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미사가 끝나면 신자들은 하나둘 성당을 떠난다.
누군가는 집으로 돌아가 가족과 저녁을 먹고,
누군가는 친구를 만나러 가며, 누군가는 내일의 일상을 준비한다.
조금 전까지만 해도 기도 소리와 사람들의 온기로 가득했던 성당에는 서서히 고요가 내려앉는다.
나는 그곳에 남아 있었다.
18년 동안 신부로 살았다.
수많은 사람을 만났고,
그들의 이야기를 들었다.
누군가는 가족 문제로 괴로워했고,
누군가는 삶의 무게에 짓눌려 있었다.
때로는 말없이 손을 잡아 주었고,
때로는 함께 기도했으며,
어떤 날에는 그저 이야기가 끝날 때까지 묵묵히 앉아 있었다.
그들에게 성당은 마음을 내려놓을 수 있는 장소였을 것이다.
신부인 나는 그 마음을 받아 주는 사람이었다.
그런데 정작 내 마음이 허전해질 때면 어디로 가야 할지 알 수 없었다.
미사가 끝나고 신자들이 모두 돌아간 뒤,
텅 빈 성당에 혼자 남아 있으면 이상한 기분이 들었다.
사람들로 가득했던 공간이 비어 가는 것처럼 내 안에서도 무언가 빠져나가는 듯했다.
누군가와 이야기하고 싶었다.
별다른 목적 없이 마주 앉아 웃고 떠들고 싶었다.
신부라는 역할도, 누군가를 위로해야 한다는 책임도 잠시 내려놓고 싶었다.
그래서 술동무를 찾아 헤맸다.
지금 생각하면 술 한잔할 사람을 찾아다니는 하이에나 같았다는 표현이 어울릴지도 모르겠다.
누군가 곁에 있어 주기를 바랐고, 혼자 남겨진 마음을 어떻게든 달래고 싶었다.
술잔을 사이에 두고 사람들과 웃고 떠드는 동안에는 괜찮았다.
이야기가 이어지고 웃음소리가 오가면 적어도 그 순간만큼은 혼자가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그 시간이 끝나면 어김없이 공허함이 돌아왔다.
사람을 만났는데도 외로웠다.
이야기를 나누었는데도 마음은 나누지 못했다.
몇 시간 동안 누군가와 함께 있었지만, 정작 내 안의 허전함은 조금도 줄어들지 않았다.
그때는 그 이유를 제대로 알지 못했다.
어쩌면 술이 부족했던 것이 아니라,
내가 찾던 만남의 성격이 달랐던 것인지도 모르겠다.
1. 혼자 있는 외로움과 사람들 속의 외로움은 다르다
혼자 있을 때 외로운 것은 비교적 분명하다.
함께 밥을 먹을 사람도 없고, 오늘 있었던 일을 나눌 사람도 없으며,
기쁜 일이나 힘든 일을 이야기할 상대가 없을 때 우리는 외로움을 느낀다.
하지만 사람들 속에서 느끼는 외로움은 조금 다르다.
주변에 사람이 없는 것이 아니다.
연락할 친구도 있고,
함께 밥을 먹을 사람도 있으며,
모임에 나가면 이야기를 나눌 상대도 있다.
겉으로 보기에는 관계가 충분한 것처럼 보인다.
그런데도 마음 한구석이 비어 있다.
사람들과 웃고 있지만 진짜 내 기분은 숨기고 있다.
힘든 일이 있어도 분위기를 깨고 싶지 않아 괜찮다고 말한다.
누군가 내게 무슨 일이 있느냐고 물어도 쉽게 대답하지 못한다.
결국 만남은 있었지만 마음의 만남은 없었던 셈이다.
혼자 있는 외로움이 곁에 사람이 없다는 데서 비롯된다면,
사람들 사이의 외로움은 곁에 있는 사람들에게조차 나 자신을 충분히 드러내지 못한다는 데서 비롯될 수 있다.
