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osrgn"nnmu" 📖 신부였던 내가 처음 정신과 상담실 문을 열던 날, 부제: '십자가의 성토마'라 불리던 완벽주의자가 무너진 자리에서 만난 것
무너진 뒤, 다시 살아가기

📖 신부였던 내가 처음 정신과 상담실 문을 열던 날, 부제: '십자가의 성토마'라 불리던 완벽주의자가 무너진 자리에서 만난 것

by honeypig66 2026. 6. 22.

 

📌안녕하세요, 김덕원입니다.

이 블로그에는 제가 직접 겪은 일을 씁니다. 18년의 사제 생활을 마친 뒤 공황장애와 파산, 요양병원 생활을 지나며, 무너진 자리에서 다시 살아가는 과정을 있는 그대로 기록하고 있습니다.

그 시간을 지나며 가장 오래 붙들고 있던 질문은 "왜 우리는 지치고, 어떻게 회복되는가"였습니다. 그래서 몸과 마음, 돈과 제도에 관한 이야기도 함께 씁니다. 직접 알아보고 확인한 내용, 그리고 공개된 자료를 공부하며 정리한 내용입니다.👉 [김덕원의 삶과 개인파산·면책 이야기 전체보기]

모든 글은 개인 경험과 공개 자료에 바탕을 두며, 의학·법률 판단이나 전문가의 진단·치료를 대신하지 않습니다.

비슷한 시간을 지나는 분께 작은 참고가 되길 바랍니다

 

상담실 문을 열던 날, 저는 패배했다고 생각했습니다. 출처: Unsplash / Christopher Gower

서론

모든 것을 포기하고 싶었던 그날 밤, 저는 정말 삶을 끝내고 싶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지금 돌아보면, 그날의 절망은 하루아침에 찾아온 것이 아니었습니다.

그 시작은 훨씬 오래전, 완벽해야만 한다고 믿었던 삶 속에서 이미 자라고 있었습니다.

그날의 절망은 하루아침에 찾아온 것이 아니었습니다. 완벽해야 한다는 믿음 속에서 이미 자라고 있었습니다. 출처: Unsplash / Shubham Dhage

1. 십자가의 성토마, 그 지독했던 완벽주의

신부는 흔들리면 안 된다고 믿었습니다. 그래서 더 깊이 무너지고 있다는 사실을 몰랐습니다. 출처: Pexels / Kampus Production

 

18년 사제 생활 동안 저는 스스로를 ‘십자가의 성토마’라 부를 만큼 엄격하게 살았습니다.

신부는 흔들려서도, 지쳐서도, 힘들다고 말해서도 안 된다고 믿었습니다.

치열하게 영신수련을 실천하며 늘 팽팽한 긴장 속에 완벽함을 지키려 애썼습니다.

 

그러나 정작 영적 메마름이 밀려왔을 때, 저는 어떻게 멈춰 서야 하는지조차 몰랐습니다

그저 더 열심히, 더 거칠게 자신을 몰아붙였습니다.

 

그러다 결국 교통사고로 차가 전복되는 죽음의 문턱을 넘고 나서야, 제 삶은 멈추어 섰습니다.

2. 변기통을 붙들고 올린 가장 솔직한 기도

가장 비참했던 순간, 저는 처음으로 제 진짜 모습을 마주했습니다. 출처: Pexels / cottonbro studio

 

가장 비참했던 순간, 저는 처음으로 제 진짜 모습을 마주했습니다.

팽팽하던 긴장이 풀리자마자 쏟아진 절망을 감당하지 못해 한동안 술에 의존했습니다.

결국 술병이 나 입원한 어느 날 새벽, 변기통을 붙들고 쉴 새 없이 구토를 하며 저는 비로소 인생의 바닥을 쳤습니다.

 

세상이 끝났다고 생각한 그 처참한 굴욕의 순간에,

역설적이게도 생전 처음으로 '예수님이 지금 여기 계신다'는 강렬한 현존을 느꼈습니다.

 

"주님, 무엇을 드려야 할까요?"

 

그 새벽, 마음 깊은 곳에서 질문이 터져 나왔고, 저는 제 삶을 갉아먹던 술과 TV를 내려놓기로 결단했습니다.

 

하지만 진짜 시련은 그때부터 시작되었습니다.

