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한국의 산과 들, 냇가를 따라 걷다 보면 자주 마주치는 한 식물. 분홍빛 또는 자줏빛의 작은 꽃이 무리를 이루며 피어나는 이 풀은 겉보기엔 흔한 잡초처럼 보일 수 있지만, 알고 보면 오랜 세월 우리 민족과 함께해온 귀중한 자원이다. 이 식물의 이름은 바로 ‘고마리’다. 이름에 ‘고마움(고마워할 만한 풀)’이란 의미를 지닌 고마리는 한국의 자연 환경에서 널리 분포하며, 생태학적, 약용적, 식용적 가치를 두루 갖춘 ‘살아있는 유산’이라 할 수 있다. 지금부터 고마리가 가진 쓰임새와 효능, 생태적 특징에 대해 과학적으로 고찰해보자.

2) 고마리란 어떤 식물인가?
고마리(학명: Persicaria thunbergii)는 마디풀과(Polygonaceae)에 속하는 한해살이 또는 이년생 초본이다. 줄기는 길게 뻗어 올라가며, 여름부터 가을에 걸쳐 분홍색 혹은 자줏빛 꽃이 줄기 끝에 밀집하여 피어난다. 보통 키는 30cm에서 1m까지 자라며, 물가 주변이나 습지, 논두렁, 하천변 등 습한 환경을 좋아해 한국 전역에서 매우 흔히 볼 수 있다. 일본, 중국, 러시아 극동부 등 동아시아 전역에 분포하지만, 특히 한국에서는 전통적으로 다양한 방식으로 활용되어 왔다.

고마리는 외형적으로 비슷한 종이 많아 혼동되기 쉬우나, 잎의 모양이 길쭉하고 양끝이 좁으며, 잎의 표면에 흑갈색의 V자 무늬가 있는 경우가 많아 식별 포인트가 된다. 또한 꽃이 피는 시기(7~9월경)에 뿌리 근처에서 돋아나는 새순은 나물로 활용 가능하여, 전통적으로 봄철 채소 대용으로도 애용되었다.
3) 고마리의 식용 가치

고마리는 ‘나물’로도 손색이 없는 식물이다. 어린순은 끓는 물에 데쳐 쓴맛과 떫은맛을 제거한 뒤 나물로 무치거나, 국거리, 전골 재료로 활용할 수 있다. 특히 봄철 식탁에 오르던 고마리나물은 맛이 담백하고 질감이 부드러워, 다른 나물과 곁들여 먹기 좋다. 나물로 먹을 때는 데치기 전 충분히 물에 담가 아린 맛을 제거하는 것이 요령이다.

영양학적으로 고마리는 비타민 C, 칼륨, 플라보노이드 계열의 항산화 성분을 함유하고 있어 면역력 증진과 이뇨 작용에 긍정적인 역할을 한다. 또한 고마리에는 폴리페놀 성분이 풍부해 활성산소를 억제하고, 혈관 건강을 유지하는 데 도움을 줄 수 있다. 민간에서는 ‘열을 내려주는 채소’로 알려져 있으며, 더위나 염증으로 몸에 열이 많을 때 고마리 나물을 자주 먹었다는 기록도 있다.

4) 약용으로서의 고마리: 전통과 현대의 만남
고마리는 한방에서도 약재로 사용되어 왔다. 고문헌에 따르면 고마리는 해열, 소염, 이뇨, 해독 작용이 있어 염증성 질환이나 감염성 질환에 자주 쓰였으며, 특히 요로 감염이나 방광염 증상 완화에 효과적인 민간요법으로 활용되었다. 실제로 고마리의 지상부(줄기와 잎)에는 쿠에르세틴(quercetin), 캠페롤(kaempferol), 루틴(rutin) 등의 플라보노이드 성분이 다량 함유되어 있어 항염증 및 항산화 작용이 뛰어나다는 것이 밝혀졌다.

특히 루틴은 모세혈관을 강화하고 혈류를 개선하는 효과가 있어 고혈압, 심혈관 질환 예방에 긍정적인 영향을 줄 수 있다. 일본에서는 고마리 유사종을 활용해 건강차를 만들거나 건강보조제로 가공하는 시도도 활발하다. 한국에서도 최근에는 야생초차로 고마리차가 주목받고 있으며, 가공 과정에서 떫은맛을 줄이고 향미를 살리는 기술이 개발되고 있다.

