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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선과 관점 (Insight) 세상 읽기 : 담론과 생각

처음 워커를 잡고 복도를 걸은 날

by honeypig66 2026. 10. 8.

2024년 11월쯤이었을 겁니다.

그때 저는 침대에서 벌떡 일어서는 연습을 계속하고 있었습니다.

 

누워 있다가 몸을 일으키고, 두 발을 바닥에 딛고, 일어서는 것.

 

지금 생각하면 아주 간단한 동작인데 그때의 저에게는 그것부터 연습해야 했습니다.

 

몇 번이고 일어났다가 다시 앉았습니다.

또 일어나고, 또 앉았습니다.

걷는 것은 그다음 문제였습니다.

일단 제 몸을 제 힘으로 세울 수 있어야 했습니다.

 

그 무렵 2층 재활실에도 다니고 있었습니다.

지금 당시를 기억하는 재활실 간호사에게 물어보니, 그때 저는 재활실에서는 꽤 활달한 편이었다고 합니다.

 

저는 그 시절의 제가 그렇게 활달했는지 잘 모르겠습니다.

그런데 이야기를 들어보니 재활실에서는 주로 기울기와 기립기를 사용했다고 합니다.

그걸 거의 6~7개월 정도 타다가 나중에는 자전거로 넘어갔다고 합니다.

 

지금 생각해 보면 그때는 제가 생각했던 것보다 꽤 열심히 몸을 움직이고 있었던 모양입니다.

꽤 오랜 시간을 보냈던 기울기-사진: 본인 직접촬영
 

그런데 병실에서는 조금 달랐습니다.

워커를 사용할 때는 낙상 위험 때문에 처음에는 병실 안에서만 사용하기로 했다고 합니다.

 

그런데 제가 그 말을 아주 잘 지켰던 것 같지는 않습니다.

나중에 수간호사와 재활실에 확인해 보니, 제가 어느 날부터 워커를 끌고 병실 밖으로 나와

복도를 돌아다니기 시작했다는 기록이 남아 있었습니다.

 

지금 생각하면 웃깁니다.

병실 안에서만 사용하라고 했는데 그냥 나와버린 겁니다.

아마 그때는 걷는 것이 너무 좋았던 것 같습니다.


제가 지내던 병실은 ㄷ자형 구조였습니다.

정중앙에 간호사실이 있고, 그 맞은편에는 엘리베이터와 계단이 있었습니다.

간호사실에서 오른쪽으로 가면 801호부터 806호까지 이어지는 복도가 나왔습니다.

주로 여자 환자들이 있는 쪽이었습니다.

왼쪽으로 가면 807호부터 809호까지 이어졌습니다.

남자 환자들이 있는 쪽이었고, 거의 모두 간병인이 있었습니다.

당시에는 809호에 있었습니다..(현재의 제 방은 807호이고,

몇 차례 방을 옮겨서 다시 올라왔습니다. 현재는 저희방만 간병인이 없었습니다.)

 

제가 워커를 잡고 돌아다닐 수 있었던 곳은 그 복도였습니다.

801호에서 출발해서 809호 쪽까지 갔다가 다시 돌아왔습니다.

지금 생각하면 아주 짧은 거리입니다.

 

그런데 그때는 그 길을 혼자 걸어갔다가 다시 돌아올 수 있다는 것이 좋았습니다.

807호에서 809호까지 워커를 잡고 오가던 병동 복도 — 사진: 직접 촬영

처음에는 누가 옆에서 붙잡아주었을 거라고 생각할 수도 있습니다.

 

그런데 거의 혼자 걸었다고 합니다.

누군가가 제 몸을 붙잡고 끌어준 것이 아니었습니다.

워커를 잡고 제가 움직였습니다.

물론 간병인이나 간호사들의 시선에서 완전히 자유로울 수는 없었습니다.

낙상할 수도 있으니까요.

 

그래도 제가 기억하는 그 시절의 저는

혼자 걸었습니다.

 

그리고 그때 마음속으로 이런 생각을 했던 것 같습니다.

‘나도 걸을 수 있구나.’

그 말이 참 좋았습니다.


807호 쪽 복도의 끝에는 휴게실이 있었습니다.

반대편 끄트머리에는 쓰레기를 모아두는 공간이 있었습니다.

