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이 무너지고 나면 이상한 일이 생긴다.
무너지는 순간에는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다.
내일도 보이지 않고, 돈도 보이지 않고, 사람도 보이지 않는다.
그저 오늘 하루를 넘기는 것조차 버겁다.
나도 그랬다.
한때는 내가 왜 이렇게까지 되었는지 생각하는 것조차 싫었다.
주식으로 돈을 잃었고, 돈이 사라지면서 삶도 같이 무너졌다.
공황장애가 심해졌고 사람을 만나는 것도 두려워졌다.
그리고 어느 순간에는 사는 것 자체가 너무 버거워졌다.
그때의 이야기를 자세히 꺼내고 싶지는 않다.
다만 한 가지는 분명하다.
나는 그때 죽지 않았다.
살아남았다.
그런데 살아남고 나니 더 이상한 문제가 기다리고 있었다.
몸은 살아 있는데,
내 삶은 어디서부터 다시 시작해야 할지 알 수 없었다.
🏥 경산에서 요양병원으로
경산에서의 시간을 지나 지금의 요양병원으로 옮겨왔을 때도 나는 정상적인 상태가 아니었다.
몸은 제대로 움직이지 않았고, 휠체어를 타고 다녀야 했다.
발목은 안쪽으로 휘어 있었고, 지금도 발바닥이 바닥에 제대로 닿지 않는 불편함이 남아 있다.
처음에는 몸 하나 건사하는 것도 쉽지 않았다.
그런데 시간이 지나면서 아주 조금씩 달라지기 시작했다.
2층 재활실까지 휠체어를 타고 갈 수 있게 되었다.

재활을 받고 병실로 돌아오고, 또 다음 날이면 다시 재활실로 올라갔다.
별것 아닌 것 같지만 그때의 나에게는 그것이 꽤 큰 변화였다.
몸이 조금씩 움직이기 시작하니까 생각도 조금씩 돌아오기 시작했다.
그동안 닫아두었던 생각들이 하나씩 다시 올라왔다.
내가 어떻게 여기까지 왔는지.
돈은 어떻게 된 것인지.
앞으로 나는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
그리고 어느 날부터인가 아주 현실적인 문제가 머리를 떠나지 않았다.
빚이었다.
📺 TV에서 본 한 줄
어느 날 병실에서 TV를 보고 있었다.
그때 우연히 고려신용정보 광고가 나왔다.
광고의 문구가 눈에 들어왔다.

“신용을 돌게 합니다.”
그냥 광고였다.
다른 사람에게는 아무 의미도 없는 문구였을 것이다.
그런데 이상하게 그날은 그 말이 내 머리에 남았다.
신용.
빚.
채무.
돈.
나는 한동안 TV 화면을 바라봤다.
그리고 처음으로 이런 생각을 했다.
“그럼 내 빚은 어떻게 되는 거지?”
그게 시작이었다.
그전까지 나는 빚을 해결할 방법을 생각할 여유조차 없었다.
돈을 잃었다는 사실만 알고 있었다.
주식으로 돈을 날렸다는 것도 알고 있었다.
하지만 그다음에 무엇을 해야 하는지는 몰랐다.
빚이라는 것은 그냥 평생 따라다니는 것이라고 생각했던 것 같다.
그런데 그날부터 아주 조금 다른 생각이 들기 시작했다.
혹시 방법이 있는 것은 아닐까.
♿ 몸을 움직이면서 과거를 다시 보기 시작했다
재활실에 올라가는 시간이 조금씩 늘어나면서 나는 생각할 시간이 많아졌다.
병원이라는 곳은 이상한 공간이다.
시간은 느리게 가는데 생각은 오히려 많아진다.
아침이 오고,
밥을 먹고,
약을 먹고,
재활실에 가고,
다시 병실로 돌아온다.
그리고 남는 시간에는 생각한다.
나는 왜 이렇게 되었을까.
내 돈은 어디로 갔을까.
동생에게 들었던 빚의 규모는 대체 얼마였을까.
처음에는 그냥 막연했다.
“나는 주식으로 엄청난 돈을 날렸다.”
그렇게만 생각했다.
그런데 나중에 통장과 거래내역을 하나씩 다시 들여다보기 시작하면서 생각이 조금 달라졌다.
동생에게 갚았던 돈.
주식에 직접 넣었던 돈.
퇴직금.
강의 등을 하면서 모았던 돈.
돈은 한꺼번에 사라진 것이 아니었다.
여러 돈이 여러 경로를 거쳐 들어오고 나가면서 어느 순간 내가 감당할 수 없는 상황이 되어 있었다.
그걸 처음에는 몰랐다.
아니, 정확히 말하면 알고 싶지 않았던 것인지도 모른다.
💻 파산이라는 단어를 처음부터 알고 있었던 것은 아니다
지금 생각하면 조금 우습다.
나는 나중에 파산과 면책을 신청하고, 법원에 가고, 여러 절차를 거치게 된다.
그런데 처음부터 그런 걸 알고 있었던 것은 아니다.
그저 병원 침대에 누워서,
“내 빚은 어떻게 되는 거지?”
라고 생각한 것에서 시작했다.
그 질문 하나가 아주 조금씩 나를 움직였다.
인터넷을 찾아보고 싶었다.
누군가에게 물어보고 싶었다.
내가 다시 살아갈 수 있는 방법이 있는지 알고 싶었다.
하지만 당시에는 컴퓨터도 없었다.
병원에 누워 있는 내가 할 수 있는 일에는 한계가 있었다.
그런데 이때부터 내 인생에서 아주 작은 변화들이 하나씩 생기기 시작했다.
🛏️ 간병인 없는 병실로 옮겨가면서
그 변화 가운데 하나가 나중에 생각해보면 꽤 결정적이었다.
간병인 병실에서 간병인 없는 병실로 옮겨간 것.
그렇게 병실이 바뀌고, 기초생활수급비를 받을 수 있게 되면서 아주 조금씩 돈을 모을 수 있었다.
그리고 나는 그 돈을 모아 노트북 한 대를 마련했다.

