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의 고정밀 지도 반출 제한 조치는 디지털 무역 장벽이다

현대 사회는 디지털 경제의 급속한 확장과 함께 국가 간 데이터 흐름의 중요성이 점차 커지고 있다. 특히 인공지능, 자율주행, 드론, 로봇 등 4차 산업혁명 기술은 고정밀 지리정보를 기반으로 한 공간 데이터를 필요로 하며, 이러한 기술의 국제적 협업과 서비스 확대를 위해서는 국가 간 지도 데이터의 자유로운 이동이 필수적이다. 그러나 한국은 현행 법률에 따라 일정 수준 이상의 고정밀 지도를 국외로 반출하는 것을 엄격히 제한하고 있으며, 이는 국제 사회로부터 '디지털 무역 장벽'이라는 비판을 받고 있다. 이 글에서는 한국의 고정밀 지도 반출 제한 조치가 디지털 무역 장벽이라는 주장을 중심으로 그 근거와 문제점, 그리고 개선 방향에 대해 살펴보고자 한다.
1. 고정밀 지도란 무엇인가

고정밀 지도는 단순한 도로나 건물의 위치만을 담은 일반 지도와 달리, 수십 센티미터 단위로 정밀하게 측정된 공간 데이터를 포함하고 있다. 이러한 지도에는 도로의 기울기, 곡률, 차선 정보, 신호등, 표지판, 건물 윤곽 등 다양한 요소들이 포함되며, 자율주행차나 드론 운항 시스템, 증강현실 서비스 등 정밀한 위치 인식이 필요한 기술의 기반이 된다. 특히 자율주행 기술에서는 차량이 고속으로 주행하면서 실시간으로 주변 환경을 인식하고 대응해야 하기 때문에, 고정밀 지도는 필수적인 인프라 중 하나다.

2. 한국의 고정밀 지도 반출 제한 현황
한국은 「공간정보의 구축 및 관리 등에 관한 법률」에 따라 일정 해상도 이상의 공간정보를 국외로 반출하려면 국가의 허가를 받아야 한다. 이 법률은 국가 안보, 특히 군사시설 보호를 이유로 고정밀 지도의 해외 유출을 제한하고 있으며, 구체적으로는 해상도 1:5000 이하의 지도, 또는 위치 정확도가 1미터 이내인 지도는 국외로 반출할 수 없도록 규정되어 있다. 이에 따라 구글, 애플 등 외국계 기업은 한국에서 제공하는 지도 서비스에서 정밀한 내비게이션 기능이나 스트리트 뷰 서비스를 제공하지 못하고 있다. 예컨대, 구글은 한국 내에서 자율주행차 서비스를 제공하려 해도 고정밀 지도 데이터를 확보할 수 없어 난항을 겪고 있다.

3. 디지털 무역 장벽으로서의 문제점
디지털 무역 장벽(digital trade barrier)이란, 물리적 제품이 아닌 데이터와 디지털 서비스의 국경 간 이동을 제한하는 조치를 의미한다. 한국의 고정밀 지도 반출 제한은 바로 이러한 디지털 무역 장벽의 전형적인 사례로, 다음과 같은 문제를 야기한다.
(1) 글로벌 기업의 시장 진입 제한

글로벌 기업들은 자율주행, 드론, 로보틱스 등의 기술을 상용화하거나 테스트하기 위해 고정밀 지도 데이터를 필요로 한다. 그러나 한국에서 이러한 데이터를 반출할 수 없기 때문에, 한국 시장에 진입하거나 서비스를 출시하는 데 제약을 받는다. 이는 결국 국내 소비자들이 글로벌 기업의 고품질 서비스를 이용할 수 없게 되는 결과로 이어진다.
(2) 국내 기업의 역차별

고정밀 지도의 반출이 금지되어 있는 반면, 국내 기업은 해당 데이터를 사용할 수 있다. 그러나 글로벌 플랫폼과 협업하거나 해외 시장에 진출하려는 국내 스타트업이나 중소기업은 이 데이터를 자유롭게 활용하지 못한다. 예를 들어, 국내의 자율주행 기술 스타트업이 해외 기업과 협업해 테스트를 진행하고자 할 때, 지도 데이터를 반출할 수 없어 협력이 무산되는 사례가 있다. 이는 국내 기업에게도 사실상 불리한 규제로 작용한다.
(3) 기술 발전 저해 및 혁신 둔화

지도 데이터는 AI 학습, 도시 계획, 물류 최적화 등 다양한 분야에서 활용되는 핵심 자산이다. 이러한 데이터를 국제적으로 자유롭게 공유하고 활용할 수 없을 경우, 기술 발전이 제한되고 혁신이 둔화된다. 특히 최근에는 AI 기술의 학습에 다양한 공간 데이터를 활용하는데, 지도 반출 제한은 국제 협력 기반의 기술 개발을 저해하는 요인이 된다.

