말 업무 등과 밀접히 연결되어 있습니다. 그 결과:

만성적인 수면 부족

야간에 머리를 계속 쓰는 습관

깊은 수면 단계(서파수면, SWS) 부족

이러한 패턴이 축적되면 뇌의 ‘청소’ 시스템으로 알려진 **글림프(Glymphatic system)**의 활동이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게 됩니다. 이 시스템은 특히 수면 중에 활발히 작동하며, 뇌세포 사이의 노폐물(특히 알츠하이머와 관련된 β-아밀로이드와 타우 단백질)을 제거하는 역할을 합니다.

3. 수면 부족과 치매 간 과학적 연관성
수면과 치매의 관련성은 뇌영상과 생리학적 연구를 통해 명확히 밝혀지고 있습니다. 몇 가지 예시는 다음과 같습니다.

2018년 미국 NIH 연구: 일주일간 수면을 4시간으로 제한한 성인의 뇌에서는 β-아밀로이드 수치가 하루에 5~10% 이상 증가하는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2020년 프랑스 INSERM 코호트 연구: 50대에 6시간 미만의 수면을 지속한 사람들이 이후 65세 이상에서 치매 발병 위험이 약 30% 증가했습니다.

동물 실험에서는 수면을 제한한 생쥐에서 신경세포 간 시냅스 손실, 염증반응 증가, 기억력 저하 등의 치매 유사 변화가 발생했습니다.
즉, 수면 부족은 단순히 피로를 유발하는 것이 아니라, 장기적으로 뇌 구조와 기능에 손상을 주고, 신경 퇴행성 질환의 진행을 가속화할 수 있는 위험인자입니다.

4. 고학력자의 자기 관리 역설
아이러니하게도 고학력자들은 수면의 중요성을 인지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다음과 같은 이유로 실천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생산성과 효율성에 집착: "잠자는 시간조차 아깝다"는 인식

완벽주의 성향: 일, 연구, 프로젝트를 마무리하느라 밤을 새는 경우 잦음

업무로 인한 스트레스: 스트레스로 인해 불면증이나 수면 질 저하 발생

자율성과 책임감의 이중성: 시간 선택권은 있지만 쉬는 데 죄책감을 느낌

이러한 이유로 인해 고학력자들은 수면 시간을 줄이고 과로를 일삼는 삶의 방식을 스스로 선택하게 됩니다. 하지만 이는 결국 뇌의 회복 기회를 빼앗는 결과로 이어지며, 장기적으로 신경세포 소모 > 회복이라는 불균형을 만들어냅니다.
5. 수면은 '지성'보다 강력한 치매 예방법

여러 메타분석에 따르면, 7~8시간의 규칙적인 수면은 치매 예방에 있어 식이조절, 운동, 약물치료보다도 강력한 보호 인자로 작용할 수 있습니다. 특히 깊은 수면(SWS)과 렘수면 단계는 기억을 정리하고, 뇌 노폐물을 제거하며, 신경 재생을 촉진하는 핵심적 역할을 합니다.

깊은 수면 부족 시 해마(기억 저장소)와 전전두엽(집중력·계획력 조절)의 활동이 약화됩니다.

수면 중 신경세포는 수축하고 뇌척수액의 흐름이 증가하면서 β-아밀로이드 배출을 도와줍니다.

즉, 뇌세포 자체를 보호하고 유지하기 위해서는 ‘학습’보다도 ‘회복’이 필수이며, 이는 충분한 수면 없이는 이루어질 수 없습니다.

6. 결론: 똑똑한 사람일수록 더 자야 한다

고학력자들이 치매에 더 취약할 수 있는 이유는 단순한 역설이 아니라, 지적 활동을 지속하기 위해 필요한 뇌 회복 시간을 무시한 결과일 수 있습니다. 치매는 단순히 뇌의 나이 들음이 아니라, 지속적 손상과 회복 부족의 누적으로 인해 발생합니다. 고차원적 사고를 유지하기 위해서는 오히려 더 많은 회복과 휴식, 즉 충분한 수면이 필수적입니다.

‘덜 자고 더 공부하는’ 삶이 장기적으로는 뇌 건강을 갉아먹는다는 점에서, 고학력자일수록 더 철저한 수면 관리가 필요하다는 것이 최근 과학이 주는 중요한 메시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