물론 혼자 있는 시간이 언제나 외로운 것은 아니다.
혼자 있어도 편안하고 충만한 사람이 있다.
반대로 많은 사람과 어울리면서도 깊은 고립감을 느끼는 사람이 있다.
중요한 것은 주변에 사람이 몇 명이나 있느냐가 아니다.
내가 어떤 모습으로 그 사람들과 함께할 수 있느냐는 것이다.
2. 사람들을 위로하던 사람도 위로받고 싶다

신부로 살면서 나는 다른 사람의 이야기를 듣는 일에 익숙해졌다.
사람들은 자신의 약한 모습을 드러내기 위해 성당을 찾았다.
누군가에게 말하기 어려웠던 고민을 털어놓기도 했고,
가족에게조차 설명할 수 없는 마음을 조심스럽게 꺼내기도 했다.
그들의 이야기를 듣는 동안 나는 그들을 이해하려고 애썼다.
섣불리 판단하지 않으려 했고, 쉽게 답을 내놓기보다 그 마음을 헤아리려고 했다.
그러나 다른 사람의 마음을 들어주는 능력과 자신의 마음을
다른 사람에게 드러내는 능력은 반드시 같은 것이 아니다.
누군가를 위로할 수 있다고 해서 자신도 쉽게 위로받을 수 있는 것은 아니다.
다른 사람의 고통을 이해한다고 해서 자기 안의 고통까지 자연스럽게 설명할 수 있는 것도 아니다.
오히려 늘 누군가의 이야기를 들어주는 역할에 익숙해지면 정작 자신의 이야기를 꺼내는 일이 어색해질 수도 있다.
나는 신부였지만, 신부이기 전에 한 인간이었다.
때로는 나도 힘들었고, 누군가에게 기대고 싶었으며,
별다른 설명 없이 그저 내 편이 되어 주는 사람이 필요했다.
꼭 훌륭한 조언을 듣고 싶었던 것은 아니다. 내 문제를 해결해 달라는 것도 아니었다.
그저 오늘은 조금 지쳤다고,
나도 사람답게 살기가 쉽지 않다고,
그런 이야기를 편하게 할 수 있으면 좋았을 것이다.
하지만 사람은 상대가 자신에게 기대하는 역할을 의식한다.
신부에게는 신부다운 모습이,
상담자에게는 흔들리지 않는 모습이,
가족에게는 책임지는 모습이 기대되기도 한다.
그 기대가 반드시 잘못된 것은 아니다.
다만 그 역할이 너무 오래 이어지면
역할 뒤에 있는 한 인간의 마음은 어디에 놓아야 할지 모르게 된다.
누군가의 마음을 돌보는 사람에게도 자신의 마음을 돌볼 자리가 필요하다.
그 사실을 알면서도 나는 오랫동안 그 자리를 찾지 못했다.
3. 왜 술잔을 함께 기울여도 공허함은 사라지지 않았을까

술자리는 사람과 사람 사이의 거리를 좁혀 주는 것처럼 느껴질 때가 있다.
평소에는 하기 어려웠던 이야기도 술잔이 오가면 조금 쉽게 나온다.
무거운 고민을 잠시 잊고 웃을 수도 있고, 낯선 사람과도 자연스럽게 대화를 나눌 수 있다.
나 역시 그런 순간을 원했을 것이다.
누군가와 마주 앉아 이야기를 나누고, 별것 아닌 일에 웃고,
잠시라도 혼자라는 느낌에서 벗어나고 싶었다.
텅 빈 성당에서 시작된 허전함을 사람의 온기로 채우고 싶었다.
그러나 술자리에서 나누는 대화와 마음 깊은 곳을 나누는 일은 같지 않았다.
우리는 일상적인 이야기를 얼마든지 나눌 수 있다.
세상 돌아가는 이야기를 하고,
과거를 추억하며,
서로의 경험에 웃음을 보탤 수도 있다.