냄새가 나는 곳이었습니다.

 

그런데 그 옆에 아주 작은 공간 하나가 있었습니다.

저는 그곳까지 찾아냈습니다.

워커를 입구에 세워두고 그 안으로 들어갔습니다.

그리고 거기서 다리 찢기를 했습니다.

 

지금 생각하면 참 별걸 다 했습니다. ㅎㅎ

복도를 걷다가,

워커를 세워놓고,

좁은 공간에 들어가서 다리를 벌리고 있었습니다.

그때는 그것도 운동이라고 생각했던 모양입니다.

워커를 입구에 세워두고 혼자 다리 찢기를 하던 병동 끝의 작은 공간 — 사진: 직접 촬영

 

그런데 어느 날 새벽,

나이트 근무를 하던 간호사가 그곳에 들어가지 말라고 했습니다.

아마 위험하기도 했을 겁니다.

굳이 그렇게 좁은 곳까지 들어가서 운동할 필요도 없었을 테고요.

 

그래서 그 뒤로는 그곳에 들어가지 못했습니다.

그런데 제가 그냥 순순히 물러났던 것 같지는 않습니다.

혼자 중얼중얼하면서 못 들어갔습니다.

지금 생각하면 그것도 웃깁니다.


돌이켜보면 그때의 저는 회복이라는 말을 잘 몰랐던 것 같습니다.

그저 몸을 움직였습니다.

침대에서 일어나는 연습을 하고,

재활실에서 기울기와 기립기를 타고,

워커를 잡고 병실 복도를 걸었습니다.

그러다 걷는 것이 조금 익숙해지니까 병실 밖으로 나왔습니다.

그리고 갈 수 있는 곳까지 가봤습니다.

디긋자 복도를 처음 801호부터 시작해서 807호까지 갔다가 돌아오고...

그러다 작은 공간을 발견하면 거기서 다리 찢기까지 했습니다.

 

지금 생각하면 참 단순한 일이었습니다.

그런데 그때의 저에게는 그 단순한 일들이 하나하나 중요했습니다.

 

걸을 수 있다는 것.

내 발로 움직일 수 있다는 것.

누군가가 밀어주는 휠체어가 아니라,

내가 워커를 잡고 내 몸을 움직일 수 있다는 것.

그게 좋았습니다.


지금도 저는 2층 재활실에 갑니다.

그때 사용했던 기구들을 다시 보니 조금 묘한 기분이 들었습니다.

기울기와 기립기를 거의 6~7개월이나 사용했다는 이야기도 오늘 다시 들었습니다.

 

그때는 하루하루가 그저 재활이었을 뿐인데,

지금 돌아보니 그 시간이 제 몸을 다시 세우는 시간이었던 것 같습니다.

병동에서 지금도 볼 수 있는 워커 — 사진: 직접 촬영

 

그리고 생각해 봅니다.

한때는 침대에서 일어나는 것부터 연습해야 했던 사람이,

어느 날에는 병실 안에서만 사용하라는 워커를 끌고 복도로 나가버렸습니다.

 

아마 그때의 저는

걷고 싶었던 것 같습니다.

더 정확하게 말하면,

걸을 수 있다는 것이 너무 좋아서 계속 걸어보고 싶었던 것 같습니다.

 

그래서 병실을 나왔고,

801호에서 807호까지 갔다가 돌아왔고,

복도 끝의 작은 공간까지 찾아냈습니다.

그리고 그곳에서 다리까지 찢었습니다.

참 웃기지만,

그게 그때 제가 살아가던 방식이었습니다.


지금도 가끔 그때를 생각합니다.

사람이 다시 살아가는 과정이 꼭 거창한 것은 아닌 것 같습니다.

어떤 날에는 침대에서 한 번 더 일어나는 것이고,

어떤 날에는 워커를 잡고 몇 걸음 더 걷는 것입니다.

 

그리고 어느 날에는

“나도 걸을 수 있구나.”

하는 생각 하나가 드는 것입니다.

 

그날 제가 걸었던 복도는 아주 짧았습니다.

801호에서 809호까지.

그게 전부였습니다.

 

하지만 그때의 저에게는 그 짧은 복도가

다시 움직이기 시작한 삶의 길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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