지금 생각하면 별것 아닌 노트북 한 대였다.
하지만 그때의 나에게는 달랐다.
그 노트북은 단순한 컴퓨터가 아니었다.
내가 다시 세상과 연결될 수 있는 도구였다.
그때부터 나는 직접 찾아보기 시작했다.
파산이 무엇인지.
면책이 무엇인지.
나 같은 사람도 신청할 수 있는지.
어디에 가야 하는지.
무엇을 준비해야 하는지.
그리고 그 과정에서 법률구조공단이라는 곳을 알게 되었다.
나는 처음으로 병원 밖의 세상에 다시 질문을 던졌다.
“저도 다시 시작할 수 있습니까?”
그 질문의 답을 찾기 위해 처음 찾아간 곳이 법률구조공단이었다.

⚖️ 그런데 첫 번째 문턱에서 막혔다
처음 법률구조공단에 찾아갔을 때 나는 빚이 생긴 경위를 설명했다.
그런데 내가 주식으로 손실을 봤다는 이야기를 먼저 꺼냈고, 그 말을 들은 상담 과정에서 도움을 받기 어렵다는 답을 들었다.
한 번이 아니었다.
두 번이나 같은 벽에 부딪혔다.
그때는 정말 막막했다.
내가 빚을 해결할 수 있는 방법을 찾았다고 생각했는데, 시작부터 막힌 것이다.
하지만 지금 돌아보면 이상하게도 그게 마지막은 아니었다.
오히려 그때부터 나는 내 사건을 조금씩 더 깊이 들여다보기 시작했다.
내가 정확히 얼마를 잃었는지.
돈은 어디에서 왔는지.
어디로 흘러갔는지.
내가 알고 있는 것과 실제 기록이 어떻게 다른지.
그런 것들을 하나씩 다시 바라보게 됐다.
🤖 그리고 내 앞에 두 개의 AI가 나타났다
그때까지 나는 내가 이런 일을 직접 할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하지 않았다.
법률용어도 어려웠고, 절차도 복잡했다.
그런데 노트북이 생기면서 상황이 조금 달라졌다.
검색할 수 있었고, 모르는 것을 물어볼 수도 있었다.
그리고 그 과정에서 ChatGPT와 제미나이를 만나게 됐다.
지금 생각하면 그때의 AI는 지금처럼 완벽하지 않았다.
나 역시 파산과 면책의 관계를 제대로 알지 못했다.
AI에게 물어보고, 자료를 찾아보고, 다시 질문하고, 또 찾아봤다.
그러다 어느 순간 이런 생각이 들었다.
“나 혼자 한번 해볼까?”
처음부터 자신이 있었던 것은 아니다.
오히려 반대였다.
잘 모르니까 무서웠다.
틀릴까 봐 걱정됐다.
하지만 누군가가 대신 해결해줄 상황도 아니었다.
그래서 결국 시작했다.

내 빚을 내가 직접 정리해보기로 했다.
물론 처음부터 잘한 것은 아니었다.
파산과 면책이 어떤 관계인지도 제대로 몰랐고, 결국 처음에는 그것조차 잘못 이해해 신청하는 실수도 했다.
그리고 그 과정에서 변호사에게 크게 지적을 받기도 했다.
하지만 그것도 나중에 생각해보면 중요한 일이었다.
나는 처음부터 잘해서 여기까지 온 것이 아니었다.
틀리면서 배웠고, 다시 고치면서 앞으로 나아갔다.
🌱 빚을 해결한다는 것은 어쩌면 삶을 다시 정리하는 일이었다
돌이켜보면 내가 처음부터 원했던 것은 단순히 빚을 없애는 것이 아니었던 것 같다.
그때의 나는 돈을 잃은 사람이었고, 몸도 무너져 있었고, 삶의 방향도 잃어버린 상태였다.
그런데 어느 날 TV에서 본 짧은 광고 한 줄이 이상하게 마음에 남았다.
“신용을 돌게 합니다.”
그리고 나는 처음으로 생각했다.
“그럼 내 빚은 어떻게 되는 거지?”
그 질문이 노트북을 켜게 만들었고,
노트북은 나를 다시 세상과 연결했고,
그 연결은 법률구조공단으로 이어졌고,
두 번의 거절을 지나 결국 “나 혼자 해보자”는 생각까지 데려갔다.
그때는 몰랐다.
그 작은 질문 하나가 앞으로 몇 년 동안 내 삶을 다시 정리하는 긴 과정의 시작이 될 줄은.
살아난 뒤 처음으로 내가 내 삶을 다시 들여다보기 시작한 순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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