하지만 정작 자신이 가장 두려워하는 것,
누구에게도 보여 주고 싶지 않은 약한 모습,
말로 설명하기 어려운 공허함은 그대로 남겨 둘 수 있다.
함께 웃었다고 해서 반드시 서로를 이해한 것은 아니다.
오래 알고 지냈다고 해서 마음 깊은 곳까지 서로에게 열려 있는 것도 아니다.
술자리에서 느낀 즐거움이 거짓이었다는 뜻은 아니다.
그 순간의 웃음은 분명 실제였을 것이다.
다만 잠깐의 즐거움이 삶의 깊은 허기까지 해결해 주지는 못했던 것이다.
술이 외로움을 잠시 잊게 할 수는 있어도 외로움의 원인까지 해결해 주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술이 유일한 위안이 되기 시작하면, 술이 없는 시간의 공허함이 더욱 선명해질 수도 있다.
내가 원했던 것은 단지 술잔을 함께 들어 줄 사람이 아니었을지도 모른다.
술잔을 내려놓은 뒤에도 내 곁에 남아 있을 수 있는 관계,
내가 괜찮은 척하지 않아도 되는 관계,
내 이야기를 듣고 곧바로 판단하거나 해결하려 들지 않는 관계였을 것이다.
그런 관계가 내게 얼마나 있었는지, 나는 지금도 쉽게 대답하지 못한다.
4. 관계가 많아도 마음을 나눌 사람이 없다고 느끼는 이유
사람들은 흔히 인간관계가 넓으면 외롭지 않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연락하는 사람이 많고, 모임에 자주 나가며,
주변 사람들과 원만하게 지내면 외로울 이유가 없다고 여긴다.
그래서 사람들 속에서도 외롭다고 말하면 스스로 이상한 사람처럼 느껴질 때가 있다.
'이렇게 많은 사람을 알고 있는데 왜 나는 외로울까?'
그러나 관계의 숫자와 관계의 깊이는 별개의 문제다.
누군가와 자주 만날 수는 있지만 자신의 불안과 두려움을 이야기하지 못할 수 있다.
상대가 친절하다는 사실을 알면서도 내 약한 모습을 보이면 실망할까 봐 걱정할 수 있다.
관계를 잃고 싶지 않아서 오히려 진짜 마음을 감추기도 한다.
마음을 나눈다는 것은 단순히 말을 많이 한다는 뜻이 아니다.
내가 어떤 기분인지 솔직하게 말할 수 있고,
상대가 그 마음을 곧바로 평가하지 않을 것이라는 믿음이 있어야 한다.
상대방의 반응이 내 예상과 다를 수 있다는 사실도 감수해야 한다.
때로는 어색한 침묵을 견뎌야 하고,
내가 생각하는 나의 모습과 다른 사람에게 비치는 나의 모습 사이의 간격을 마주해야 한다.
그 과정은 생각보다 쉽지 않다.
그래서 우리는 사람들을 만나면서도 적당한 거리에서 자신을 감춘다.
웃을 때는 함께 웃지만 힘들 때는 혼자 견딘다.
다른 사람의 이야기를 잘 들어주면서도 자신의 이야기는 마지막까지 꺼내지 않는다.
그렇게 관계는 유지되지만 고립감은 남는다.
사람들 사이에서 외롭다는 것은 반드시 주변 사람들이 나를 외면한다는 뜻은 아니다.
때로는 서로에게 보여 주는 모습이 너무 제한적이어서,
가까이 있으면서도 서로의 진짜 마음에 닿지 못한다는 뜻일 수 있다.
5. 신부복을 벗은 뒤에도 외로움은 남아 있었다
시간이 흘렀다.
나는 더 이상 예전과 같은 자리에서 미사를 집전하지 않는다.
사람들을 만나고 헤어지는 방식도 달라졌고, 하루를 보내는 모습도 달라졌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그때 느꼈던 공허함은 완전히 사라지지 않았다.