또한 고마리 추출물은 일부 피부 질환 치료에 응용되기도 한다. 실험적 연구에 따르면 고마리 추출물이 피부의 염증 반응을 억제하고 상처 치유를 촉진하는 작용을 하며, 피부 알러지나 가벼운 습진에 효과적일 수 있다는 보고도 있다. 이는 고마리의 항산화 물질이 피부 세포의 스트레스를 줄이고, 재생을 돕는 방향으로 작용하기 때문이다.

5) 생태계에서의 고마리 역할
고마리는 단순히 사람에게만 유익한 식물이 아니다. 자연 생태계 속에서도 매우 중요한 역할을 맡고 있다. 고마리는 빠른 성장 속도와 강한 생존력 덕분에 하천변이나 습지에서 토양 유실을 막는 데 탁월한 효과를 발휘한다. 뿌리가 물가를 따라 깊이 뻗어나가 토양을 안정화시키며, 집중호우로 인한 침식이나 붕괴를 예방하는 데 기여한다. 특히 산사태 위험 지역이나 하천 정비 사업에서 고마리와 같은 자생 식물의 복원력이 주목받고 있다.

또한 고마리 꽃은 꿀벌, 나비, 각종 곤충들의 훌륭한 밀원이다. 여름부터 가을까지 지속적으로 꽃을 피워 곤충들에게 중요한 식량을 제공하며, 이로 인해 고마리는 생물 다양성 유지에 이바지한다. 꿀벌들이 고마리에서 채밀한 꿀은 독특한 향과 맛을 가진 ‘야생초꿀’의 원료가 되기도 한다. 최근 꿀벌 개체수 감소가 전 세계적인 이슈로 떠오른 가운데, 이러한 자생식물의 생태적 가치는 더욱 부각되고 있다.

6) 고마리의 문화적·민속적 의미

고마리는 ‘고마운 풀’이라는 이름답게 예로부터 민중의 생활과 밀접하게 연결되어 있었다. 특히 농촌 지역에서는 논두렁이나 냇가에서 고마리를 캐서 가족의 식사 거리를 마련하거나, 감기나 몸살 시 약초차처럼 달여 마시기도 했다. 어떤 지역에서는 고마리 꽃이 피는 시점을 기준으로 벼농사의 중간 점검을 하기도 했는데, 이는 고마리가 대체로 여름 장마 이후에 꽃을 피우기 때문이다. 이러한 생활 속 경험은 과학적으로도 일조량, 강수량, 기온 변화에 따라 자생식물의 개화 시기가 변동하는 생태학적 현상과 일맥상통한다.

또한 고마리는 일부 지역의 전래동요나 설화에 등장할 만큼, 어린 시절의 기억과 풍경 속에 뿌리내려 있는 존재다. 전남이나 경북 일대에서는 고마리꽃을 이용해 간단한 꽃장식이나 꽃물들이기를 하기도 했으며, 이는 지역 민속놀이 또는 여성들의 전통 생활기술로 계승되어 왔다.
7) 고마리, 잡초에서 자원으로

한때는 ‘잡초’라는 이름으로 불리며 제거 대상이 되던 고마리는 오늘날 ‘생태적 가치’와 ‘약용 가능성’을 인정받으며 재조명되고 있다. 잡초라는 표현은 인간의 시각에서 벗어난, 가치가 없는 식물이라는 편견이 반영된 용어다. 하지만 고마리는 이런 편견을 극복하고, 다양한 분야에서 응용 가능한 ‘유용 식물’로 전환되고 있다.

기후 위기, 생물 다양성 감소, 생태적 지속가능성이 중요시되는 지금, 고마리와 같은 자생 식물의 가치는 단순한 식재료를 넘어 환경과 생명, 문화 전반을 연결하는 매개체로 평가받아야 한다. 고마리를 단순히 ‘냇가 잡초’로 보던 시선에서 벗어나, 우리의 식탁, 약재함, 생태계에 얼마나 소중한 존재인지 되새겨보는 일은 작지만 의미 있는 변화가 될 수 있다.
8) 결론적으로 고마리는 한국의 자연환경에 적응하며 사람들과 오랜 시간 공존해온 고마운 풀이다. 식용, 약용, 생태적, 문화적 가치까지 아우르는 이 작고 흔한 식물은 오늘날에도 여전히 우리 곁에서 다정하게 숨 쉬고 있다. 매일 스쳐 지나던 냇가의 풀 한 포기가, 알고 보면 당신에게 가장 가까운 건강의 시작일지도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