술이라는 방패마저 사라지자, 그동안 억눌러왔던 거대한 현실의 고통과 중압감이 둑 터지듯 한꺼번에 밀려왔기 때문입니다.

3. 공동체 안에서 겪은 깊은 고립

사람들 속에 있었지만, 누구에게도 제 고통을 말할 수 없었습니다. 출처: Pexels / Antoni Shkraba Studio

 

술을 끊고 마주한 현실은 차가웠습니다.

영성부장이라는 직책의 무게와 선배·동기 신부들과의 갈등이 겹치면서 마음은 점점 더 병들어갔습니다.

 

수많은 사람들 사이에 둘러싸여 있었지만,

그 누구에게도 제 고통을 솔직하게 털어놓을 수 없었습니다.

사제로서 마땅히 보여주어야 할 '거룩한 모습'이라는 틀 안에 갇혀,

저는 스스로를 깊은 침묵 속으로 밀어 넣었습니다.

 

공동체와 연결되지 못한 기도는 바짝 마른 나무 같았습니다.

고통을 나누지 못한 채 홀로 짊어진 십자가는 저를 거룩하게 만드는 것이 아니라,

서서히 속에서부터 파괴하고 있었습니다.

 

4. 상담실 문 앞에서의 한 시간

문을 여는 데 1시간이 걸렸습니다. 살아야 했기 때문입니다. 출처: Pexels / Pavel Danilyuk

 

갈등과 고립 속에서 공황장애는 극에 달했고,

마침내 저는 더 이상 혼자 버틸 수 없는 지경에 이르렀습니다.

그렇게 찾은 곳이 정신과였습니다.

 

병원을 고르는 것조차 조심스러워 마스크를 푹 눌러쓰고 엘리베이터에 올랐습니다.

몇 번이고 다시 내릴까 고민했습니다.

 

상담실 문 앞에 도착해서도 문고리를 잡은 채 한 시간을 서성였습니다.

 

'18년 사제인 내가 여기까지 오다니…'

 

18년간 지켜온 사제로서의 권위와 자존감이 그 문 앞에서 낱낱이 해체되는 기분이었습니다.

하지만 살아야 했습니다.

그렇게 저는 약물의 힘이라도 빌려 밤을 지새워야 할 만큼 간절한 마음으로, 1시간 만에 겨우 그 문을 열었습니다.

 

5. "신부님은 마지막으로 언제 본인을 위해 우셨나요?"

남을 위해 우는 법은 알았습니다. 나를 위해 우는 법은 잊고 살았습니다. 출처: Pexels / Mikhail Nilov

 

상담실에 들어선 저에게 의사 선생님은 한참 동안 침묵을 지키시다가, 낮고 조용한 목소리로 물으셨습니다.

"신부님은 마지막으로 본인을 위해 언제 우셨나요?"

 

순간 머릿속이 멍해졌습니다.

아무리 기억을 되짚어도 떠오르지 않았습니다.

남을 위해 우는 법은 배웠지만, 나 자신을 위해 우는 법은 18년 동안 잊고 살았기 때문입니다.

 

그 자리에서 상담실 바닥으로 뚝, 눈물이 떨어졌습니다.

 

그 눈물은 참회보다 더 깊은, 오랫동안 방치되어 온 나 자신에 대한 비통한 연민이었습니다.

결론. 나는 아직 끝나지 않았습니다

구조 요청을 할 수 있었다는 것은, 아직 살고 싶었다는 뜻이었습니다. 출처: Pexels / Tima Miroshnichenko

 

상담실 문을 열던 날, 저는 제가 패배했다고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지금 돌아보면 그날은 패배가 아니라 구조 요청이었습니다.

그리고 구조 요청을 할 수 있었다는 것은, 제가 아직 살고 싶었다는 뜻이었습니다.

 

지금도 힘들 때는 상담실을 찾습니다.

예전 같으면 부끄럽다고 생각했겠지만, 이제는 압니다.

도움을 요청하는 사람은 약한 사람이 아니라 살고 싶은 의지가 강한 사람이라는 것을요.

 

오늘 하루를 버텨낸 당신에게 말해주고 싶습니다.

당신은 아직 끝나지 않았습니다.

당신은 약한 사람이 아닙니다. 오늘 하루를 버텨낸 사람입니다. 그리고 아직 끝나지 않았습니다. 출처: Pexels / Tara Winstea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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