성당을 떠나면 외로움도 함께 사라질 줄 알았던 것은 아니다.
하지만 삶의 환경이 달라지면 마음의 문제도 조금은 달라질 것이라고 생각했는지 모른다.
돌아보면 외로움은 특정한 장소에만 머무는 감정이 아니었다.
성당이 텅 비었을 때도 찾아왔고,
사람들과 술잔을 기울일 때도 찾아왔다.
누군가와 함께 시간을 보낸 뒤 혼자 돌아오는 길에도 남아 있었다.
지금도 가끔은 사람들 속에 있다가 문득 그런 기분을 느낀다.
분명 사람들과 함께 있는데도 어딘가 멀리 떨어져 있는 듯한 느낌.
대화에 참여하고 웃음도 나누지만, 내 마음의 어떤 부분은 여전히 혼자 남아 있는 듯한 느낌이다.
그렇다고 모든 관계가 의미 없다는 뜻은 아니다.
사람들과 나눈 즐거운 시간도,
누군가 건네준 따뜻한 말도 분명 소중하다.
다만 그런 순간들이 있다고 해서 마음속 모든 공허함이 사라지는 것은 아니라는 사실을 조금씩 알게 되었다.
삶에는 다른 사람과 함께할 수 있는 영역이 있고,
오롯이 자신이 마주해야 하는 영역도 있다.
타인이 아무리 가까워도 대신 살아 줄 수 없는 시간이 있으며, 아무리 좋은 관계라도 모든 외로움을 없애 줄 수는 없다.
그렇다면 중요한 것은 외로움을 완전히 없애는 일이 아니라,
외로움이 찾아왔을 때 그것을 부끄러워하거나 무조건 밀어내지 않는 일인지도 모르겠다.
나는 왜 외로운가.
내게 부족한 것은 사람인가,
이해인가,
아니면 나 자신을 있는 그대로 드러낼 수 있는 용기인가.
이 질문에 언제나 같은 답을 내놓을 수는 없을 것이다.
외로움의 이유는 때에 따라 달라지고, 사람마다 다르기 때문이다.
다만 한 가지는 분명해 보인다.
사람들 속에서도 외로울 수 있다는 사실은 내가 이상한 사람이라는 증거가 아니다.
오히려 인간관계만으로는 채워지지 않는 마음의 영역이 있다는 사실을 보여 주는 것일 수 있다.
6. 외로움을 없애는 것보다 먼저 필요한 일
외로움을 느끼면 우리는 서둘러 사람을 찾는다.
누군가에게 연락하고, 약속을 잡고, 모임에 나가며, 혼자 있는 시간을 줄이려고 한다.
물론 그런 시도가 도움이 될 때도 있다. 실제로 사람과의 만남은 위로가 되고, 관계를 통해 삶의 활력을 되찾기도 한다.
그러나 마음이 허전할 때마다 만남의 횟수만 늘리는 것이 언제나 답은 아니다.
때로는 내가 어떤 관계를 원하는지 돌아볼 필요가 있다.
내가 정말 원하는 것은 함께 웃을 사람인가.
힘든 이야기를 들어줄 사람인가.
아무 말 없이 같은 공간에 머물러도 어색하지 않은 사람인가.
아니면 다른 사람을 위해 괜찮은 척하지 않아도 되는 시간인가.
이 질문에 답한다고 해서 당장 외로움이 사라지는 것은 아니다.
마음을 나눌 관계가 하루아침에 만들어지는 것도 아니다.
그래도 자신의 외로움이 무엇을 원하는지 조금씩 알아가는 일은 의미가 있다.
가능하다면 한 사람에게라도 조금 더 솔직해져 보는 것도 좋겠다.
모든 이야기를 한꺼번에 털어놓을 필요는 없다. 그저 오늘은 조금 힘들었다고,
요즘 마음이 허전하다고, 조언보다 이야기를 들어 주었으면 좋겠다고 말하는 것부터 시작할 수 있다.
