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하세요, 김덕원입니다.
이 블로그에는 제가 직접 겪은 일을 씁니다. 18년의 사제 생활을 마친 뒤 공황장애와 파산, 요양병원 생활을 지나며, 무너진 자리에서 다시 살아가는 과정을 있는 그대로 기록하고 있습니다.
그 시간을 지나며 가장 오래 붙들고 있던 질문은 "왜 우리는 지치고, 어떻게 회복되는가"였습니다. 그래서 몸과 마음, 돈과 제도에 관한 이야기도 함께 씁니다. 직접 알아보고 확인한 내용, 그리고 공개된 자료를 공부하며 정리한 내용입니다.👉 [김덕원의 삶과 개인파산·면책 이야기 전체보기]
모든 글은 개인 경험과 공개 자료에 바탕을 두며, 의학·법률 판단이나 전문가의 진단·치료를 대신하지 않습니다.
비슷한 시간을 지나는 분께 작은 참고가 되길 바랍니다.

서론
모든 것이 무너졌던 시절이 있었습니다. 당시의 저는 더 이상 누군가에게 도움을 받을 가치조차 없다고 생각했습니다. 사제복을 벗었고, 통장 잔고는 바닥을 쳤으며, 세상과의 연결고리는 끊어진 것만 같았습니다. 그때 제게는 100만 원이라는 돈보다 더 큰, 사람의 '선의'가 찾아왔습니다.
1. 아무것도 줄 수 없는 사람이 되었을 때

파산 후 요양원에 들어갔을 때, 저는 제가 '도움받을 자격이 없는 사람'이라고 생각했습니다.
18년 동안 남을 돕기만 했던 사람이,
정작 제 인생 하나 건사하지 못해 남의 손을 빌려야 한다는 사실이 수치스러웠습니다.
그때는 누군가 건네는 호의조차 저에게는 가시처럼 느껴졌습니다.
'내가 이렇게 비참한 꼴을 보이고 있구나'라는 생각에 숨고만 싶었습니다.
2. 예고 없이 찾아온 도움

어느 날, 예상하지 못한 송금이 들어왔습니다.
100만 원.
당시의 저에게는 너무 큰돈이었습니다.
하지만 지금 돌아보면 그 돈의 액수보다 더 크게 기억나는 것이 있습니다.
누군가가 아직도 저를 포기하지 않았다는 사실이었습니다.
그 돈이 들어오던 날이면 저는 한동안 통장 화면을 바라보곤 했습니다.
솔직히 말하면 생활비가 부족했습니다.
병원비가 걱정됐고, 다음 달을 어떻게 버틸지 막막했습니다.
하지만 이상하게도 그 돈의 액수보다 더 크게 다가온 것은 다른 감정이었습니다.
"아직 나를 포기하지 않은 사람이 있구나."
그 사실이 저를 울게 만들었습니다.
사람은 돈이 없어서만 무너지는 것이 아닙니다. 자신이 아무 의미 없는 존재라고 믿게 될 때 무너집니다.
그 100만 원은 생활비이기도 했지만, 동시에 제 존재 가치에 대한 증명서이기도 했습니다.
3. 가장 가난할 때 보이는 것들

사제로서 살 때는 미처 몰랐습니다.
제가 그토록 사람들을 위해 헌신했을 때는 보이지 않던 것들이,
제가 가장 가난해지고 무력해지자 비로소 보이기 시작했습니다.
그 100만 원은 저에게 '인간의 선의'를 다시 가르쳐주었습니다.
사람은 타인의 고통을 이용할 수도 있지만,
반대로 타인의 아픔에 기꺼이 자신의 것을 내어주는 존재이기도 하다는 것을요. 벼랑 끝에 서 있던 저는,
그 사람의 선의 덕분에 비로소 '사람이 사람을 살릴 수 있다'는 사실을 온몸으로 체득했습니다.
4. 지금도 떠올리는 그날의 기록

지금도 가끔 그날을 떠올립니다.
통장에 찍혀 있던 숫자 때문이 아닙니다. 누
군가가 나를 여전히 가치 있는 사람으로 바라봐 주었다는 사실 때문입니다.
삶이 무너졌다고 생각했던 그 시절, 저는 돈보다 더 큰 선물을 받았습니다.
사람에 대한 믿음이었습니다.
5. 이제는 제가 선의의 통로가 되려 합니다

그 돈을 받으며 저는 펑펑 울었습니다.
그리고 결심했습니다.
언젠가 나도 이 선의를 누군가에게 돌려주겠노라고.
지금 저는 다시 일어나 스스로의 힘으로 살아가고 있습니다
. 비록 거창한 부자는 아닐지라도, 저는 그날 제가 받았던 선의를 기억합니다.
이제 제 블로그를 통해 나누는 저의 회복 기록들도, 누군가에게는
그날 제가 받았던 100만 원 같은 '작은 선의'가 되었으면 합니다.
우리는 서로에게 빚을 지고 삽니다. 그
빚은 돈이 아니라, 누군가 절망 속에서 내밀었던 따뜻한 손길로 갚아나가는 것이겠지요.
6. 당신에게도 보이지 않는 손이 있습니다

지금 고통 속에 있는 당신도 언젠가 알게 될 것입니다. 당
신이 아무것도 아니라고 생각하는 그 순간에도, 당신을 위해 기도하거나 마음을 써주는 누군가가 분명히 존재한다는 것을요.
세상은 차갑지만, 동시에 아주 뜨겁기도 합니다.
제가 그날 100만 원보다 더 큰 선물을 받았듯, 당신에게도 언젠가 그런 손길이 찾아올지 모릅니다.
오늘 하루, 당신이 그 따뜻한 선의를 잠시라도 기억하며 조금 더 버텨낼 수 있기를 진심으로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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② [사람 얼굴이 무서워졌다… 공황장애가 내 삶을 멈춰 세운 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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