4. 정부의 입장과 보안 우려

정부는 고정밀 지도 반출 제한의 이유로 국가 안보와 군사 기밀 보호를 내세우고 있다. 한국은 국토 전체에 군사시설이 밀집되어 있으며, 위성지도나 스트리트 뷰로도 군사시설이 노출되는 우려가 있다는 것이다. 또한 지도 데이터가 해외로 반출되면 해당 국가의 서버에 저장되어 사이버 공격의 위험에 노출될 수 있으며, 이는 국가 안보에 직결된다는 주장이다.
이러한 입장은 일정 부분 타당성이 있다. 그러나 반론도 존재한다. 먼저, 외국 기업들이 요청하는 지도 데이터는 군사기밀에 해당하는 구역을 이미 제외하거나 모자이크 처리한 상태에서 제공될 수 있다. 실제로 많은 국가에서는 민감 지역을 블라인드 처리한 후 고정밀 지도 데이터를 합법적으로 제공하고 있으며, 이를 통해 안보와 산업 발전의 균형을 꾀하고 있다.
5. 국제 기준과 비교

한국 외에도 일부 국가들은 고정밀 지도 반출에 제한을 두고 있지만, 대부분의 선진국은 자국 기업과 외국 기업에 동등한 수준의 데이터 접근성을 보장하고 있다. 예를 들어, 미국과 유럽연합(EU)은 고정밀 지도 데이터를 기반으로 한 다양한 상업 서비스를 허용하며, 데이터 보호는 기술적·법적 조치를 통해 해결하고 있다. 일본 역시 초기에는 제한적인 반출 규정을 뒀으나, 자율주행 산업 육성을 위해 고정밀 지도 데이터의 반출을 허용하는 방향으로 전환했다.

한국이 계속해서 현재의 규제를 유지한다면, 글로벌 기업의 한국 내 투자 기피, 기술 협력 저조, 국내 기업의 해외 진출 난항 등 다양한 부작용이 우려된다. 이는 장기적으로 디지털 경제에서 한국의 경쟁력을 약화시키는 결과를 낳을 수 있다.
6. 개선 방향
고정밀 지도 반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다음과 같은 방향으로 정책 개선이 필요하다.
(1) 민감 구역 제외 조건부 반출 허용


지도 데이터에서 군사시설 등 민감 정보를 제거하거나 비식별화한 후 반출을 허용하는 조건부 허가 제도를 마련할 수 있다. 이를 통해 안보 우려를 줄이면서도 디지털 무역의 장벽을 완화할 수 있다.
(2) 국제 표준 기반의 규제 정비
국제사회와의 협의를 통해 지도 데이터 관련 규제의 표준을 마련하고, 이에 부합하도록 국내 법령을 개정해야 한다. 글로벌 기술 기업과의 협력을 통해 안전하고 신뢰성 있는 데이터 처리 방식을 공유하고 반영해야 한다.
(3) 공정한 데이터 접근성 보장
국내외 기업이 공정하게 공간정보에 접근할 수 있도록 법적 기반을 마련하고, 데이터 접근의 투명성과 형평성을 확보해야 한다. 이는 국가 안보를 훼손하지 않으면서도 산업 경쟁력을 높이는 방향이 될 수 있다.
결론


고정밀 지도 반출 제한은 국가 안보를 위한 조치라는 점에서 일정 부분 정당성이 있다. 그러나 그로 인해 한국은 디지털 무역 시대에 역행하는 규제를 유지하며 글로벌 기술 협력과 산업 발전의 기회를 스스로 차단하고 있다. 세계는 빠르게 개방과 협력을 중심으로 데이터 기반 경제로 이동하고 있으며, 한국 또한 이에 맞춰 규제를 재정비해야 할 시점이다. 고정밀 지도의 제한적이고 유연한 활용 방안을 마련함으로써 안보와 산업 간의 균형을 도모하고, 한국의 디지털 경쟁력을 세계 무대에서 지속적으로 강화해 나가야 한다. 이는 결국 한국이 데이터 경제의 중심 국가로 성장하기 위한 필수 조건일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