상대가 내 마음을 완벽하게 이해하지 못할 수도 있다.
예상했던 반응을 얻지 못할 수도 있다. 그렇다고 솔직해지려 했던 시도까지 잘못된 것은 아니다.
관계는 서로를 완벽하게 이해하는 순간에만 만들어지는 것이 아니다.
서로의 부족함을 알아가고, 때로는 이해하지 못하는 부분을 인정하면서도 조금씩 가까워지는 과정일 수 있다.
그리고 누군가와 연결되기 위해 노력하는 것만큼,
자신을 돌보는 일도 중요하다.
외로움을 견디기 위해 술에만 의지하게 된다면 다른 위안과 도움을 찾아볼 필요가 있다.
공허함이 오래 이어져 일상까지 무너뜨린다면 믿을 만한 사람이나 전문가에게 마음을 털어놓는 것도 한 방법이다.
외로움은 의지가 약하다는 증거가 아니다.
사람에게 연결이 필요하다는 사실을 알려 주는 하나의 신호일 수 있다.

마무리하며: 사람들 곁에 있었지만, 나는 어디에 있었을까
미사가 끝나면 신자들은 각자의 집으로 돌아갔다.
나는 텅 빈 성당에 남았다.
사람들의 이야기를 듣고 그들을 위로하던 사람이었지만, 정작 내 마음이 허전할 때는 어디로 가야 할지 몰랐다.
그래서 술동무를 찾아 헤맸다.
사람을 만나면 괜찮아질 것 같았고, 함께 웃고 떠들면 마음의 빈자리가 채워질 것 같았다.
하지만 사람을 만나는 것과 마음을 나누는 것은 달랐다.
술잔을 함께 기울일 수는 있어도 모든 공허함을 나눌 수는 없었다.
웃음이 오가는 동안에는 외로움을 잊을 수 있었지만, 헤어지고 돌아오면 그 감정은 다시 찾아왔다.
세월이 흐른 지금도 나는 그 공허함을 완전히 설명하지 못한다.
다만 이제는 조금 다르게 생각한다.
외롭다는 사실을 부끄러워할 필요는 없다고.
사람들 속에서도 외로울 수 있으며,
다른 사람을 위로하는 사람에게도 위로가 필요하다고.
누군가에게 좋은 사람이 되는 것과 한 인간으로서 편안하게 존재하는 것은 다를 수 있다.
다른 사람의 마음을 받아 주는 것과 내 마음을 누군가에게 내어놓는 것도 다를 수 있다.
어쩌면 내가 오랫동안 찾아 헤맨 것은 사람이 아니었는지도 모른다.
누군가의 기대에 맞는 사람이 아니라,
그저 나 자신으로 있어도 괜찮은 자리였는지도 모른다.
아직 그 자리를 완전히 찾았다고 말할 수는 없다.
지금도 사람들 속에서 외로움을 느낄 때가 있고, 어떤 공허함은 쉽게 사라지지 않는다.
그래도 이제는 그 감정을 억지로 밀어내기보다 가만히 들여다보려 한다.
내가 왜 외로운지, 무엇을 그리워하는지, 누구와 어떤 마음을 나누고 싶은지.
그 질문을 계속 품고 살아가는 것 역시 나 자신을 이해하는 과정일 테니까.
사람들 속에서 외로움을 느끼는 당신에게도 묻고 싶다.
당신은 지금 사람이 그리운가.
아니면 사람들 곁에서조차 숨겨 두어야 했던 당신 자신의 마음을 누군가 알아주기를 바라는가.
어쩌면 우리가 찾는 것은 더 많은 사람이 아니라,
더 이상 외롭지 않은 척하지 않아도 되는 단 한 번의 만남인지도 모르겠다.
그리고 그 만남은 다른 사람과의 관계에서 시작될 수도 있지만,
오랫동안 외면해 온 자기 자신의 마음을 들여다보는 순간부터 시작될 수도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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